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독재자는 누구를 사랑할 수도, 사랑 받을 수도 없다. 우리는 70년대 말경에 라보에시의 책을 간행할 계획을 품고 있었다. 이는 그 자체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게 아닌가? 라보에시는 유신 말기와 광주 사태의 숨 막히는 역사적 변화 과정을 그야말로 예언적으로 시사해주었던 것이다. 어느 날 친구는 서울에 거주하는 묘령의 여대생으로부터 면도날 들어 있는 백지 편지 한통을 받았다고 했다. 추후 알게 된 소문이지만 부산의 많은 학생들이 면도날 편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수염 깎지 않는 남쪽 대학생의 외모를 질타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면도날은 “데모하지 않는 부산의 대학생들이여, 차라리 남근이나 잘라버려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북녀 (北女)들의 잔인한 독려 때문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