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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실패가 우리를 가르친다. 서문 (2)

필자 (匹子) 2020. 10. 18. 11:10

2.

친애하는 O, 우리는 본서를 통해서 두 가지 사항을 간파할 것입니다. 첫째로 통일된 독일은 유로 존의 국가들과 함께 서서히 미국과 같은 거대블록으로 변모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한 치 앞의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비록 사회적 시장경제를 표방한다고 하지만, 독일은 무엇보다도 국익을 추구할 것입니다. 물론 주어진 사안이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 내지 사회주의라는 “공동적 아궁이” (클레안테스)를 다시금 의식하게 하겠지만, 이는 일시적이며, 부분에 그칠 것입니다.

 

미국이 자본주의 속에서 물질주의적 인간 삶, 인종 갈등 그리고 소비 중심의 향락 사회로 변하듯이, 통일된 독일도 이러한 전철을 밟게 될 게 분명합니다. 몇몇 엘리트 내지는 지식인들이 이를 막기 위해서 노력하겠지만, 고도화된 산업 사회 그리고 분화된 매스컴 시스템은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게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지식인이 사회를 주도하던 시대는 이제 종언을 고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가장 빨리 감지하게 하는 매개체가 바로 전환기 소설들입니다.

 

둘째로 감히 말씀드리건대 통일된 독일에서는 20세기에 태동한, 수준 높은 작품들과 견줄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출현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전의 시대가 정치 이데올로기로 인한 참담한 갈등의 시대였다면, 21세기의 시대는 과학 기술과 매스컴 발전과 관련된 포만한 의식으로 인한 망각의 시대로 규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갈등의 현실이 자유인들로 하여금 부자유에 저항하게 하듯이, 망각의 현실은 문학인들의 집필 욕구를 서서히 앗아가게 될 것입니다.

 

망각의 시대의 극점에 이르게 되면, 어느 누구도 지식인들의 발언을 들으려고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물론 메디치와 같은 뜻있는 사람들이 이 땅에 출현하여, 문화와 예술의 부흥을 촉진시킨다면 사정은 조금은 달라질 수 있겠지요. 한반도라고 해서 이러한 경향으로부터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기한 두 가지 관점은 전환기 독일 문학에서 도출해낼 수 있는, 은폐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유형의 “인문 (人紋)의 알레테이아”를 강하게 부각시켜야 할 것입니다.

 

3.

흔히 실용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과연 남의 나라의 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지나간 동독문학을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일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때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곤 합니다. 즉 “실패가 우리를 가르친다.” 그리고 “당면한 난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먼 산을 바라보라.”라고 말입니다. 물론 남의 나라의 문학이 21세기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외국 문학과 다른 지역의 문화연구는 우리 앞에 가로놓인 어떤 문제에 관한 해결 방안에 관한 놀라운 범례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외국 문학과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시각의 다원화를 체계적으로 함양하기 위함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가장 공정하고도 객관적인 범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필자는 남의 나라든 우리나라든 간에 문학의 기능 자체를 결코 하찮은 것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흔히 실용주의자들은 문학을 허구의 현실을 다루는 학문으로 규정합니다. 문학의 현실은 일견 허구처럼 보일지 모르나, 주어진 현실에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가상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문학은 인간의 갈망과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영역입니다. 그렇기에 가능성이 문학의 본질이지요. 철학이 주어진 사물을 객관적으로 투시하여 어떤 본질을 찾아내는 학문이라면, 역사학은 과거 사실의 구체적 내용을 정확하게 재인식하려는 학문입니다.

 

이에 비하면 문학은 얼핏 보기에는 찬란한 만화경과 같은 허구를 표현하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학문을 앞서서 인간의 갈망을 수렴하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문학 文学이 학문 学文을 뒤집어서 표현하는 것 역시 이와 관련됩니다. 요악하건대 철학과 역사학이 과거에 이미 주어진 것을 추적하여 이를 구명하려는 작업이라면, 문학은 앞으로 나타날 수 있는 가상적인 현실을 미리 구상적인 상으로 선취해냅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문학은 제반 인문학을 이끄는 수레로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4.

한 가지 사항만 더 첨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주의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일단 역설적으로 구동독의 정치적 상황 그리고 당시의 문예 운동을 오히려 더 근본적으로 연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50년대의 상황과 이 시기의 문학이 동독 문학의 역사에서 서방세계와는 가장 첨예하게 구별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소련의 문화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은 동독이었지만, 동독의 지식인들은 세계대전 이후에 사회주의를 재건하려는 커다란 열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비록 국가적 차원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실패의 근본적 원인을 학문적으로 끝까지 밝혀나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50년대 구동독과 동구권의 사회주의 문예 운동의 근본을 끝까지 추적하는 일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패가 우리를 가르친다.”는 전언이 암시하는 내용입니다.

 

이번에 태어난 나의 자식, 『전환기 독일소설』 역시 구동독 초기의 문예 운동 및 사회주의 예술 연구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자식은 이전에 태어난 자식들을 보완해줄 것입니다. 친애하는 O, 교정하면서 다시 읽어보니, 참으로 부족한 게 많습니다. 잘못된 사항이 발견될 경우 반드시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서에는 동서독 사람들 사이의 갈등 내지는 해결방안 그리고 평화 공존에 관한 사항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비록 간접적이지만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 그리고 차제에 통일된 한국에서의 남북한 사람들 사이의 아우르는 삶 그리고 평화 공존에 약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2년 7월 15일 베를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