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이명기의 시, "병이 떠나는 아침"

필자 (匹子) 2018. 4. 22. 11:14

병이 떠나는 아침

이명기

 

 

밖에서 부르는 소리,

내게서 먹고 마시고 뚱땅거리며 드러누워

기숙하던 것이

부스스 일어나 걸어나간다

병이 떠나는 아침

오래 앓은 것이 떠나는 아침,

부스스한 몰골로 문을 열듯 몸을 열고 나가

댓돌 아래서 돌아보는

저 눈빛에도 정이 들었는가,

한여름 풀밭처럼 들끓던 소란이여

가서 다신 오지 말아라

돌아누울 때마다 나는 비좁은 몸이었으니

나는 삐걱거리는 잠이었으니,

누군가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홀연히 떠나는 아침,

텅 빈 몸으로 몇 걸음 걸어가 밖을 본다

아무도 없다.

 

이명기: 허공을 밀고 가는 것들, 천년의 시작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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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기에 느끼는 아련함 속에서 인간은 누구든 간에 죽음의 흔적을 감지합니다. 그것은 내 몸 속에"먹고 마시고 뚱땅거리며 드러누워/ 기숙하던" 놈이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평상시에는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병을 앓으면서 자신의 몸과 목숨을 인지하게 됩니다. 오랫 동안 그 놈은 몸과 마음속에 소란을 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이하게도 몸속에 머물던 놈에게 정이 들기도 합니다.

 

가서 다신 오지말아라.

 

누군가가 내 몸을 들락거리면서 오가는 동안에 나는 잠을 설치기 일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아침에 병이 떠나가는 것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 놈은 내 몸의 문을 열고 홀연히 떠납니다. 나가 보니, 그 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명기의 시는 우리에게 놀라운 것을 연습하게 합니다. 병을 껴안는 일, 병을 배웅하는 일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죽음과의 조우를 연습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