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 키케로 사상의 한계: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두제와 민주제의 혼합 형태를 최상의 정치 형태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키케로는 이를 거부하고 군주제, 과두제 그리고 민주제의 절충 형태를 내세웠을까요? 여기에는 플라톤의 영향이 지대합니다. 키케로는 “국가를 다스리는 수장은 현명하고 영특한 철학자이어야 한다.”라는 플라톤의 말을 뼈 속 깊이 새기고 있었습니다. 키케로가 살던 시대는 과두제, 즉 세 사람의 권력자에 의한 정치 형태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키케로는 진정한 형태의 과두제는 로마의 원로원으로 충분하게 반영된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그리고 카이사르의 삼두체제는 원로원의 기능을 무너뜨리고, 백성의 안녕과 행복은커녕 오로지 권력 다툼을 가장 중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