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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라인하르트 이르글의 '미완성의 사람들' (1)

필자 (匹子) 2021. 6. 3. 10:49

 

이제 작품 『미완성의 사람들』에 관해서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2003년에 뮌헨에서 간행되었습니다. 작품은 핍박당하는 체코 독일인의 애환을 주제화하고 있습니다. 체코는 원래 세 개의 지역을 부분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보헤미아 Böhmen, 모라비아 Mähren그리고 슐레지엔 Schlesien의 일부를 가리킵니다. 독일은 오래 전부터 정치적으로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그곳의 땅을 정복하려는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동쪽 유럽에서 자신의 근거지를 마련하곤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독일인들 역시 토속인종에 의해서 박해당한 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독일이 정치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잃게 되었을 때 폴란드, 체코, 슬로베니아 그리고 소련 등에 거주하던 토박이 사람들은 독일인들의 강제 이주를 결정하여 이를 실천하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지금까지 문학적으로 거의 형상화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독일인들은 역사적으로 거의 대부분 가해자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작가, 이르글은 바로 이러한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강제 이주의 고통 을 감수해야 했던 세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작가의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증조할머니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세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1. “개와 사람들 앞에서”, 2. “유리 아래”, 3. “쫓아라, 쫓아라.” 재미있는 것은 소설의 관점입니다. 제 1부와 제2부에서는 모든 이야기가 3인칭으로 서술되는 반면에, 제 3부에서는 화자인 “나”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 1부 “개와 사람들 앞에서”는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전지적 관점에서 강제로 추방당하는 세 여인의 이야기를 서술합니다. 세 여인은 40대 중반의 여자인 하나, 그미의 여동생인 30대의 미혼녀, 마리아 그리고 70세의 어머니, 요한나입니다. 세 여인이 사는 곳은 체코의 보헤미아 지역 가운데 코모타입니다. 약 20년 전에 하나는 이곳에서 체코 남자와 결혼하여 비교적 평탄하게 살면서 딸, 안나를 키웠습니다. 하나의 남편은 바클라브인데, 전쟁 중에 심한 부상을 입고 병상에 누워 있다가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후에 하나는 전 가족을 부양하게 됩니다.

 

 

 

독일인들이 살던 체코 지역

 

며칠 후 세 여인은 체코 당국의 중대발표를 접합니다. 1945년 늦은 여름에 체코의 코모타 지역에는 확성기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집니다. 코모타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독일인들은 30분 내에 1인당 8킬로그램의 수화물을 챙겨 코모타 역으로 집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팔에는 반드시 하얀 띠를 동여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끔찍한 명령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친애하는 I, 당신은 아마도 극동의 하바롭스크 지역에 거주하던 배달민족들이 우랄 산맥 근처의 머나먼 땅으로 강제 이주된 사실을 기억하겠지요? 이는 시베리아에 강제 노동소를 건립할 계획의 일환으로 시행된 첫 번째 조처였습니다. 무려 수십만의 한국 사람들은 일제 침략을 피해서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에서 임시로 살았는데, 가급적이면 두만강에서 멀리 떨어져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로지 해방이 되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독재자 스탈린은 1030년에서 1937년까지 무려 18만의 고려인들을 카자흐스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시켰습니다.

 

체코 지역에 살던 독일인들도 이와 유사한 이유로 독일 본토를 떠나 있었습니다. 체코 사람들은 히틀러 침략 전쟁에 보복하기 위하여 체코에 거주하던 독일 민간인들을 강제 송환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자신의 고국으로 돌려보내니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코모타 중앙역에는 사람들을 마치 짐짝처럼 싣고 떠날 화물차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 마리아 그리고 요한나는 기차에 올라야 했습니다. 딸이 귀가하지 않아서 그미를 데리고 갈 수 없는 것이 못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딘가에 정주하게 되면 반드시 딸을 찾으리라고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체코의 민병대는 모든 것을 강제로 시행했습니다. 기차는 몇 시간을 달려서 뮌헨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나이 많은 요한나는 그곳에서 하차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40세 이하의 젊은 사람들만 뮌헨에서 하차하는 것을 허락했던 것입니다. 어떠한 고난이 닥치더라도 함께 지내자고 결심합니다.

 

특히 하나는 “가족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사람은 쓸모없는 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기차는 드레스덴, 라이프치히를 거쳐 마그데부르크로 향합니다. 세 여인은 1946년에 그곳의 강제 기숙사에서 떨며 지내야 했습니다. 마그데부르크는 폭격으로 인해 쑥대밭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그곳에서는 여인으로서 일할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다시 알트마르크 지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그곳의 역에서 하차한 다음에 마차를 타고 쉬벤이라는 마을로 향합니다.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 굶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세 여인은 일단 그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합니다.

 

하나는 그곳에서 짐을 푼 다음 딸, 아나를 찾아 나섭니다. 그미는 소련 점령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딸을 수소문했으나, 헛수고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는 독일 체코 사이의 도시, 라이첸하인으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추방당한 사람들, 도둑, 탈영병, 뚜쟁이 그리고 무역 밀매업자들이 수용 시설이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 아나는 강제 송환의 그 날 귀가 길에서 어떤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운동장에서 체코 민병대 사람들은 SS에 속하던 독일군인들 그리고 나치동조자들을 한 명씩 쇠뭉치 내지는 돌로 쳐 죽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급히 그곳을 빠져나온 아나는 길거리에서 “독일인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독일 지역으로 이송되니, 고모타 역으로 집결하라.”는 방송을 들었습니다. 행여나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붙잡혀서 처형당할까 두려워서, 아나는 하얀 띠를 던져버리고 숨어야 했습니다. 아나는 결국 집 앞에서 민병대 사람들에게 잡혀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됩니다.

 

 

 

 

체코에서 강제 송환당하던 독일인들. 유대인 강제수용소 압송보다는 심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수용소의 시설은 그야말로 감옥을 방불케 합니다. 늦여름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온갖 분뇨와 함께 썩어가는 인육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습니다. 운동 경기장에는 맞아죽은 시체가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아나는 밤만 되면 온갖 남정네들의 성적 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잔악한 독일 군인들에 대한 체코의 남자들의 보복심은 독일처녀의 육체를 유린하는 것으로 돌변했던 것입니다. 아나는 절망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곤 하였습니다.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한 어머니를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아나는 어느 체코 남자로부터 한 가지 소식을 전해 듭습니다. 체코 남자는 라이첸하인에서 사람을 찾는 쪽지를 우연히 보았는데, 그 쪽지에는 어느 여자가 “아나”라는 딸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밤에 아나는 수용소를 탈출하여, 라이첸하인으로 향하는 새벽 기차를 타게 됩니다.

 

아나는 라이첸하인에서 우연히 어느 독일 청년을 알게 됩니다. 그는 이전에 SS 대원으로 활약한 바 있는 탈영병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에리히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기 6개월 전에 동부 전선에 배치된 에리히는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경비초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이때 유대인 학살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대원들 사이의 문신의 문제로 갈등을 빚게 됩니다. 바로 그 다음에 목숨을 각오하고 탈영 계획을 실천에 옮깁니다. 아나와 에리히는 서서히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두 사람은 항상 함께 불법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껌과 여러 가지 물건을 팔면서 함께 지냅니다. 고난의 삶은 그들로 하여금 빵 한 조각이라도 나누어먹게 하였고, 그들의 마음속에 연정이 싹트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두 사람은 약 1년간 함께 의지하면서 살아갑니다. 에리히는 전쟁이 끝나면 오로지 아나를 위해서 살리라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별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하나는 1947년 여름에 드디어 딸을 만나, 그미를 알트마르크로 데리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