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 3

가벼운 내가 떠나리라, 혹은 메타세쿼이아

승염이사 (僧厭離寺), 사염승거 (寺厭僧去) 중이 싫어 절을 떠날까, 아니면 절이 싫어 중을 떠날까? 이는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1980년대 말에 김수행, 정운영 두분 교수님은 학교를 떠났습니다. 학교의 재정을 문제 삼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학교 당국은 "사표를 제출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일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두 분 교수님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사표를 제출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사표를 수리한 다음에, 두 분 교수님을 강제로 퇴직시켰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실제로 존재했던 가장 치졸하고 가장 저열한 사기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수행 교수님은 다행히 S대에 자리를 잡았지만, 정운영 교수님은 오랜 기간 실직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당시 학..

2 나의 글 2021.09.27

이성욱과의 첫 만남

근자에 이르러 이성욱의 여러 책이 간행되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이성욱을 만난 것은 198X년 여름이었다. 당시에 나는 귀국 후 부산 독일 문화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었고, 이성욱은 한신대 대학원 학생이었다. 그는 어떻게 주소를 알아냈는지 몰라도 (아마도 염무웅 선생님이 중간에서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생면부지의 나에게 편지를 써서, 한신대 임용을 권했다. 아마 초여름이라고 기억된다. 한우근, 차봉희 선생님은 나를 만나기 위하여 부산까지 내려오셨다. 어느 더운 여름 날 한신대에서 교수 임용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의 좌장은 주재용 학장이었다. 특히 학생처장으로 근무하시던 故 고재식 박사님이 나에게 유독 까다로운 질문을 많이 던졌다. 면접을 마친 뒤에 나는 처음으로 이성욱을 만..

2 나의 글 2021.05.24

인물 대신 사상을

1. 선생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기쁜 일은 무엇보다도 선하고 훌륭한 제자와의 재회일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그리고 대학에서 나보다 인격적으로 더 훌륭한 젊은이들을 많이 만났다. 몇몇 졸업생을 생각하면,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벌컥 솟아오르곤 한다. 이들에 대해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느낄 때도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어느 대목이 생각난다. 사형 당하게 된 친구는 모친상을 당하여, 가장 절친한 친구를 볼모로 구금케 하고, 고향에서 장례를 치른 뒤 헐레벌떡 감옥으로 돌아온다. 이때는 갇혀 있던 친구가 처형당하기 위해 옥문 밖으로 끌려오던 참이었다. 두 젊은이는 옥문 앞에서 뜨겁게 포옹한다. 죽음조차 나눌 수 있는 친구 - 우리에게 이러한 친구가 있는가? 2. 대학에 근무하면서 나는 세 가지 사항을 항상 아쉽게..

2 나의 글 2021.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