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헬 4

페터 후헬의 시 '재판'

재판 페터 후헬 폭력의 비호 하에 살려고태어난 건 아니지만,나는 죄인의 무죄를 받아들였다. 강자의 권리로써정당성을 지닌 채판사는 무뚝뚝하게 내 서류를 뒤적이며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관대한 처분을전혀 원치 않은 채나는 몰락하는 달의 가면 속 한계 앞에서재판정에 서 있었다. 벽을 노려보다가나는 기사 (騎士)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바람은그의 눈을 꽁꽁 묶어두었고,엉겅퀴의 포자 (胞子)들이 덜거덕거렸다.바람은 오리나무 아래에서 강을 부추기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시대의 여울 속에서의연히 걸어가지는 않는다.물은 대다수의 발아래에 놓인돌들을 이리저리 옮겨놓는다. 벽을 노려보는 동안에피 묻은 그 연기를그래, 여명이라고명명할 수는 없구나,나는 판사의 판결을 듣고 있었다,누렇게 바랜 서류 속에서나온, 찢겨진 문장..

21 독일시 2024.12.14

페터 후헬: 성탄의 노래

성탄의 노래 페터 후헬 오 예수, 무엇을 오랫동안 추방했는가, 오 예수 그리스도여! 눈 속에서 동전 한 닢 집어든 자들은 당신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네. 그들은 당신의 외면을 탓하며 외치네 큰 소리로 당신을 부르고 있어, 그리스도여. 모든 게 짜디짜고 쓰라리다 하면, 아 정말 그대의 피를 측량할 수 있을까? 세계의 눈물, 어머니들의 가을을 당신은 아직 느끼는가? 오 아기 예수여! 그들 모두 굶주림의 셔츠 속에서 어떻게 말구유처럼 헐벗은 채 가련히 떠는지를! 오 예수, 무얼 그리 오랫동안 방치했는가, 아이들이 어떤 길도 찾지 못하게 하는 그곳에? 그대의 별빛 비치는 겨울 동안에 그들은 손을 비비며 몸을 데우고 싶었네. Weihnachtslied von Peter Huchel: O Jesu, was bis..

21 독일시 2021.12.17

(명시 소개) 동요에 의한 살풀이. 이달희의 시 「점치는 아이」(1)

나: 오늘은 이달희 시인의 작품, 「점치는 아이」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그의 시집 『낙동강 시집』(서정 시학, 2012)에 실려 있습니다. 이달희 시인은 1948년 경남 창원 출생으로서 오랜 창작 기간 동안 단 한 권의 시집만을 간행했습니다. 지극히 과작이지요. 그렇지만 시집에는 오랜 시간 농익은 포도주와 같은 수작들이 많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오랜 퇴고의 과정을 거쳤겠습니까? 너: 동의합니다. 이달희 시인은 시적 소재 내지 주제에 있어서 독일의 시인 페터 후헬 Peter Huchel을 연상하게 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후헬의 문학은 그리스도의 경건함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이달희 시인에게는 토속 신앙과 선 (仙) 사상의 흔적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시인은 1950년대 낙동강 주변에서 유년..

19 한국 문학 2021.07.01

서로박: 마이어의 무효 선고받은 독일인

독일의 비평가, 한스 마이어 (Hans Mayer, 1907 - 1998)의 "무효 선고받은 독일인 (Ein Deutscher auf Widerruf)"은 두 권으로 이루어진 회고록인데, 1982년에서 1984년 사이에 씌어졌다. 마이어는 문예 이론가 내지 에세이스트로 살아오면서, 많은 풍파를 겪었다. 그의 회고는 작품 속에서 50년대부터 시작되어 1980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스 마이어는 계몽된 유대인 시민의 가정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법률학을 공부했다. 이 시기의 이야기는 제 1장 “물고기의 표시 속에서”에 자세히 서술되고 있다. 당시에 쿠르트 투콜스키 (K. Tucholsky)의 날카로운 산문은 그에게 커다란 감명을 주었다. 마이어는 1923년에 게오르크 루카치 (G. Lukács)의 "역사와 계..

25 문학 이론 2021.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