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볼프 본드라첵: 오리엔트 호텔

필자 (匹子) 2022. 5. 6. 11:40

오리엔트 호텔

 

태고 시절부터 사랑하는 연인들은

마차의 마부들에게 훤히 비치는

어떤 열정으로 애무하다가

그곳으로 가서 옷을 벗는다.

선잠은 여러 습관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난다. 사람들은 과감히 웃는다.

여자들의 살덩이, 서로 분배해야 하는

훔친 물건, 그것은 빌로도 커튼보다

더욱 육중하다, 커튼의 색은 여기서

어떤 아기도 출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안 그래도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떤 완전한 삶이 되지 못한다.

그는 말한다,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그미는 태고 시절부터 그 때문에

눈물 흘리려 하고, 그의 말을 믿는다.

 

Hotel Orient von Wolf Wondratschek:

 

Seit Menschengedenken gehen dorthin

die Liebespaare und entkleiden sich

unter Liebkosungen einer Leidenschaft,

die auch Fiakerkutschern einleuchten.

Langsam entweicht der schlechte Schlaf

anderer Gewohnheiten. Man wagt zu lachen.

Das Fleisch der Frauen, dieses Diebesgut,

das es zu teilen gilt, schwerer ist es

als die samtenen Vorhänge, deren Farbe

daran erinnert, daß hier keine Kinder

gezeugt werden. Auch sonst wird aus dem,

was hier geschieht, nie ein ganzes Leben.

Es reicht, sagt er, die Zeit nicht.

Und sie, seit Menschengedenken will sie

darüber weinen, glaubt ihm.

 

(질문)

 

1. 시의 제목은 오스트리아, 빈의 어느 호텔을 가리킵니다. 그밖에 빈을 연상하게 하는 시어는 무엇입니까?

2. “선잠”은 나쁜 잠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선잠은 여러 습관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난다.” 속에는 어떠한 삶의 과정이 응축되어 있습니까?

3. 마지막 3행에는 연인의 대화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주제를 고려하여 이를 해명해 보세요.

 

(해설)

오스트리아의 빈에 있는 “오리엔트 호텔”은 이른바 러브호텔입니다. 그 곳은 러브호텔로 기능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매춘 영업소나 다를 바 없습니다. 빈 시 당국은 매매춘 행위를 공개적으로 탄압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근절되지 않을 바에야, 공공연하게 이를 허용하는 게 낫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공창 제도를 마련하여, 시당국에서 매춘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위생을 철저하게 관리하곤 합니다. 여자들만 매춘사업에 종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남자들 가운데 남창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창들은 일반적으로 “Callboy”라고 명명되지만, 독일 사람들은 그들을 “Kavalier”라고 지칭합니다.

 

시 작품을 해설하기로 하겠습니다. 이 시는 1996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오리엔트 호텔”이라는 명칭은 고유 명사이지만, 그 자체 오래 전에 동방에서 행해졌던 “혼음” 내지 “수간 (獣姦)”을 연상시킵니다. 실제로 유럽 사람들은 가령 터키의 규방을 연상하며, 동방 민족들의 무질서한 성생활을 비아냥거리곤 했습니다. 따라서 “오리엔트 호텔”이라는 이름 자체가 성적인 욕구와 관련됩니다.

 

시의 제목과 “마차의 마부 (Fiakerkutscher)”라는 시어는 시적 공간이 오스트리아의 빈이라는 사실을 시사해 줍니다. 실제로 빈의 여러 관광 명소 근처에는 화려한 마차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적 자아는 시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는 마치 관음증 환자처럼 오리엔트 호텔 근처의 사람들을 세밀하게 관찰합니다. 그의 묘사에는 어떠한 감상적 태도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선잠은 여러 습관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난다.” 이 구절의 의미는 그 자체 모호합니다만, 이어지는 문장으로 유추될 수 있습니다. 가령 처음으로 창녀를 대하는 남자와 처음으로 “고객”을 맞이하는 처녀의 마음을 헤아려 보십시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고, 부끄러우며, 추악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모든 것을 유희로 생각하며, “과감히” 웃기도 합니다. 시인은 “여자들의 살덩이”를 “훔친 물건”, 즉 “장물 (臓物)”과 비교합니다.

 

본드라첵의 시는 어떤 비극적 정서, 즉 쓸쓸함과 고통을 느끼게 해줍니다. “살덩이”가 “분배”될 수 있다는 발언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어느 특정한 임에게 바쳐져야 하는데, 오리엔트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그것들은 여러 고객들에 의해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화류계라고 하지만, 그곳에서도 순정은 있습니다. 비록 한 번의 만남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순간적으로 엄청난 사랑의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랑은 어떠한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커튼”의 배후의 공간에 머물던 자들을 위해서 “어떤 아기도 출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유형의 순간적 만남과 이별을 “완전한 삶”이라고 규정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도덕적 근엄함 때문에 시인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며, 아기를 낳아서 기르기에는 “시간이 충분치 않”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몸 파는 어느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말”에 동의합니다. 이러한 일은 시인에 의하면 “태고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오리엔트 호텔은 바빌론 이후로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연이 은폐되어 있는 장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