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박설호: 강덕경, 혹은 알렉산더 미처리히 (1)

필자 (匹子) 2022. 5. 7. 14:33

아래의 글은 필자의 저서 호모 아만스. 치유를 위한 문학 사회심리학 (울력 2017)에 실려 있습니다. 많은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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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덕경 할머니의 「빼앗긴 순정」: 강덕경 할머니의 그림 『빼앗긴 순정」을 다시 감상합니다. 한 가운데 거대한 나무가 서 있습니다. 나무에는 벚꽃이 만개해 있습니다. 나무가 이다지도 섬뜩하게 느껴지는 그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알몸의 여성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기회를 빼앗기고, 처녀성을 빼앗긴 게 분명합니다. 그림속의 여성은 자신의 젖가슴 그리고 생식기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있습니다.

 

부끄러움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끄럽다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가슴과 생식기를 가리고 싶었겠지요, 그러나 여성은 고동색의 살벌한 나무 아래에서 자신의 얼굴만을 감추고 있습니다. 얼굴을 가린 것은 단순히 끔찍한 성노예의 기억을 망각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할머니는 어떤 끔찍함과 수치심 때문에 얼굴을 가립니다. 그미가 빼앗긴 것은 순정뿐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 그리고 명예였던 것입니다.

 

2. 속임수 그리고 기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강 할머니가 정신대에 끌려가게 된 과정입니다. 강 할머니는 1929년 진주 출생으로서 당시 진주에 있는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때 일본인 남자 선생님은 그미에게 일본으로 떠나라고 권유합니다. 일본에 가면 배우면서 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미는 150명의 조선 처녀들과 함께 일본행 배를 타게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어느 누구도 이들에게 여자 근로 정신대가 종군 위안부로 활동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끔찍한 속임수가 젊은 처녀들을 파국의 구렁덩이로 밀어 넣었던 것입니다. 처음에 강 할머니는 공장에서 힘든 노동을 감행하다가, 결국 다름 처녀들과 마찬가지로 일본군 성노예로 일하게 됩니다. 하루에 스무 명 혹은 열다섯 명의 군인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도망칠 수도,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해방이 되었을 때 그미는 임신하게 되었고, 태어난 아이는 몇 년 후 폐렴으로 불귀의 객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강 할머니는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고 살다가 1997년 2월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3. 여성의 성기에 대한 증오와 여성 혐오 그리고 살해욕구: 물론 전쟁 시에 여성들이 참혹하게 성폭력 당하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비일비재하게 출현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일본군처럼 위로부터의 정책에 의해서 집단적으로 타국의 여인들을 성노예로 활용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종군 위안부는 한편으로는 군인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게 하는 단순한 의도를 지니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 여성에 대한 증오 그리고 살해 욕구와 같은 사디즘의 병적 증상과도 관련을 지닙니다.

 

이를테면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기인 1918년부터 1923년까지 독일 정부는 이른바 체제비판적인 좌익 집단이라는 스파르타쿠스를 파괴하기 위해서 “의용군Freikorp”을 조직하게 했습니다. 의용군들은 당시에 수많은 독일 여자 그리고 유대인 처녀들을 잡아다가 성적 고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사회 심리학자, 클라우스 테베라이트Klaus Theweleit는 『남성의 판타지Männerphantasie』(1993)라는 책에서 의용군들이 이후에 출현할 나치 근위대의 전신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Theweleit: 158f).

 

“여성의 성기Vagina”에 대한 증오, 두려움 그리고 여성에 대한 살해 욕구는 의용군과 나치 근위대에게 공통적으로 도사리고 있는 병적 집착이었습니다. 이는 영아의 시기에 경험한 성적 학대 내지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성폭력 등에 기인하는지 모릅니다. 나치 근위대는 죄를 저지른 젊은 유대인 남녀로 하여금 섹스하게 하였고, 주위에서 이를 관음하곤 하였습니다. 유대인 여자가 오르가슴에 도달할 때 그들은 유대인 여자로 하여금 가죽 끈으로 남자의 목을 조르게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머리로 향하게 될 피는 남근으로 모이게 되는데, 이로써 남근은 엄청나게 부풀어 오릅니다. 유대인 여자는 극도의 황홀에 빠지고, 남자는 숨이 막혀 끝내 목숨을 잃습니다. 나치 근위대는 이러한 광경을 바라보며 희희낙락거리곤 하였습니다.

 

4. 가해자의 반성은 어디 있는가?: 대부분의 가해자는 과거에 저지른 자신의 죄악을 가급적이면 잊으려고 이를 씁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수모를 기억하고, 평생 이를 마음아파 합니다. 특히 성폭력의 경우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일본군인들 가운데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일본군 성노예였던 한국 여성들에게 공개적으로 사죄한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미성년의 소녀에게 성폭력을 자행한 사람이 자신은 도덕적으로 깨끗한데, 오로지 술기운 때문에 그러한 짓을 저질렀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듯이, 당시에 참전했던 대부분 일본 남자들은 자신의 죄를 전쟁 탓으로 돌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피해자의 한 맺힘이 평생 지속된다는 사실입니다. 강 할머니가 폐암에 걸린 것도 과거의 끔찍한 고통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서 술과 담배를 가까이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약 강 할머니의 그림들이 남아 있지 않다면, 우리는 일본군 성노예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어째서 가해자는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의 고통을 십분의 일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일본 정부는 어떠한 이유에서 모든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요? 지금 생존해 있는 소수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면, 모든 것이 망각되리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역사는 반드시 참되게 기록될 것이며, 후세 사람들이 이를 분명히 기억할 것입니다.

 

5. 나치 범죄를 망각할 수 있는가?: 강 할머니를 떠올리면서 나는 가해자의 자기반성에 관한 심리 분석의 책 한 권을 다루려 합니다. 비록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가해자와 피해자의 저기반성의 문제를 다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성할 줄 모르는 무능력. 공동적 태도의 토대Die Unfähigkeit zu trauern. Grundlagen kollektiven Verhaltens"입니다. 알렉산더 미처리히 (Alexander Mitscherlich, 1908 - 1982) 그리고 마르가레테 미처리히 (Margarete Mitscherlich, 1917 - 2012)의 책은 1967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간행되었습니다. 두 작가는 세밀한 심리 분석을 통하여 독일인의 공통 심리라는 핵심적 주제를 깊이 천착하였습니다.

 

이 책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역사 그리고 50년대 그리고 60년대 서독의 현실상 그리고 독일인의 심리를 우선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나치 정당으로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는 실업을 극복하기 위해서 군수산업을 추진하였으며, 이로써 독일은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이때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에서 살해당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 동서독 분단국가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서독은 미국의 경제적 원조를 바탕으로 “라인 강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기적같이 부흥한 것이었지요. 절약과 근면으로써 부유하게 된 독일인들은 더 이상 과거의 참상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1950년대의 한국 전쟁을 계기로 경제 부흥을 이룩한 일본의 처지와 일본인들의 의식 구조와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