뮌헨 출신의 식객은 이런 식의 방만하고도 실망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 것도 포착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공손한 태도로 자신이 기대했던 바를 말했다. 비록 종이쪽지의 내용을 접할 수는 없었으나. 쪽지의 영향만큼은 확실히 감지하는 것 같았다. 변호사 그리고 가련한 신사와 마찬가지로 카페에 모인 사람들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쪽지에 쓰여 있는 글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어느 저널리스트는 세상이 아직 쪽지를 접하지 못했다는 것을 절감하고, 이를 밝혀주는 자에게 즉시 현상금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어느 소설가는 평상시에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었는데, 은밀한 은어를 유추하려고 했다. 말하자면 쪽지에는 모험삼아 섹스 한 번 하자는 저질스러운 문구가 적혀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 어느 문헌학 연구자가 집안으로 급하게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의 지식 창고로 돌아가서 방랑의 이야기가 아주 오래된 소재에 해당한다고 해명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인도, 혹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래한 소재인데, 그 사이에 전 세계에 퍼진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문헌학 연구자는 쪽지의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다만 다음과 같이 덧붙였을 뿐이다. “미국인들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은 나머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생각해 내었지요.”
이른바 비-본질을 탐구한다고 하는 어느 형이상학 연구자는 통상적으로 대화에 활발하게 관여하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세계의 작은 핵심에 관한 전문가인 그는 갑자기 놀라울 정도로 즐거워하면서 답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를 궁금해 하며 그에게 다가왔을 때 형이상학 연구자는 그저 이 문제를 옳다고 생각할 뿐이라고 얼버무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모든 비밀을 해결한 오이디푸스를 떠올렸다. 테베 사람들은 오래 전에 다 알고 있었는데, 정작 오이디푸스만큼은 자신의 아버지가 라에르테스임을 몰랐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너무 가까이 위치한 격언은 당사자에 의해 해독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적인 신사와 오이디푸스 사이에는, 즉 방랑의 이야기 그리고 그리스 신화 사이에는 어떠한 그럴듯한 유사성이 자리하지 않으므로, 그저 패러디라고 유추될 뿐이었다. 만약 어느 초현실주의자가 발견한, 잡지에 실린 이야기와 그리스 신화 사이의 연결고리가 없었더라면, 신사는 쪽지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결코 세계를 방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뮌헨 출신의 우울한 식객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질문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낯선 신사에 관해서가 아니라, 자신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게 아닐까? 어쩌면 뮌헨 출신의 우울한 남자는 식당에서 만난 그 소극적인 사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일 수도 있다. 사내는 다만 자신의 평범한 삶에서 무언가를 기억해내려고 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뮌헨 출신의 식객은 서투르기 짝이 없는 사내의 행동 방식이라든가 고독한 삶에서 유래하는 무거운 마음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려준 것일 수도 있다. 쪽지 속의 암호를 푸는 일이 이미 오래 전에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면, 신사가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쪽지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그 자체 불행한 결말 아닌가? 어쩌면 그것이 바로 이야기의 핵심이 아닐까? 가방은 처음부터 비어 있었는지 모른다. 인간의 내면에 담긴 말할 수 없는 무엇은 마치 식당에서 우리에게 제공되는 심해어처럼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한마디로 공허함 내지 권태와 같은 왜곡된 익명 존재가 아닐까? 세계를 방랑하는 신사는 아무런 색채감 없이 무미건조하게 서술하는 뮌헨 출신의 침울한 식객과 마찬가지로 어떤 절대적인 권태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야기 속에서 신사는 이러한 표시를 직접 해독할 수 없었다. 그가 인식하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비밀스러운 쪽지에 대해 아무런 이유 없이 기이하게 반응했고, 신사는 아무런 이유 없는 반응을 끔찍하게 여기고 이것으로부터 신속하게 도피했을 뿐이다. 마치 이야기를 경청하던 사람들이 그에게 일순간 공격성향을 드러내었듯이, 뮌헨 출신의 우울한 식객은 둔탁한 호기심에 이끌려, 종이쪽지에 기술된,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무 (無)를 찾으려고 골똘하게 그라고 헛되이 숙고했는지 모른다.
이야기 속의 삭막하고 우울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뮌헨 출신의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의외로 어떤 흥미롭고도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음색을 생생히 접할 수 있다. 오늘날의 시민 사회는 정말로 공허하고도 의미 없는 시대에 해당한다. 이러한 시대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마구 뒤섞여 살아가고 있다..가령 누군가 기발하고도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줄 때, 마치 어른들 사이에 섞여서 귀 기울이는 어린이들처럼 이를 경청하려고 주위에 서성거리는 성년들을 생각해 보라. 어느새 성인이 된 사람들은 자신이 아직도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을 모조리 알아내고 싶어 한다. 그것은 어쩌면 이미 어른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은밀한 사실, 혹은 내적인 감정일지 모른다. 가령 우리는 자신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을 비워주고 그곳을 영원히 떠나야 할 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생소하게 성찰하게 된다. 바로 이때 자신을 바라보는 부담스러운 눈길을 통해서 우리는 삶에서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어떤 황망하고도 허전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상황 속에서 자신이 명시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일치되는 적절한 문장을 순간적으로 찾지 못할 때, 우리는 좀처럼 어떤 혼란스럽고도 난감한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때 우리는 뇌리에서 막연히 사라져버린, 바로 그 문장을 못내 기억해내려고 애를 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 기억해낼 만한 의미를 지니지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삶에서 무엇보다도 귀중하고 중요한 무엇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뮌헨 출신의 우울한 식객은 기이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침잠해 있었다. 오랫동안 마치 계몽주의 시대의 사람처럼 자신이 설정한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애썼던 것이다. 물론 쪽지의 비밀스러운 내용은 통상적으로 섹스, 다시 말해서 성적인 암시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쪽지 속에는 근본적으로 어떤 실존주의적인 비밀이 내재해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뮌헨 출신의 식객은 골똘히 어떤 쪽지 속의 암호를 찾으려는 기이한 유형의 사람이다. 그는 마치 기록되지 않은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일견 부담스럽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서 주위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사를 부추기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뮌헨 출신의 우울한 식객은 아무런 직업도 없는 외로운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는 외부의 현상과 주위 현실에서 받아들이는 감각적 느낌에 대해 두 귀를 곤두세우며 강렬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에 비해 강인하고 속이 꽉 찬 사람은 외부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뮌헨 출신의 식객은 사람들 사이로 지나치는 순간 어떤 문장을 슬쩍 엿듣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장은 완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그의 마음속에 어떤 의혹을 솟구치게 한다. 즉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중요한 무엇을 망각하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이러한 중요한 무엇에 대해 어떤 단서를 포착하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을 생각해 보라. “다른 사람은 알고 있어요. 어쩌면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이로써 무엇을 시작할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로지 나만이 그것을 모르고 있어요. 어쩌면 삶에서 그것을 놓쳐버렸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종이쪽지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분실물 보관소에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마치 잃어버린 아이처럼 찾아야 한다. 물론 만족스럽지 않은 이야기와 관련시켜 말하건대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이야기로부터 느닷없는 순간적인 빛, 죽음에 의해 처절히 꺼지고 말, 그러한 빛 한 조각을 얻는다고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종이쪽지의 비밀은 불가지론과는 다르다. 물론 토지 측량서 K가 범인에 관한 공개적인 지명 수배장을 스스로 지니면서도, 이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경우라면, 여기서 논외가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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