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9. 아버지의 죽음과 간질: 의사였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버지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버지 앞에서는 항상 유약하고 힘없는 아이에 불과했습니다. 미하일 안드로비치는 1837년에 농장에서 심장이 멎어서 사망했습니다. 이웃은 그가 식솔들에 의해서 살해되었다고 주장했으나,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결론이 났습니다. 나중에 남동생 안드레이는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얻어맞아서 죽었다고 토로하였습니다. 어쨌든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깊은 죄의식과 후회의 감정을 감추지 않았는데, 이는 프로이트에 의하면 추후에 간질의 증세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프로이트의 견해일 뿐, 사실로 판명되지는 않았습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타나는 아버지 살해는 작가의 체험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간질로 발전하기 이전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작은 발작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동생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잠자기 전에 머리맡에 유언이 기록된 종이를 놓아 두었다고 합니다.
20. 아버지에 대한 애증: 도스토예프스키의 발작은 죽은 자와 동일하게 되려는 무의식을 반영합니다. 소년은 내심 아버지가 죽기를 애타게 갈구했습니다. 히스테리라는 이름의 발작은 미워하는 아버지가 죽기를 갈망하는 데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이는 프로이트에 의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계됩니다. 아버지를 적대시하는 배후에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 역시 부분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를 찬미하나, 동시에 아버지를 증오합니다. 아이는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거세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거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이는 아버지를 제거하고 어머니를 소유하려는 욕구를 견지합니다. 이는 죄의식을 낳게 됩니다. 이로써 무의식 속에 가라앉는 감정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증오라고 프로이트는 주장합니다.
실제로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처음부터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동성애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는 작가의 일기 그리고 중편 소설 등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무의식의 정신 활동을 지배하는 모든 것들은 의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아버지가 거칠고 잔인했다면, 아들은 초자아의 측면에서 가학적이 되고, 자아의 측면에서는 수동적이고 여성적으로 성장한다. 자아는 운명의 희생자로 드러나고, 아이는 죄의식이 가하는 가혹한 처벌 속에서 만족을 얻는다.” (Freud: 69). 아이는 의식적으로는 특이한 죄의식을 견지했고, 자학하는 여성과 같은 편향적 특성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그는 아버지를 살해하려는 순간적 파괴 충동을 드러냅니다.
21. 부친 살해의 욕구와 죄의식: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양성의 소질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가혹했던 아버지에게 종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격렬하게 자신을 보호해야 했습니다. 그가 지녔던 죽음의 징후는 자아에게는 자학적 충족이고, 초자아에게는 처벌을 위한 충족, 즉 가학적 충족입니다. 다시 말해 전자는 “너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죽는 중”이고, 후자는 “아버지가 너를 죽이고 있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신경증 역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욕망과 관계된다고 합니다. 순간적 발작은 그 자체 응징으로서 아버지의 죽음처럼 끔찍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항은 특이합니다. 발작의 전 단계에서 승리감 내지 쾌감을 느낍니다.
이렇듯 발작은 그에게 응징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존재가 자신을 처벌하도록 방임해 버립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무의식적 욕망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국가 그리고 신에 대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 것도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담긴 죄의식 때문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특히 종교의 영역에서 비교적 자유로움을 견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상을 통해서 죄에서 벗어나는 출구를 원했고, 자신의 고통을 내세우며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주창하기도 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기독교와 무신론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한 것도 파괴 욕구와 죄의식 사이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22. 아버지 살해: 세계 문학사의 영원한 세 걸작,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셰익스피어의 「햄릿」,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가 모두 아버지 살해와 이에 대한 응징을 다루고 있음은 우연이 아닙니다.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 주인공은 아무런 의도 없이 아버지를 살해합니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과오를 알게 되었을 때, 스스로 “운명의 장난” 때문이라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명하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의 경우 사건은 간접적으로 발생합니다. 주인공 햄릿은 범죄자에게 복수하려고 하나,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복수극을 방해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한 어떤 놀라운 죄의식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이와는 약간 다릅니다. 주인공 드미트리는 아버지에게 살의를 품습니다. 그러나 살해자는 그의 배다른 동생, 스메르쟈코프였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이 마치 아버지 살해자라고 고백하려 하는 듯이, 스메르쟈코프에게 자신의 이른바 간질 증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가는 재판을 통해서 수사 과정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누가 아버지를 살해했는가? 하는 문제는 작품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의 형제들은 모두가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범죄자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이는 동정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초기에는 정치범 종교 사범 등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근원적 죄악인 아버지 살해를 다룬 것은 그의 말년이었고, 이로써 도스토예프스키는 문학적으로 고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3. 도박 증세: 도스토예프스키는 생전에 도박을 즐겼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도박을 계속했다는 것은 다만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돈을 탕진한 뒤에 병적인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거액을 잃게 되었을 때 마음을 짓누르던 말 못할 고통이 자라지는 데 대해 어떤 해방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에게 욕설을 터뜨리고, 아내 앞에서 자신을 비하했으며, 아내로 하여금 자신을 경멸하게 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습니다. 남편이 가장 활발하게 집필에 몰두할 때는 모든 재산을 저당 잡힌 이후였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죄의식이 자신 스스로 가한 응징에 의해 해방되었을 때, 창작을 방해하던 금기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박에 대한 강박증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24. (부설) 대리 만족과 내적 저항으로서의 자위행위: 여기서 우리는 도박과 자위행위의 관계에 관한 별도의 설명을 첨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도박의 중독은 하나의 병적 탐닉으로 이해됩니다. 이성적으로는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도, 마음이 이를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것은 대체로 유년기와 청년기의 자위행위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자위는 그 자체 성충동의 대리 만족으로 이해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내면의 상처 입은 자아를 보상받으려는 저항으로 출현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유년기에 성폭력을 당한 사람은 과도하게 자위에 몰두하곤 합니다.
두 사람의 경우만 예로 들겠습니다. 헝가리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산도르 페렌치 그리고 독일의 작가 페터 바이스가 그들입니다. 헝가리의 미슈콜츠에서 12명의 자식 가운데 여덟 번째 아이로 태어난 페렌치는 동년배 아이들과 함께 자율적 환경에서 거칠게 자랐습니다. (Ferenczi: 9). 어린 시절 하녀는 그를 데리고 성적으로 장난을 일삼았으며, 나이 많은 친구 하나가 10세의 페렌치로 하여금 가무잡잡한 자신의 음경을 임으로 빨게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수치심과 구역질나는 기억은 어린 페렌치의 심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만들었는데, 사춘기가 지나도 하녀 그리고 친구의 성폭력을 망각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렀는데도 수치심과 괴로움은 계속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참을 수 없는 성적 학대를 견디기 위해서 하루에 네다섯 차례 자위를 했다고 합니다. 어른들의 성폭력에 심리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은 “하늘까지 사정을 ejaculatio usque ad coelum” 하는 일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페렌치는 자신을 지키고 싶었다고 실토한 바 있습니다. (나지오: 89). 그뿐 아니라 독일의 작가 페터 바이스는 어머니의 본의 아닌 성적 학대에 시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과도한 청결주의자로서, 11세 나이의 아들의 옷을 벗겨서, 고통을 느낄 정도로 아들의 페니스 껍질을 벗겨 그 속을 깨끗하게 씻겼다고 합니다. 이로 인한 부끄러움과 성적인 과도한 흥분은 나중에 작가의 자연스러운 사랑을 가로막을 정도로 참혹한 고통을 안겨주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단호한 행동은 여리고 세심한 아들을 학교와 가정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자로 만들었는데, 나중에 그를 구원해준 것은 바로 창작이었다고 합니다. (Weiss: 55). 이에 관한 내용은 그의 소설 『부모와의 작별Abschied von den Eltern』에 자세히 서술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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