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3) 프로이트의 '도스토옙스키의 아버지 살해'

필자 (匹子) 2025. 3. 6. 11:11

(앞에서 계속됩니다.)

 

12. 스타레크 초시마의 자세,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사랑: 그런데 스타레크 초시마의 사고는 상기한 이반이 다룬 예수 그리스도와 종교재판관에 관한 전설의 내용과 전적으로 대립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표도르의 대척자, 스타레크 초시마의 발언에서 자세히 개진되고 있습니다. 초시마는 매우 경건한 인물로서 영성 생활에 의한 도취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알립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 영혼의 불멸성이며, 나아가 세계를 다스리는 신적 존재에 관한 체험입니다. 초시마에 의하면 존재는 하나의 일원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자는 모든 자에게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초시마는 다음의 사항을 실천하기를 사람들에게 권고합니다. 즉 “남을 위해 노동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과업”이 바로 그 권고사항입니다. 이는 이타주의의 생활방식으로서 자아를 고수하지 않는 자유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합니다.

 

13. 중요한 것은 무신론이냐 아니냐의 물음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에서 자유와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다.: 상기한 내용을 통하여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전 작품에서와는 달리 자신의 고유한, 이른바 경건한 무신론의 사상을 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을 믿지 않는 인간 존재의 가능성에 관한 숙고나 다름이 없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분명히 말해 지금까지 도스토예프스키만큼 그렇게 터무니없는 무신론적 세계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그리고 그렇게 치밀하게 파헤친 작가는 없을 것이다.” (Valk: 299).

 

이와 관련하여 셋째 아들, 알료샤는 부활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물론이지요. 우리는 언젠가는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나중에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이 발생했는가에 관해 모조리 발설하게 될 것입니다.” 카뮈는 “이반은 니체와 유사한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니체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그리스도를 마구잡이로 난자했고, 결국 광증에 빠져 목숨을 잃게 되지 않는가요? 그밖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알료샤라는 인물 묘사를 통해서 독일의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가 추구하던 더욱 숭고한 인간에 관한 이념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알료샤는 자신을 포기하며 진정한 기독교 사상을 실천하는 인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4. 도스토예프스키, 경건한 무신론자인가, 신경증 환자인가?: 이번에는 작품에 대한 프로이트의 견해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프로이트에 의하면 신경증 환자였습니다. 그는 경건한 윤리적 정신을 지니고 있었으며,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아마 도스토예프스키만큼 성서를 오랫동안 정독하면서, 동시에 성서를 내팽개친 사람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가장 장엄한 소설이고, 심리적인 모순을 담고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프로이트에 의하면 도덕적 인간을 높은 경지에 도달한 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도덕적인 인간은 결코 죄를 저지르지 않는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신이 될 수 없습니다. 도덕적 인간은 죄에 대한 유혹에 사로잡히지만, 이에 대해서 결연히 저항하는 자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스스로 신경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내적 고뇌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교육자도 아니었고, 인간 해방의 기수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위대한 러시아 작가는 도덕적 문제를 둘러싸고 인간이 어떻게 고뇌하고, 이를 거부해 나가는가? 하는 과정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이를 문학 작품에 반영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은 결코 도덕적 인간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15. 자기중심적 인간, 사랑의 부재로 인한 도박과 욕정: 도스토예프스키를 범죄자로 간주하고, 심한 혐오감을 느낀 사람은 정신분석학자만이 아닙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프로이트에 의하면 제어할 수 없는 자아 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고, 강한 파괴 욕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작가가 그러한 태도를 취하게 되는 근본적 동기는 사랑의 부재에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사랑의 대상이 있는데, 그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의 대상이 없었습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도 그렇게 깊고도 정성스럽지 못했다고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랑하고 싶은 과도한 욕구 그리고 사랑 받고 싶은 욕망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욕구와 능력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과도한 선행을 베풀 때 엿보입니다. 실제로 도스토예프스키는 남는 시간에 도박을 즐겼습니다. 또한 그는 단 한번 나이 어린 소녀를 유혹하여, 어디론가 데리고 가서 겁탈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심각한 고통 그리고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강력한 파괴 충동이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게 했던 것입니다.

 

16. 도스토예프스키에 나타난 신경증의 증세: 프로이트는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인물에서 성도착의 요인을 발견하려 했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 속에 자주 “피학대 음란증 (마조히즘)”과 죄의식 등이 묘사되는 것을 지적합니다. 작가는 프로이트에 의하면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남에게 고통을 주려는 성향을 지녔고,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용서하지 않는 편협함을 내심 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학대 음란증 (사디즘)”은 학대의 방향을 자신에게 향함으로써 “피학대 음란증”으로 뒤바뀐다고 합니다. 나아가 도스토예프스키는 감정이 극도로 충만한 상태에서 주이상스를 느끼는, 이른바 성도착의 증세를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등장인물을 마구잡이로 학대함으로써 느끼는 쾌감이었습니다. 여기에 개입된 것은 프로이트에 의하면 작가의 신경증 증세였다고 합니다.

 

17. 간질은 왜 발생하는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스스로를 간질환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졸도, 근육 경련, 순간적인 무기력 현상을 느꼈고, 이를 스스로 간질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은 프로이트에 의하면 간질이 아니라, 신경증의 증후에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순간적으로 경련과 발작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이러한 질병은 실제 삶에서 신경질 내지 공격성을 동반하여 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발작은 프로이트에 의하면 혀를 깨물거나 요실금 현상과 함께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때로는 의식 불명이나 단순한 현기증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환자는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밖에 두뇌 손상이나 지능 저하의 인간이 간헐적으로 간질 증세를 보이곤 합니다. 가령 세포조직의 손상이라든가 독극물에 의한 뇌 활동의 마비는 그러한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18. 간질과 오르가슴: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는 현상은 성행위와 전혀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옛날부터 의사들은 성교 시의 오르가슴 현상을 “작은 규모의 간질”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절정의 순간 신체적 경련을 일으키고, 일순간 마치 의식이 마비되는 것과 같은 쾌감을 느낍니다. 그렇기에 성적 최고점에 이르는 순간 사람들은 심리적 흥분의 덩어리들을 신체 밖으로 배출하게 됩니다. 간질이란 여기서 이러한 흥분된 에너지가 밖으로 배출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간질적인 반응은 히스테리의 징후가 됩니다. 나이든 미혼 여성들이 히스테리의 행동을 드러내는 경우도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르가슴을 발산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므로, 육체 내부에 성적 에너지가 마냥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고로 간질 발작은 신체적 간질과 심리적 간질로 나누어집니다. 전자는 뇌의 손상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이고, 후자는 신경증 환자의 경우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간질은 두 번째 종류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