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음악 이야기 (비어만) 34

볼프 비어만: 바로 금지된 것이 우리를 자극하게 하니까

볼프 비어만: 바로 금지된 것이 우리를 자극하게 하니까  누구도 허용된 것을 즐겨 행하지 않아바로 금지된 것이 우리를 자극하게 하니까  남자들, 질투심에 찬 너희가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의 바람피움으로남자의 얼굴에 먹칠하는,너희의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면,나는 충고하네, 질투심을 저버리라고결혼반지의 단단한 수갑을 풀라고아름다운 그미를 그냥 놔주라고계약이 그미를 더 이상 옥죄지 않으면그미는 오직 남자로서의 널 더욱 사랑하리라고왜냐하면 이렇지,누구도 허용된 것을 즐겨 행하지 않아바로 금지된 것이 우리를 자극하게 하니까  인민들은 언제나 익살 떨었지겸손도 존경심도 버린 채익살들은 마치 스스로 곰삭은독하고 달콤한 사과 소주야그러나 인민들은 강요로 시어빠진사과를 한입 덥석 씹지 않아오 법정이여, 중형으로 우리의익살..

서로박: 비어만의 '이카로스에 관한 발라드'

아래의 글은 다음의 책에 실려 있다. 박설호: 작은 것이 위대하다, 독일 현대시 읽기, 울력 2007년. 294 - 299쪽.  볼프 비어만은 1936년 함부르크에서 공산주의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소의 노동자였는데, 공산주의 활동으로 체포되어, 1943년 아우슈비츠의 강제 수용소에서 살해당하다. 비어만은 1953년 구동독으로 이주하여 훔볼트 대학에서 정치 경제학, 철학 그리고 수학 등을 공부하다. 첫 번째 가요를 발표했을 때, 동독의 관청은 이를 문제 삼았고, 1963년 그를 사회주의 통일당에서 제명시켰으며, 1965년 공연 금지 조처를 내리다. 1976년 서독 쾰른의 금속 노조의 초청으로 서독에서 연주 공연을 개최했을 때, 동독의 정부는 그를 추방시키다.  이후로 구동독에서는 끊..

볼프 비어만 u. 카를 미켈

동독 문학에서 가장 저항적인 시인을 꼽으라면 나는 폴커 브라운 (Volker Braun) 외에도 비어만을 꼽고 싶습니다. 그는 시대의 풍운아처럼 살아왔습니다. 비어만이야 말로 "자청해서 고통을 감내하는 Heiterkeit ins Leiden" (횔덜린) 시인의 전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하인리히 하이네가 1831년을 기점으로 독일과 프랑스에서 살아갔듯이, 그 역시 분단의 동서독에서 통일이 될 때까지 동독 그리고 서독에서 살았습니다. 사진은 1977년 쾰른 금속 노조의 초청시에 찍은 사진으로서, 가장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항구도시 함부르크의 정경입니다. 부산도 이와 비슷합니다. 볼프 비어만은 1936년 11월에 다고베르트 비어만과 에바 비어만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그의 아버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