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의 줄거리와 주제를 소개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 방대한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입니다.
.............
1. 사형 직전에 다시 살아간 생명: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1821 – 1881)의 삶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것이었습니다. 1847년에 그는 27세의 문학청년이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페트라예프스키의 금요일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페트라예프스키는 도스토옙스키의 동년배였는데, 진보적 사고, 특히 아나키즘에 지대한 관심을 지닌 지식인이었습니다. 이 모임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벨린스키 등에 관한 글을 낭독하기도 합니다. 1년 후에 러시이 전역에도 1848년 유럽 혁명의 여파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러시아 왕국은 모스크바와 성페테르부르크 등에서 암약하는 지식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페트라예프스키 그룹이 표적이 되었습니다.
총 23명이 체포되어 그 가운데 21명이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도스토예프스키도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사형 선고의 통보를 받습니다. 섭씨 마이너스 40도가 넘는 엄동설한의 날씨였습니다. 5분만 지나면 그의 몸은 총에 맞아서 즉사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황제의 칙사가 도착합니다. 그것은 사면 통보였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음 직전에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4년 동안의 시베리아 유형을 마친 다음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2. 19세기 유럽 아나키즘의 세 가지 특징: 페트라예프스키는 무신론자였으며, 샤를 푸리에를 신봉하는 아나키스트였습니다. 러시아 왕국의 눈에는 그가 반체제 인물로 비친 게 틀림없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19세기 중엽 이후에 유럽에서 활동하던 아나키스트들의 세 가지 특징을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활동한 아나키스트들이 대체로 무신론을 표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 권력을 보좌하고, 국가의 강령을 지지하는 것은 종교적 계율이었습니다. 사제들은 종교적 계율을 권력자를 돕는 데 활용하면서, 자신의 이권을 추구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추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예컨대 바쿠닌은 신 그리고 국가를 동일시하면서, 이에 대해 온갖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둘째로 아나키스트들은 주지하다시피 국가의 존재를 처음부터 부정합니다. 국가를 궤멸시키기 위해서는 생디칼리슴 역시 용인하고 있습니다. 가장 끔찍한 암살단들이 대부분 아나키즘을 표방하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셋째로 아나키트들은 기독교의 금욕적 일부일처제를 용인하지 않습니다. 이는 푸리에의 아나키즘 공동체 사상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거족의 체제가 결국 국가의 체제로 이어지게 된다는 입장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21세기 생태 공동체가 금욕적 일부일처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새로운 사랑의 삶의 방식을 추구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3. 무신론에 관한 논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소설 『악령』은 1871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원래 작가는 러시아 사람들이 품고 있는 무신론에 관한 견해를 팸플릿 형식으로 간략하게 서술할 계획이었습니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무신론은 19세기 러시아의 많은 대중이 견지하기 시작한 허무주의와 연결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집필 과정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원래 의도했던 시대적 정치적 관심사를 서서히 저버리게 됩니다. 왜냐면 무신론과 허무주의의 사상은 정치적이고 시대 비판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철학적이고 예술적 관점에서 더욱 심도 넘치게 구명될 수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동료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1862년에 중편 소설 「아버지들과 아들들 Отцы и дети」을 발표한 바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보수 그리고 진보 내지는 농노 해방의 문제 내지는 역사적 진보의 방향 등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소설의 관점에서 그리고 주제의 측면에서 혁신적 사항을 담고 있어서 투르게네프의 작품은 유럽 전역에서 19세기 가장 위대한 소설로 평가받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소설 기법의 측면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대 차이의 갈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고 의미심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3. 두 가지 서로 다른 관점의 이야기: 도스토옙스키는 투르게네프의 이러한 두 가지 관점에 착안했습니다. 자신의 소설에서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서로 다른 세계관이 얼마든지 대비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건대 소설의 역동적이고도 핵심적 주제는 등장인물,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이라는 청년이 지향하는 권력 그리고 미학에 관한 비밀 그리고 이에 대한 그의 집착에 관한 사항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기독교가 용인하지 않는 자살의 문제점을 천착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아들 세대는 대학생 이반 샤토프의 관점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두 번째 아버지 세대는 스테판 베르초벤스키의 관점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오래 공부한 바 있는 이반 샤토프는 무정부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단체에 가담했습니다. 그러나 신변의 위협을 감지하고 이 단체에서 탈퇴하는 게 현명하다고 스스로 판단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정부주의 혁명 운동의 단체장이었던 네카예프가 1869년 11월에 모스크바에 있는 농업 아카데미 공원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어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4. 스테판 베르초벤스키는 이상적인 사고를 견지하며, 독일 철학에 매료된 50대의 유미주의자입니다. 이상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는 자신의 고유한 세계에 침잠해 있습니다. 베르초벤스키는 고립된 시골의 도시에 머물면서, 바르바라 스타브로기나라는 이름의 부유한 과부의 집에서 기식하고 있습니다. 밥값으로 행하는 것은 그미의 아들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젊은 세대가 실용주의Utilitarism에 매몰되어 있는 데 대해 반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은연중에 등장인물, 베르초벤스키에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빵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미를 추구하는 것은 베르초벤스키에 의하면 인류의 고유한 결실이라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고유한 원칙이 되어야 하며,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점을 그대로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정신적 승리는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결국 베르초벤스키는 바르바라 스타브로그나의 집을 떠나 순례자의 길을 걷다가 사망합니다. 죽기 전에 그는 (루카스의 복음에 나오는) 악마의 추방에 관한 이야기를 낭독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는 작품의 제목이 시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미학적인 경건함은 결국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인간 존재보다도 고귀하며, 사랑이야말로 존재의 왕관이다.”
5. 젊은 무신론자들의 저항,: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은 그가 자살하기 3주 전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세 명의 젊은이가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타브로긴이 내세운 믿음과 파괴 사이의 이율배반적 사고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어떠한 확고한 신념에 사로잡힌 채 자살 테러로 삶을 마감하고 맙니다. 젊은이들 가운데에는 표도르 베르초벤스키도 있었습니다. 그는 스테판 베르초벤스키의 아들인데, 스타브로긴과 마찬가지로 유럽을 떠돌다가 최근에 러시아로 입국한 젊은이였습니다. 표도르 베르초벤스키는 5인으로 구성된 혁명 위원회의 대표로서 아나키즘을 신봉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스타브로긴과 함께 자신의 뜻을 도모하는 동지(同志)입니다. 표도르 베르초벤스키는 “만인은 평등하다.”라는 슬로건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의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도스토옙스키가 젊은 시절에 일시적으로 추구한 바 있었던 무정부주의의 이념”과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31 동구러문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박: (2)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0) | 2025.01.02 |
---|---|
서로박: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0) | 2024.11.28 |
서로박: (2) 안드레예프의 '7인의 사형수' (0) | 2024.11.18 |
서로박: (1) 안드레예프의 '7인의 사형수' (0) | 2024.11.17 |
서로박: (2)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0) | 2024.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