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라르디의 기담은 낮 시간이 아니라, 밤 시간에 시작된다. 그는 밤늦은 시간에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시간을 지체하였다. 그래도 냉정을 유지하며, 빈의 외곽지역으로 향해 서둘러야 했다.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늦은 밤이라서, 도시를 횡단하는 전차 역시 오래 전에 끊겼다. 비싼 돈을 주고 택시를 타야할지, 히칭 구역까지 걸어가야 할지 고심하였다. 기라르디는 결국 걸어가기로 작심한다. 걸어가는 도중에 좁지만 우아한 어느 골목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곳은 홍등가였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지나친 적이 없었다.
건물의 창문에서 환한 빛이 비쳤고, 반라의 여자들이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자들은 두 손으로 그에게 열정적인 키스를 보냈다. 이때 오래된 오스트리아의 노란 색의 꽃들로 장식되어 있는, 신비로운 건물이 눈에 띄었다. 창문의 테두리는 흰색이었는데, 건물은 좁고 세련되어 보였다. 바로 거기서 어느 여자가 다가왔다. 얼굴에는 고혹적인 미소가 퍼져 있었다. 기라르디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고마운 제안이지만, 다른 기회에 응할게요. 너무 피곤해서, 가능하면 내일 저녁에 찾아올게요. 당신의 집을 기억해두겠습니다.” 기라르디는 계속 걸어가는데, 적극적인 여자가 그의 뒤를 따라와 다음과 같이 외치는 게 어닌가? “기분 나쁘게 여기지 말아요. 내 방으로 가서 즐겨요. 저기요, 멕시코 방식으로 해줄 게요.”
기라르디는 듣는 둥 마는 등하면서 어둠 속에서 걸음을 재촉했다. 잘 아는 거리가 나타났다. 로텐투름 가(街), 케르트너 가(街), 링, 마리아 힐퍼 가(街)를 지나쳤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중얼거렸다. “멕시코 방식이란 대체 무엇이지?” 마치 바다 위에서 강한 돌개바람 때문에 갈피를 못 잡는 선박처럼 기라르디는 오랫동안 도로 위에 서 있었다. 일순간 그는 방향을 바꾸었다. 그의 마음은 어느새 여자가 있던 홍등가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링, 케르트너 가(街), 로텐투름 가(街)를 지나친 다음에, 마침내 오래된 좁은 골목에 당도하게 된다.
기라르디는 골목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그곳에서 호객을 일삼던 여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 전에 젊은 여자가 있던 가옥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여자들은 정색을 하면서 고함을 질렀다. “야, 멍청한 인간아, 네가 필요로 하는 게 여자니, 아니면 집이니?” 그가 사라질 때까지 여자들의 비난은 그치지 않았다. 기라르디는 실망한 듯 고개를 저어야 했다. 그의 뇌리에는 집 그리고 여자라는 두 단어가 끔찍하게 각인되는 것 같았다. 그는 순간적으로 중얼거렸다. 두 단어를 지워버리자, 아무렴 그게 더 나아.
상기한 해프닝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유치한 체험인지 모른다. 재수 없는 체험은 우리가 즐겨 찾는 찻집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한담의 소재에 불과하다. 다음날 오후, 혹은 저녁에는 까마득히 잊어버릴 만큼 하찮은 것이니까. 순간적 자극은 아무 의미를 전하지 않는 무미건조한 쇼크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기라르디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마리아힐퍼 가(街)의 한복판에서 어떤 놀라운 착상을 떠올린다. 말하자면 홍등가에서의 체험은 마치 기발한 단서로 작용하여, 그로 하여금 어떤 진정한 기담을 완성하게 했던 것이다. 기라르디는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기막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보기로 하자
“옛날에 천사 한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천사는 인간이 반복해서 저지르는 실수를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었지요. 천사는 신으로부터 백년에 한 번씩 창녀의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가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빈의 홍등가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었지요. 평상시에는 그곳에 좁고 세련된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천사는 창녀로 둔갑하여 바로 그 건물에서 머물게 됩니다. 대신에 신은 천사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골목을 지나치는 사내와 단 한 번만 연애해야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실수 없이 만끽할 수 있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때 반드시 사용되어야 하는 암호는 ‘저기요, 멕시코 방식으로 해줄게요’라는 것이었습니다. 호객 행위는 단 한 번만 허용되었는데, 아무도 천사에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백년동안 다시 사라져 있어야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지금까지 천사의 암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나 역시 ‘저기요, 멕시코 방식으로 해줄게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어리석게도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요. 말하자면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친 셈입니다. 어느 누구도 여자의 말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천사는 ”인간들은 어리석게도 더 나아질 기회를 놓쳤어‘하고 중얼거리며, 더 이상 현세로 내려오지 않게 됩니다.”
기라르디의 내적 독백은 이로써 끝이 난다. 그는 마치 유령에게 홀린 듯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면서 그날 무심하게 히칭 구역으로 향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적으로 동정적인 기라르디는 자신의 본심과는 달리 친구의 집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기라르디의 기담은 비록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묘한 마력을 우리에게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극작품으로 무대 위에 등장시키기에는 너무 소품과 같은 짤막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그러나 만약 네스트로이가 이러한 기담을 접했더라면, 아마도 마력적인 상상에 커다란 희열을 느끼고 놀라운 희극작품을 즉흥적으로 남겼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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