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최종천의 시 "파업 보름째"

필자 (匹子) 2018. 2. 13. 09:20

최종천: 파업 보름째

 

 

우리 공돌이만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하다 말고 그대로 놓아둔

우리 배속처럼 꼬인 산소 호스와 작업 선들

널브러진 공구들은

우리에게 파업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야 구호를 외치고 하늘을 쳐다본다지만

말도 못하는 저것들은 속이 어떨까?

어둠 속에서 저마다

간절한 눈빛이다.

망치자루를 쥐어본다.

어깨가 뻐근해지면서

콧등이 시큰거린다.

희박해지는 공기와 더러워지는 물은

인간에게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최종천 시집, 고양이의 마술 2011

 

 

 

 

 

최종철 시인의 시를 읽으면, 내 자신은 왜 한없이 초라해지고 부끄러워지는 것일까? 최 시인은 오랫동안 노동하면서 시를 써온, 얼핏 보기에는 시인 답지 않은, 그러나 시인 중의 참 시인이다. 그의 글은 어떠한 미사여구도 허용하지 않는 가장 인간적인 향기를 드러내지 않는가? 시 앞에서 나 자신이 초라해지고 부끄러워지는 까닭은 아마도 학문한다는 구실로 한편의 평문도 쓰지 않은 채 세월을 보내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문학 교수로서 (일견) 편안한 삶을 보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시작품 "파업 보름째"는 순간적으로 나의 폐부를 찌른다. 상기한 시는 어떠한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15일간 파업을 전개하는 노동자를 묘사하고 있다. 파업을 벌이는 자는 자신의 밥줄을 수단으로 사업가와 대결을 벌이고 있다. 파업은 암담한 미래에 대항하고 자신의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해달라는 요구사항이다. 특히 남한에서는 노동 법이 있어도 거의 유명무실하고, 공권력은 사업자의 편에서 노동자들의 얼굴 그리고 노동자들의 등을 짓누르지 않는가? 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은 남한에서는 참으로 심각하다.

 

파업을 벌이는 자에게 파업 외에는 어떠한 다른 생각이 떠오를 겨를이 있을까? 그런데도 시적 자아는 놀랍게도 기상천외한 발상을 드러낸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산소 호스와 작업 선들 그리고 공구들이 인간에게 파업을 벌이고 있다는 통찰력이다. "말도 못하는" 공구들은 인간을 향해 무언가 항의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물 역시도 "어깨가 뻐근거리고, 콧등이 시큰거"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물들은 말한다. 왜 인간들은 자신들을 혹사시키면서 공기를 더럽히고, 물을 더럽히는가? 하고 말이다. 최종천 시인의 시는 이렇듯 어떤 복합적인 내용을 우리에게 환기시켜주고 있다. 즉 사회적 정의의 문제 속에는 인간의 삶의 근본을 묻는 생태적인 물음이 담겨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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