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포크너의 음향과 광기 (2)

필자 (匹子) 2022. 2. 8. 11:25

(앞에서 계속됩니다.)

 

제 3부는 제이슨의 내적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사망한 뒤부터 집안의 가장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카롤리네는 자식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정도로 병약하고 우울하지만, 유독 제이슨만을 아낍니다. 나머지 두 아들과는 달리 성격이 무덤덤하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냉담한 성품의 소유자인 카롤리네는 자식들을 차별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자식들의 심리를 망치게 합니다. 세 자식의 정서는 어머니에 대해 항상 서운함을 느꼈지만, 제이슨은 어머니의 편애로 인하여 자만심, 편협함 그리고 이기심을 떨치지 못합니다.

 

가령 제이슨은 자신의 가족에게만 불행이 찾아온다고 탄식을 터뜨리곤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소설은 싱클레어 루이스Sinclair Lewis의 『속물Babbit』 (1922)을 연상하게 합니다. 제이슨은 작은 임금을 받으면서 상점에서 일합니다. 증권에 돈을 투자해보지만, 언제나 돈을 탕진합니다. 그럼에도 돈 걱정을 하지 않는 까닭은 캐디가 생활비를 보내기 때문입니다. 캐디는 이곳 마을에서 쫓겨났지만, 딸, 쿠엔틴을 돌봐달라고 맡겨두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이슨은 질녀의 존재로 누나에게 압박을 가하여 생활비를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에 대한 제이슨의 입장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파멸로 이끈 누나, 캐디를 증오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누나의 딸, 쿠엔틴의 방종한 태도 역시 그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언젠가 캐디의 남편이 자신에게 은행원 직장을 알선해주겠지고 해서 크게 기대했는데, 이혼으로 인하여 이러한 기회가 수포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후에 제이슨은 허버드 헤드의 은행 거래를 끊고, 다른 은행에 계좌를 신청합니다.

 

제 4부는 전지적 관점에서 가족에게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제 4부에서 핵심적인 인물은 딜시 그리고 제이슨입니다. 딜시는 선한 영혼을 지닌 흑인 하녀로서 모든 허드렛일을 담당하면서 콤슨 가족과 자신의 가족을 돌봅니다. 그에게는 불구 남편이 죽을 때까지 이타적으로 그를 돌봅니다. 가령 1911년생인 캐디의 딸, 쿠엔틴은 딜시에 의해 성장했습니다. 그미는 매우 거칠고,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 거칠 게 없는 처녀로 자라납니다.

 

딜시 깁슨은 쿠엔틴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몹시 힘들어 합니다. 쿠엔틴은 그미의 어머니처럼 조숙하여 성적으로 매우 발달해 있지만, 쿠엔틴에게서는 어머니와는 달리 성에 대한 죄의식과 수치심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쿠엔틴은 마을의 시장터에서 건달 한 명을 만나 사랑을 나눕니다. 그러다 그미는 가출하기로 결심합니다. 결국 쿠엔틴은 제이슨의 무기를 빼앗아 그를 내리치고, 제이슨이 횡령한 돈 그리고 그가 저축한 지폐들을 금고에서 끄집어내어 어디론가 도주합니다.

 

 

제 4부에서는 놀라운 장면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흑인 하녀, 딜시가 벤자민과 자신의 자식을 데리고 교회로 향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입니다. 딜시는 강인한 본성과 도덕적 규범을 지닌 채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인물입니다. 과연 그미의 내면에 기독교적 의미로 이해되는, 현재를 극복하고 미래의 희망을 갈구하는 마음이 자리하는가? 하는 물음은 소설 속에서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흑인 여성, 딜시야 말로 주위 사람들에게 인간애를 전해주는 헌신적이고 실천적인 인물임에 분명합니다. 자신의 자식 뿐 아니라, 콤슨의 자식들을 한결같은 인내심으로 키운 사람이 바로 딜시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은 허영과 체면만을 중시하고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랑을 더러운 욕정이라고 매도하는 미국 관료주의의 가정을 은근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젊은 쿠엔틴의 가출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닙니다. 물론 그미의 도둑질 그리고 가출이 무조건 도덕적으로 미화될 수는 없겠지만, 독자들은 그미의 행동을 통해서 가문의 명예만 중시하고 사랑의 삶을 처음부터 거부하는 콤슨 가족의 무미건조하고 고루한 특징을 예리하게 간파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음향과 광기』처럼 한 집안의 모든 사항들을 속속들이 천착한 소설 작품은 없을 것입니다.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의식의 흐름의 기법을 동원하여 개개인의 내면을 명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한 사건이 개개인의 심리를 어떻게 영향을 끼치며, 그들의 운명적 삶을 얼마만큼의 범위에서 변화시키는가? 하는 과정을 심도 있게 묘파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전통 사회의 청교도의 윤리가 더 이상 효력을 떨칠 수 없을 때, 현재는 과연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요? 그것은 -사르트르의 표현에 의하면 “더 이상 미래를 구상하는 가능한 시간이 아니라, 과거의 힘에 의해서 모든 것을 억압하는 무엇”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전통성을 밝히고 이를 오히려 무조건 따르는 노력은 그야말로 퇴행적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의 과거의 개인적 사회적 역사 속에서 행해진 잘못 내지 오류를 도출해낼 때 자신의 밝은 미래를 능동적으로 찾아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바로 이 점이 포크너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