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Bloch 흔적들

블로흐: 종이쪽지의 비밀 (1)

필자 (匹子) 2020. 12. 18. 08:07

자신의 바깥으로 뛰쳐나오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한 사내를 만난 적이 있다.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고 싶은 사내의 시도는 언제나 실패로 돌아가곤 했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자신의 말문을 닫고 살았다. 그렇지만 그러는 동안에 제법 많은 일이 발생하였다. 활력을 찾으려는 사내의 행동은 언제나 본심과는 다른 방식으로 돌출해 나왔다. 사내의 이러한 돌출 행동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너무 기이하고 황당하게 비치곤 하였다.

 

가령 누군가 어떻게 잠을 잤는가? 하고 물었을 때, 사내의 대답은 걸작이었다. “언제를 말씀하는 건가요? 오늘 저녁?” 이러한 대답을 듣는 사람은 몹시 당혹스러워 했다. 누군가 “오늘 당신의 기분이 매우 언짢아 보입니다.”하고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사내는 의외로 자신감을 드러내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그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흐뭇해했던 것이다. 사내가 드러낸 순간적 즐거움은 어떤 자랑스러운 태도에서가 아니라, 내심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약간 충족되었기 때문에 비롯되는 현상이었다. 이를테면 사내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곤 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요? 어제 저녁에 거울 앞에서 손을 씻을 때 나는 그렇게 판단했어요.

 

언젠가 남프랑스의 어느 식당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사내는 어느 우울한 뮌헨 사람을 만나 함께 식사하게 되었는데,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자그마한 생선 요리를 주문했다. 그는 머리를 수그리며 접시에 담겨 있는 생선 요리를 응시하더니, 깜짝 놀라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뮌헨의 이자 강에는 넙치가 많이 살지요?” 뮌헨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았을 때, 사내는 나지막한 소리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아니, 이자루스트에 있는 케이크 말이에요.” 말하자면 사내가 요리를 바라보는 순간 마음속에서 떠오른 것은 어떤 단어였는데, 어설프게도 넙치라는 생선의 단어로 표현된 셈이었다. 그가 표면적으로 끄집어내어, 환한 빛 속에서 도출해낸 것은 다름 아니라 심해어의 형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전에 사용된 단어, 넙치가 더 이상 연상되지 않도록, 자신의 표현을 슬그머니 케이크로 바꾸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