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뵐 (1917 - 1985)의 소설 "숙녀와의 그룹 사진 (Gruppenbild mit Dame)"은 1971년에 간행되었다. 자전적 요소를 약간 지닌 이 작품은 뵐의 소설들 가운데 성공작으로 평가된다. 소설 속에서 뵐은 하나의 기존 질서 내지는 체제로서의 가정, 교회 그리고 국가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이는 계급 이데올로기를 유발시킨다는 이유로 가정 교회 그리고 국가 체제를 인정하지 않았던 공상적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언 (Robert Owen)의 무정부주의적 세계관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뵐은 전후 독일의 가정, 교회 그리고 국가가 개개인을 억압하고 예속시키는 전체주의적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가정, 군대 그리고 국가는 -뵐의 견해에 의하면- 개개인의 복된 삶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노동력 내지는 기능적 능력을 착취하기 위한 기관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976년 12월 5일 하인리히 뵐은 숙녀와 그룹사진의 등장 여배우인 로미 슈나이더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소설은 총 1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 2장부터 제 8장까지는 소설의 제 1부를, 제 9장부터 제 14장까지는 제 2부를 형성한다. 제 1부는 1928년부터 1945년까지의 주인공의 삶을 과거체로 묘사하며, 제 2부는 1945년부터 1970/ 71년까지의 주인공의 삶을 다루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레니이다. 그미의 본명은 헬레네 마리아 파이퍼인데, 18세부터 교회에 간 적이 없다. 레니는 이른바 체제 순응하라는 사회의 요구를 거부하고, 오직 자신의 주관적 필요성에 입각한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제 1부에서 레니의 삶은 이를테면 보고, 조서, 대화, 회고담 등으로 조금도 빠짐없이 기술되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 서술은 간간이 여러 가지의 주관적 인지 행위 내지는 주관적 판단 등에 의해 차단된다. 레니의 아버지는 건설업자로서 30년대 40년대에 비교적 부를 누린 사람이다. 1928년생인 레니는 선천적으로 감각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는 오관의 인지 능력 뿐 아니라, 오욕 칠정에 대한 분명한 표현 능력을 지칭한다. 레니는 국가나 교육 기관에 적응하지 못한다. 종교 그리고 수학의 과목에서 낙제하기도 하고, 주위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당한다. 레니는 관능성의 천재이지만, 교육 기관에 의해서 그녀의 능력은 무참히 짓밟힌다. 학교는 말하자면 모든 것을 “업적 원칙”에 의해 운영되었던 것이다. (질문: 여기서 “업적 원칙 (Leistungsprinzip)”이란 프로이트의 개념인 “쾌락 원칙 (Lustprinzip)” 및 “현실 원칙 (Realitätsprinzip)”과 어떤 관련성을 지니고 있는가?)
가령 종교 시간에 선생은 성적 쾌락에 대해 추상적으로 설명한다. “남녀 간의 성 행위는 불가피한 생식 과정입니다.” 선생은 이 모든 것을 생크림이 발린 딸기로 비유해서 설명했다. “그러니까 허락된 키스와 허락되지 않은 키스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레니는 얼굴을 붉히고 시립 도서관을 찾는다. 그곳에서 성병과 성 생활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말하자면 학교는 그미에게 전혀 성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미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은 수녀 라엘이었다. 수녀 라엘은 나치가 집권하던 시대에 레니의 집에 숨어살던 유대인이었다. 레니는 독일 직업 군인, 알로이스 파이퍼와 약혼하고 삼일간의 (그다지 신명나지 않는) 신혼 생활을 보낸다. 그러나 알로이스는 며칠 후 전사한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 레니는 발터 펠쳐의 화환 생산 공장에서 일한다.
이때 그미가 알게 된 사람은 소련군 포로, 보리스 르보비치 콜토프스키였다. 레니는 난생 처음으로 보리스와 사랑에 빠진다. 그미는 인간 이하로 취급당하는 포로에게 먹을 것과 커피를 갖다 준다. “보리스는 레니의 용기 있는 행위에 의해 인간으로 만들어졌고, 인간이기를 선언했다.” 전쟁이 끝난 후 아들 레프가 태어난다. 그러나 1951년 보리스는 로틀링엔 광산에서 일하다 사망한다. 이때 레니의 나이는 불과 23세였다. 레니는 아들 레프를 직접 교육시킨다. 그러니까 아무런 간섭 없이 미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아들을 직접 가르치는 것이다.
제 2부는 제 9장에서 1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자면 레니가 처한 현재의 시점에서 모든 게 기술되고 있다. 사회적 발전이 내리막길을 치달았다면, 레니의 삶은 이와는 반대로 더욱더 성숙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레니는 돈과 명예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레니는 비참하게 살아가는 터키 외국인 노동자 메멧 사힌과 결혼하고, 임신한다. 그미는 주변의 인간 이하로 취급당하는 사람들 (가난뱅이, 외국인, 쓰레기 치는 사람 등)을 모아 자생적 집단을 결성한다. (쓰레기 수집 및 판매 등이 그들의 첫 번째 일감이다.) 자생적 집단, “레니 구조 위원회 (Helft Leni Komitte)”라는 단체는 주위의 어떤 계급 내지는 단체와도 타협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니까 그곳의 사람들은 어느 누구의 간섭 없이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생산하고, 소비하며, 공동의 삶을 영위한다. 공동체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외부로부터 독립하여 살아가려고 한다. 그렇지만 “레니 구조 위원회”가 외부와의 단절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이로써 레니의 단체가 무정부주의적이며 공산주의적 실험을 감행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주위 사람들은 “레니 구조 위원회”가 현대 사회의 모든 관습 도덕 법 체계를 무너뜨리며, 심지어는 시장 기능마저 약화시킨다고 항의한다. 레니는 주위의 일반 사람들로부터 “쓸모없는 년”, “공산주의 창녀”, “소련 놈 애인”, “터키 여자”, “체제 파괴적 마돈나” “타락한 년” 등으로 비난당한다. 그럼에도 그미는 재벌 회사, 호이저에 대항해서 싸운다. 호이저는 2대에 걸쳐 영리만을 목표로 영위되는 회사이다. 호이저 회사는 인간적 동정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다. 재벌 회사는 “소비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하고 공언함으로써 보통 사람들을 착취한다. 따라서 호이저 회사가 레니의 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들 레프 역시 어머니의 일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레니와 함께 일한다. 그는 공문서 위조로 3개월간 투옥된다.
레니 주위의 사람들은 일견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직업을 지니고 있으나, 인간적 품위와 고결함을 지니고 있다. 가령 창녀 마르가레테는 상대방의 즐거움을 거절하지 못해서 자신의 몸을 맡기는 이타주의의 여성이다. 구두쇠, 펠쳐는 철저한 실리주의자인데, 시체에서 뽑은 금니를 레니 구조위원회에 기탁한다. (질문: 소설을 구해 읽고 다음의 물음에 답하라. 다음과 같은 표현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레니의 흡연, 따뜻한 빵과 커피 시간, 넓은 공간으로서의 방, 쓰레기와 먼지 장면 등”)
뵐의 노벨상 수상 장면 요약하건대 하인리히 뵐은 세 가지 단체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첫째, 억압하는 기관으로서의 학교이다. 특히 종교를 가르치는 선생은 학생들로 하여금 인간의 내적 행복을 스스로 부정하고 주어진 사회의 일꾼이 되기만을 강요하고 있다. 둘째, 억압하는 기관으로서의 군대이다. 소설 속의 자아는 군대가 살육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며, 기능적 명령 수행만을 강조한다고 심도 있게 비판한다. 셋째, 억압하는 기관으로서의 재벌이다. 기령 호이저의 기문은 피도 눈물도 없는 태도로 이윤만을 추구한다. 호이저의 손자 쿠르트 호이저는 레니를 먼 곳으로 추방시키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녀가 공동체를 만들어 자신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행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다음의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즉 레니의 아버지가 호이어 조부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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