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브레히트: 제 9번째 소네트

필자 (匹子) 2022. 4. 27. 11:01

제 9번째 소네트

 

그대가 성교를 배웠을 때, 나는 가르쳤어

전혀 나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성교하라고.

마치 그대가 내가 아니라 사랑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대의 욕정을 내 접시에서 후루룩 먹어달라고.

 

나는 말했어, 설령 나를 잊는다 하더라도,

다른 남자들과 성교한다고 상상하지 말라고.

네게 주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남근이야.

기분 좋음 그 이상을 느낄 거야, 나의 것이니까.

 

나는 바라지, 너 자신의 고유한 살결 속으로

푸욱 가라앉기를, 그렇다고 해서 나는

어떤 남자가 실수로 그대에게 접근한다 해서

 

그대가 즉시 그와 헤엄치기를 원하지는 않아.

한 남자에게 운명 지워져 있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많은 남자와 관계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Das neunte Sonett

 

Als du das Vögeln lerntest, lehrt ich dich

So vögeln, daß du mich dabei vergaßest

Und deine Lust von meinem Teller aßest

Als liebtest du die Liebe und nicht mich.

 

Ich sagte: Tu nichts, wenn du mich vergißt

Als freutest du dich eines andern Manns!

Ich geb nicht mich, ich geb dir einen Schwanz

Er tut dir nicht nur gut, weil’s meiner ist.

 

Wenn ich so wollte, daß du untertauchst

In deinem eignen Fleische, wollte ich nie

Daß du mir eine wirst, die da gleich schwimmt

 

Wenn einer aus Versehn hinkommt an sie.

Ich wollte, daß du nicht viel Männer brauchst

Um einzusehen, was dir vom Mann bestimmt.

 

 

이 시를 자세히 읽으면, 우리는 두 가지 사항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브레히트가 인간의 성행위를 하나의 쾌락으로 이해한다는 사실입니다. 시적 자아는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을 의식하지 말고, 그저 접시에 담겨 있는 음식을 "후루룩 먹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브레히트는 처음부터 동료 작가 이를테면 카프카, 릴케 그리고 세자레 파베제 Sesare Pavese 등과는 달리 관습, 도덕 그리고 법과 관련되는 죄의식을 추호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작가 세자레 파베제는 자신의 성의 체험을 후회하면서, "사랑은 혐오를 남기는 하나의 위기이다."라고 술회하였으나, 브레히트는 이러한 감정에 사로잡힌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브레히트의 전체적 삶을 염두에 두면서, 그의 단 하나의 입장만을 도출해낼 수는 없습니다. 여성에 대한 젊은 브레히트의 태도는 나이든 브레히트의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젊은 시절 브레히트는 1003명의 여성을 건드린 돈 후안의 기록을 깨뜨리려고 마음먹었지만, 나이든 브레히트는 계속 바람을 피웠으나, 젊은 시절처럼 거칠게 성을 탐하지는 않았습니다.

 

1950년대에 그가 사귀었던 애인 이조트 킬리안 Isot Kilian의 여러 발언은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브레히트는 "여자에게 갈 때 채찍을 들고 가는 것을 잊지 말라"라는 니체 Nietzsche의 말을 되새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든 브레히트는 이러한 생각을 접고, "채찍은 훌륭한 기사에게는 다만 부담스러운 짐이 될 뿐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용시에서 브레히트는 쾌락을 위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를 의식하지 말고 "남근Schwanz"만을 의식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상기한 시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다른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브레히트는 스스로 다수의 여성과 사랑과 성의 관계를 맺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애인들이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시적 자아는 자신의 애인들이 그의 "살결 속으로 푸욱 가라앉기를" 바라지만, 정작 그들이 다른 사내를 사랑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그들과 조우한다고 해서, 시적 자아는 자신의 정인들이 "그와 헤엄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브레히트의 정인들은 다만 "실수로" 누군가와 살을 섞을 수도 있지만, "운명"적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동침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브레히트가 정인들에게 말하는 바는 자명합니다. 나와 동침한다고 의식하지 말고, 나의 "남근"과 조우한다고 생각할지언정. "다른 남자들과 성교한다"는 것을 "상상" 조차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에 관한 브레히트의 이기주의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다수의 여성들과 깊은 관계에 빠져도 상관없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들은 결코 다른 사내들과 깊은 관계 빠지지 말라는 요구 사항에는 어떤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다수의 여성을 사귀는 자는 사랑하는 아내 역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용인해야 마땅한 법입니다.

 

그런데도 바람둥이들은 자신의 아내가 정갈하고 조신하게 살아갈 것을 바랍니다. 괴테 역시 여성들을 몹시 탐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젊은 작가 렌츠가 자신을 사랑하던 여성, 프리드리케에게 집적거린 사실을 접하고 몹시 불쾌함을 드러내었다고 합니다. 어째서 이런 유형의 플레이보이들은 성에 있어서 그렇게 이기적인 태도를 취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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