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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브라쉬의 극작품들 (1) 로터

필자 (匹子) 2020. 9. 29. 11:33

극작품 「로터 Rotter」는 1965년에 집필되어 동독에서 초연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1978년에 이르러 서독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극작가는 지금까지의 경우와는 달리 역사의 주변 인물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가령 하이너 뮐러가 브레히트의 「파처 Fatzer」에 관해서 관심을 기울였듯이, 브라쉬 역시 권력에 이용당하다가 끝내 제거되는 인물을 집요하게 추적하였습니다. 브라쉬는 로터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역사에 관한 극작품이 아니라, 나의 역사관에 관한 극작품을 집필하려고 의도하였습니다.

 

이러한 발언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브라쉬의 작품이 역사에 대한 객관적 평가보다는, 역사의 핵심 사항에 관한 브라쉬의 주관적 입장을 부각시키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브라쉬는 이 작품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헬무트 하우프트만 Helmut Hauptmann의 르포「복잡한 모험 슈베트 Das komplexe Abenteuer Schwedt」(1964)를 참고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동독의 비터펠트 운동 당시에 발표된 르포인데, 작가는 “슈베트”라는 콤비나트 (기업 연합)에서 7000명의 기술자, 노동자들이 어떻게 건설 작업에서 제각기 독자적으로 그리고 서로 협동하여 일하는가? 하는 문제를 서술합니다. 말하자면 브라쉬는 “로터”라는 인물의 구체적인 삶을 묘사하기 위해서 체제옹호적인 르포를 활용한 셈입니다.

 

 

 

토마스 브라쉬의 반려 (Lebensgefaehrtin), 카타리나 탈바흐 (1954 - )그미는 브라쉬 극작품을 공연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로터는 오랜 세월 동안 타인에 의해서 이용당하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1933년에는 정육점에서 보조원으로 일하다가, 나치의 돌격대 (SA)에 가담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독일 군인으로 징집되어 전쟁에 참여했지만, 종전 후에 구동독의 건설 노동자로 일합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고유한 존재 그리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한 번도 성찰하지 않은 소시민이 바로 로터인 것입니다. 물론 주인공이 과거의 국가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의 열정은 개인적 사적인 삶을 방해합니다. 그는 마치 「사랑스러운 리타」의 주인공과 다를 바 없습니다. 로터에 비하면 죽마고우 라크너 Lackner는 자신의 삶의 문제를 꿰뚫어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국가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자이지요. 작품의 말미에 로터는 친구 라크너를 때려죽입니다. 왜냐하면 친구인 라크너는 주인공의 지난 50년간의 삶이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주었기 때문입니다.

 

브라쉬가 극작품에서 말하고자 한 바는 그 자체 자명합니다. 사회주의의 발전이 결코 긍정적이지 못한 까닭은 브라쉬에 의하면 로터와 같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치의 체제순응적인 노예는 아무런 검증의 과정이라든가 역사적 평가를 받지 않은 채 무조건 사회주의의 건설 노동자의 신분을 얻었습니다. 하이너 뮐러를 비롯한 많은 극작가들이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구서독에서는 최소한 커다란 죄를 나치 권력자들의 경우에 한해서 분명한 처벌이 주어졌지만, 구동독에서는 이러한 형식적 처벌조차 한 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련 군정은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재건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노동할 수 있도록 과거의 죄상을 불문에 붙였습니다.

 

로터는 한 마디로 “방해당하는 보이체크 Der gehinderte Woyzeck”로 명명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주어진 사회적 여건이 “자아가 배제된 인간”, 로터를 탄생시킨 셈입니다. 로터는 사회를 위해서 일하지만, 정작 자신의 관심사와 판단력이 결여된 로봇 인간,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노른자위 빠진) 흰자질만으로 이루어진 달걀”입니다. 그렇습니다. 로터는 보이체크와 흡사한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보이체크에게는 최소한 마리와 자식들이 존재합니다.

 

뷔히너의 작품 「보이체크」에 등장하는 주변인물인 박사는 보이체크에게 완두콩만 먹입니다. 말하자면 박사는 오로지 주인공의 육체적 상태에 관해서 관심을 기울일 뿐입니다. 물론 「로터」에서는 두 명의 학자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작품 속에서 “처락짜 (哲学者) Filosofen”로 명명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주인공을 규정합니다. “ (로터 -역주)가 활용된다면, 영웅이다. 새로운 인간, 언제나 일에 뛰어들 자세를 지니며, 어떠한 개인적 하자를 지니고 있지 않다.” 이로써 브라쉬는 전문화된 사회에서 이른바 전문가로 활동하는 “전문 백치 Fachidiot”의 전형으로서 “처락짜”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로터의 한 장면 

 

 

“새로운 인간”이라는 말은 1960년 구동독의 신경제 정책 이후로 회자된 바 있습니다. 새로운 인간은 그 자체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줄 아는 개인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브라쉬의 눈에는 개인의 고유한 삶을 누릴 줄 모르는 도구적 인간으로 비칠 뿐입니다. 브라쉬는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새로운 인간 - 그것은 인간을 도구로 만드는 소재이지요. 삶의 이력을 그려놓는 텅 빈 종이와 같아요. 거기에 글을 남기는 자는 지배계급이지요.”

 

마지막으로 당신을 위해서 한 문장을 인용할까 합니다. 루디 두츠케 Rudi Dutschke는 브라쉬의 산문집 『아버지들 앞에 아들들이 먼저 죽는다』를 읽고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다음의 사항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동독에서 모든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주의만은 아니다. 서독에서 모든 것은 사실이지만, 자유, 평등, 동포애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