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고대 문헌

서로박: (2) 아리스토파네스의 "새들"

필자 (匹子) 2023. 2. 8. 19:59

(앞에서 계속됩니다.)

 

8. 새들의 왕국의 지도자: 친애하는 A, 인간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은 인간에게는 좋겠지만,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게는 커다란 손실로 작용합니다. 인간으로 인하여 이를테면 동식물의 영역이 축소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공중에 살고 있던 새들은 바로 이러한 위험의 가능성 때문에 두 남자가 창조하려고 하는 “꿈나라”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합니다. 합창이 계속되는 동안에 새들 그리고 주인공들 사이에 작은 마찰로 인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왜냐하면 새들은 두 사람을 적으로 생각하고, 오디새를 배반자로 간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파이테타이로스는 세부적 사항을 거론하면서, 새들을 차근차근 설득하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놀라운 계획을 실천에 옮깁니다. 파이테타이로스는 새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즉 “새들은 원래 현재의 신들보다 먼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제우스신이 권좌에서 물러나는 것이야 말로 과거 새들의 찬란한 왕국을 다시 복구해낼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파이테타리오스의 말을 고스란히 믿은 새들은 그의 제안에 감탄을 터뜨립니다. 뒤이어 그들은 인간의 나라에서 왕림한 손님에게 새 합창의 단장 직을 맡기는 게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결국 파이테타리오스는 새로 건립될 새들의 왕국의 정신적 지도자로 임명합니다.

 

9. 극작가의 패러디: 새 왕국에서 거주하려면, 누구나 날개를 필요로 합니다. 새의 왕국에서 날개 없다는 것은 이리저리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파라바제 parabase”, 즉 “합창 지휘자가 작가를 대신에 청중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말씀”이 전해지는 동안 (1 - 675행) 두 사람은 무대의 뒷부분에서 자신의 몸에다가 날개를 붙이는 절차를 거칩니다. 다른 극작품에서는 주로 극작가가 “파라바제”를 통하여 직접 청중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만, “새들”에서 나타나는 “파라바제”는 사건에 대한 서술로 이루어져 있지요.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에 (676 - 800행) 극작가는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합니다. 그 하나는 새의 관점에서 신의 계보학을 비아냥거리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관객들로 하여금 가급적이면 빨리 날개를 마련하여, 새의 나라로 망명하라고 촉구하는 일입니다. 이는 물론 극작가의 패러디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새의 국가는 어느 정도 틀을 갖추게 됩니다. 두 영웅은 드디어 제각기 날개를 갖추게 되었으며, 새로운 나라 역시 고유의 이름을 달게 됩니다. “꿈나라”는 명실 공히 “구름” 그리고 “뻐꾸기”를 합친 개념인 “구름 뻐꾸기 집 Wolkenkuckucksheim”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이제 주인공의 놀라운 계획이 거의 실현될 것 같습니다. 파이테타리오스의 마음은 감격으로 벅차오릅니다. 이어지는 장면들은 여러 가지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새로운 환경이 동물들에게 실제로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801 - 1765행)

 

10. 향락주의 인간에 대한 비판: 친애하는 A, 아리스토파네스는 “꿈나라”를 결코 긍정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이지요. 맨 처음 새 왕국으로 마구 몰려든 자들은 놀면서 기식하려는 자, 질시하는 자 그리고 날개를 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사제, 시인, 예언자, 천문학자 메톤, 아테네의 사절, “법률을 팔아서 먹고사는 상인”, 천박한 시를 쓰며 살아가는 무지렁이 철학자, 밀고자 등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인간들은 도착 직후에 즉시 추방당합니다. 이로써 아리스토파네스는 다음의 사항을 은근히 강조하려 했습니다. 즉 꿈나라는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향락주의 인간에게는 약간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도시 국가 내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유리하지 않다는 사항 말입니다. 신의 사절인 이리스 역시도 이와 비슷하게 취급당합니다. 그미는 인간들이 어째서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는지 알려고 했는데, 즉시 새 왕국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이러한 새로운 현실 상황을 올림포스 신들에게 전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