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너는 무덤에서 말하지)/ 사랑은 하나의 하얀 형체로/ 드러난다/ 전율의 한가운데로부터” (요하네스 보브롭스키: 「엘제 라스커-쉴러」)
친애하는 학생 여러분, 오늘 특강에서 우리는 페터 후흘 Peter Huchel과 함께 50년대 그리고 60년대의 동독 시단을 찬란하게 꽃피우게 했던 시인 요하네스 보브롭스키 (1917 - 1965)의 시 한편을 감상하려고 합니다. 시작품 「유년 Kindheit」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작품은 50년대 말에 씌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1963년에 간행된, 보브롭스키 시집 "사르마티아의 시간 Sarmatische Zeit"에 실려 있습니다. 다른 대표적 작품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가 「유년」을 택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그 하나는 「유년」속에 동유럽 지역의 피맺힌 삶의 흔적이 묵시적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이 작품에서는 자신의 주제를 시적으로 형상화시키는 보브롭스키의 시 창작 방법론이 명확하게 간파되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이기도 하지요. 한마디로 말해 「유년」을 접하게 되면, 우리는 보브롭스키의 시 형식의 특징은 물론이요, 아울러 동유럽 지역의 피해의 역사, 외면당한 보헤미안 문화, 다양한 인종 사이의 바람직한 공동 삶 등과 같은 시적 주제를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시인과 그의 시대에 관해 아무런 언급 없이 일단 내가 번역해본 보브롭스키의 시를 한번 감상하기로 합시다.
“그때 나는
꾀꼬리를 사랑했지 -
종소리는, 저 위에
잎사귀 공간 사이로
오르락내리락 하고,
갈대 위로 붉은 딸기
이어진 숲가, 거기 쪼그려
앉아 있으면, 잿빛 유태인
남자가 작은 마차 몰고
우리 곁을 지나쳤지.
오후 때면 오리나무의
검은 그림자 속에서 가축 떼
서성거리고, 화난 꼬리로
파리들을 쫒았지.
그 후 열린 하늘에서
폭넓게 장대비가 마구
쏟았고, 온 누리 퍼진 어둠,
물방울들은 흙 맛을
띄고 있었지.
혹은 사내들은 말을
데리고 강둑길로 나와,
찬란한 고동색 말을 타고
웃음을 터뜨리며
깊은 곳을 뛰어 넘었지.
울타리 뒤에서
벌 떼의 소란이 하늘을 덮고
갈대 호숫가 가시덤불 사이로
나중에 두려움의 은 딸랑이가
지나쳤지.
성장한 산울타리 사라지고
암울함, 창문 그리고 문.
그때 그 노파는 냄새나는
그미의 방에서 노래했지. 램프는
윙윙 소리 내고. 남자들이 안으로
들어서며, 어깨 너머로
개들을 부르고 있었지.
탈선된, 쓰라린 시간의
밤은 침묵 속에 오래 뻗어나
詩句에서 詩句로 머문
유년 시절 -
그때 나는 꾀꼬리를 사랑했지.
보브롭스키의 「유년」에서 여러분들은 무엇을 유추할 수 있으십니까? 혹시 여러분들이 체험했던 유년 시절의 순수성에 대한 동경인가요? 그게 아니라면 유년에 관한 시인의 기억 그리고 암담한 이후 삶의 대비인가요? 평소에 나는 작가보다도 작품을 중시하기 때문에 작가에 관한 언급은 가급적 축약하는 편입니다만, 보브롭스키의 경우 시인의 행적에 관한 간략한 언급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보브롭스키의 문학은 그의 삶의 터전 없이는 도저히 생각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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