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신학이론

서로박: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

필자 (匹子) 2018. 8. 18. 16:48

프리드리히 D. E. 슐라이어마허 (1768 - 1834)특히 신약 성서를 고려한 해석학과 비평 (Hermeneutik und Kritik mit besonderer Beziehung auf das Neue Testament)1838년 슐라이어마허의 사후 그의 전집에 처음으로 실렸다. 슐라이어마허는 해석학에 대한 독일 낭만주의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는 나중에 딜타이와 불트만에 의해서 아주 활발하게 후세에 전해졌다.

 

슐라이어마허의 영향은 오늘날 그의 후기 이론에 국한된 인상을 풍긴다. 예컨대 1829년 아카데미 강연이 활발하게 수용된 것에 비하면, 그의 이전 시기, 가령 1805(그리고 1809/10)의 아포리즘과 해석학에 대한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영향 등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작가 스스로 이해한 것보다도 작가를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사람은 프리드리히 슐레겔이었다.

 

슐라이어마허의 공로는 다음의 사실에서 발견된다. 즉 그는 성서의 해석 그리고 미학적 비평 등에 대해 어떤 보편적 해석학의 필연성을 강조하였다. 그의 연구 대상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 하나는 이른바 이해하려는 정확성 (subtilitas intelligendi)” 무엇인가? 하는 보편적 규명 작업이요, 다른 하나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예술을 대할 때 무언가를 명징하게 밝히려는 작업이다. 슐라이어마허는 후자의 경우 좁은 의미에서의 해석 [“해명하려는 정확성 (subtilitas explicandie)”]을 적용하고 있다. 이로써 문학 예술 작품은 단순한 객체로 간주되었다.

 

초기 저작물에서 슐라이어마허는 문법적 해석과 기술적 해석을 서로 구분한다. 전자는 고유어와 외래어에서 언어 영역을 추적해야 하는 반면에, 후자는 하나의 개별적 단일성으로서의 배치의 요소들(“숭고한 의미에서의 문체에 이르기까지) 연구해야 한다. 이때 해석은 [마치 문법적 해석과 기술적 해석 사이에 떨림이라도 발생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뒤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슐라이어마허는 작가와 원래 독자에게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의미론적 동질성을 추측하고, 둘 사이의 의미론적 차이를 상상하였다. 여기서 그는 작가의 암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직접 독자가 되어라라는 문헌학적인 강령을 내세운다. 이로써 그는 역사 이전부터 유효한 해석학의 프로그램을 발전시킨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놓인 시간적 차이는 독자로 하여금 작가의 정조 속으로 사상과 감정을 이입시키도록 작용하고 있다. 여기서 슐라이어마허는 작품을 대할 때, 일단 자신의 고유한 입장을 배제시켜라, 이른바 자기 포기 (Entäußerung)를 요구한다. “인간은 자신의 입장이나 지조를 벗어나서, 작가의 입장이나 지조 속으로 잠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해의 과정-슐라이어마허에 의하면- 창조 과정과는 반대로 전개되는데, 다음과 같은 재능 미학의 연장으로 이해된다. [재능 미학은 헤르더 (Herder) 이후로 발전되어온 문학 예술적 입장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에 의하면 제반 과정은 어떤 무언가를 창조하는 삶의 순간에서 시작되고, 작품의 모든 내용은 처음 생각했던 곳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러니까 재능 미학은 무엇보다도 창작시의 영감과 모티브에 커다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서 오늘날 수용 미학적 관점과는 대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슐라이어마허는 이해의 과정 속에 도사린 모든 예언성 무엇보다도 어떤 재능 있는 작가의 창조적 행위와 관련시킨다.

 

문제는 주어진 발언을 역사적으로, 예언적으로, 객관적으로 그리고 주관적으로 추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이로써 수사학, 해석학 그리고 변증법 등의 학문적 연계성이 형성된다. 제반 학문적 영역은 특정한 사고를 공동적으로 표상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로써 이해란 오해를 스스로 낳는실천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그러한 한 우리는 -슐라이어마허에 의하면- 이해의 기술을 [해석의 여러 가지 방식을 동원해서] 훈련하고 연습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