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게속됩니다.)
요하네스 보브롭스키는 착취와 억압으로 이어진 비극적 역사의 땅 동유럽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그의 조상은 대부분 수공업과 농업을 직업으로 택하고 살았습니다. 그는 “독일인들이 리타우인, 폴란드인, 러시아인들과 근접한” 동프로이센, 다시 말해 미타우 지역에 유년기를 보냈는데, 그곳에서는 유태인의 거주 비율이 비교적 높았다고 합니다. 보브롭스키는 쾨니히스베르크의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거기서 헤르더 (Herder), 칸트 (Kant) 그리고 하아만 (Hamann) 등의 학문과 고대어를 배웠고, 오르겔 연주와 프로테스탄트 신앙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1937년부터 1949년까지 주로 그곳에서 군인으로 복무했지요. 오늘날 독일에는 “전쟁 봉사에 대한 거부 Kriegsdienstverweigerung”라는 제도가 있어서, 신념과 양심에 따라 군복무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군복무가 강제적이었습니다. (바로 이 시절에 그가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자의와는 달리 다른 민족, 가령 유태인과 폴란드인 그리고 소련 인들의 삶에 나쁘게 관여했다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나온 참회와 죄의식은 그의 주된 창작 모티브로 작용했습니다. 1949년에야 군인의 신분으로부터 벗어난 보브롭스키는 동베를린에서 출판사 편집자로서 일하게 되었지요. 한마디로 유년 시절의 고향 미타우 지역의 “체험”, 청년 시절의 다른 인종들에 대한 “경험” 그리고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지식” 등은 때로는 자연을 대상으로 한 시편 속에 때로는 그의 산문 작품 속에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보브롭스키의 주요 테마는 -가령 그의 시 「클롭슈토크에게 An Klopstock」에서 표현되고 있는 바- “(독일인들의) 온갖 잘못과 속죄에 관한/ 영혼들의 꾸민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이 시에 나타난 전체적 특성을 살펴봅시다. 「유년」속에는 세 가지 시간적 차원이 뒤섞여, 시적 공간 속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체험 (유년 시절에 직접 인지한 세계), 경험 (과거 청년기에 접하게 된 세계) 그리고 지식 (이 두 체험을 반추하는 현재 공간)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기에 보브롭스키는 과거의 영역에 현재의 생각을 투영시키기도 하고, 현재의 영역에 과거의 생각을 투영시키기도 합니다. 이로써 보브롭스키의 시적 대상은 오스카 뢰르케 Oskar Loerke 그리고 빌헬름 레만 Wilhelm Lehmann 등이 자연 시에서의 존재론적 접근과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오히려 그것은 유대인의 여류 시인, 엘제 라스커-쉴러 E. Lasker-Schüler라든가 넬리 작스 Nelly Sachs의 자연 묘사와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독문학자 볼프람 마우저 Wolfram Mauser)는 그의 책 "간청과 성찰 Beschwörung und Reflexion. Bobrowskis Sarma- tische Gedichte, Frankfurt a. M. 1970"에서 “보브롭스키의 은유는 세상과 두절된 고유의 장소에서 나타나는 암호 내지는 수수께끼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습니다. 자연에 관한 보브롭스키의 시어들은 시인의 특정한 체험 내지 특정한 (축복과 불행에 관한) 시인의 내밀한 기억과 결착되어 있습니다.
유년기의 체험과 청년기의 경험 그리고 장년기의 지식은 -이미 언급한 바대로- 「유년」에서 하루 동안의 시간 속에 축약되어 있습니다. 총 8연으로 이루어진 시에서는 전 생애에 걸쳐 오랜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내용들은 아침부터 밤까지의 시간으로 편입되고 있다고나 할까요? 가령 제 1연의 아침에 들리는 “꾀꼬리” 소리, 제 3연의 “오후”에 서성거리는 가축 떼, 제 6연의 저녁 무렵 들리는 “은 딸랑이” 소리, 제 7연의 “램프” 피운 노파의 방 그리고 제 8연의 “밤” 시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묘사들은 어떤 특별한 의도에 의해서 아침 시간, 오후 시간 저녁 시간 그리고 밤 시간 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유년의 “체험”은 나중의 “경험”과 최근에 확인된 “지식”과 착색되는데, 이는 우연히 하루라는 시간으로 표상되었을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친애하는 여러분, 본 특강의 제목은 보브롭스키의 시와 어떤 관련성을 지니고 있을까요? 시 「유년」 가운데 어떤 무엇이 속죄와 자기반성으로서의 기억과 관계되고 있을까요? 여러분들에게 권하건대 제 2연과 제 7연을 미리 다시 한 번 읽어보길 바랍니다. 제 2연에서 작은 마차를 몰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살아가는 유대인 남자 그리고 냄새나는 방에서 노래 부르는 노파는 왜 이 시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그 노파는 숨어 살아가는 여자가 아닐까요? 어쩌면 그 노파는 유대인 여자 아니면 다른 국적을 지닌 여자임에 분명합니다. 보브롭스키는 어느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며, 유대인들에 대한 자신의 수치심과 연민을 토로하였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내게 도저히 파악될 수 없는 놀라움입니다. 이 놀라움 없이는 나는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요.” 아닌 게 아니라 타 인종과의 평화 공존 문제는 보브롭스키의 수많은 산문에서 계속 다루어졌던 테마입니다.
보브롭스키 시에 관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발설하는 대신, 한 연씩 차근차근 음미해 보도록 합시다.
“그때 나는
꾀꼬리를 사랑했지 -
종소리는, 저 위에
잎사귀 공간 사이로
오르락내리락 하고,
(Da hab ich
den Pirol geliebt -
das Glockenklingen, droben
auf scholls, niedersanks
durch das Laubgehäus,)
제 1연에서는 자연에 파묻힌 동심을 묘사되고 있습니다. 유년에 관한 강렬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꾀꼬리에 관한 느낌에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기억은 종소리로 시인의 무의식 속에서 변화되어 기억 속의 희미한 상으로 투영되고 있습니다. 종소리는 마치 바람에 실려와, 아이 (시인)가 숨어 있는 은폐된 곳 근처의 잎사귀들을 흔들리게 합니다. (에른스트 블로흐도 희망의 원리 제 1권에서 말한 바 있듯이 대체로 아이들은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동경하는 편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은폐와 도주를 꿈꾸는 경향을 지니고 있지요.) 어쨌든 종소리의 청각적 특성은 시각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잎사귀 공간”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 조어 (造語)나 다름이 없습니다. 여기서 잎사귀 공간이 잎과 잎 사이의 숲속 공간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자신의 몸을 숨기며 놀던 공간인지 불분명합니다. 어쨌든 “당시”는 어린 아이에게 정신적 영혼적 안식을 제공하던 그러한 시기요, “저 위”는 시인이 어릴 때 느낀 평화와 질서 그리고 신뢰감과 위안의 장소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갈대 위로 붉은 딸기
이어진 숲가, 거기 쪼그려
앉아 있으면, 잿빛 유태인
남자가 작은 마차 몰고
우리 곁을 지나쳤지.
(wenn wir hockten am Waldrand,
auf einen Grashalm reihten
rote Beeren; mit seinem
Wägelchen zog der graue
Jude vorbei.)
제 1연에서 언급한대로 자연은 어린이에게 보호 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시인은 숲가에서 갈대밭 위에 열 지어 있던 산딸기를 채집하며 놀았던 것 같습니다. 이때 그는 아이들과 함께 숲가의 좁은 길을 지나치던 (나이든?) “잿빛 유대인”과 마주칩니다. 어쩌면 그 유대인은 약이나 화장품을 팔기 위하여 아코디언 연주를 하는 유랑 상인일지, 혹은 재단사, 아니면 옷 등을 파는 단순 도부 상일지도 모릅니다. 보브롭스키는 그의 시 「유대인 상인 A. S.를 위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 바 있습니다. “누군가 언제나 그곳을 떠나/ 뒤돌아보지 않고, 신호조차/ 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문설주의/ 바다에 관한 격언은/ 그를 멈추게 한다. 멀리서/ 백양나무 길이 그를 깨운다,/ 현악기 소리를 퍼트리라고.”
그렇지만 시 「소년」에서 아이에게 유태인의 직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그가 잿빛 머리를 지닌, 낯설게 보이는 남자라는 점, 그리고 비록 “작은 마차”를 몰고 다니지만, 아무런 제약 없이 도시와 시골을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다는 점 등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실제 역사에서 유태인들은 여러 가지 많은 제약 때문에 특정한 장소, 특정한 나라에서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직업은 (부동산과는 거리가 먼) 도부 상, 재단사 고리 대금업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고향을 상실한 유태인들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시오니스트가 되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한번 다음과 같은 사실을 유추해 보십시오. 만약 그들에게 거주 이전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오후 때면 오리나무의
검은 그림자 속에서 가축 떼
서성거리고, 화난 꼬리로
파리들을 쫒았지.
(Mittags dann in der Erlen
Schwarzschatten standen die Tiere,
peitschten zornigen Schwanzschlags
die Fliegen davon)
그 후 열린 하늘에서
폭넓게 장대비가 마구
쏟았고, 온 누리 퍼진 어둠,
물방울들은 흙 맛을
띄고 있었지.
(Dann fiel die strömende, breite
Regenflut aus dem offenen
Himmel; nach allem Dunkel
schmeckten die Tropfen,
wie Erde.)
제 3연부터 제 5연까지의 내용은 유년 시절에 관한 단편적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유년에 관한 시인의 보편적 (혹은 특정한) 상상인지도 모르지요. 혹자는 “온 누리에 퍼진 어둠” 보다는 “온 어둠 이후에”라고 번역하는 게 옳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한 판단을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제 3연의 “검은 그림자”와 제 4연의 “어둠”은 있는 그대로 이해될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억되지 않는, 절반쯤 잊혀진 여백으로서의 유년 시절에 해당하는 것들인지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유년 시절에 세상을 새소리 내지는 종소리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까 반눈을 뜨고 바라본 세상은 아이에게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새 소리일 뿐 아니라, 명확하게 들리는 종소리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종소리는 때로는 “검은 그림자”속에서 파리 쫒는 소 떼의 모습으로, 때로는 반쯤 구름 덮인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우의 모습으로, 때로는 -다음 연에서 나타나는 바- 고동색 말을 타고 하류로 향하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재구성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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