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시

박설호의 시, '사랑의 아픔' 해제

필자 (匹子) 2024. 10. 1. 19:34

사랑의 아픔

박설호

 

유책 남편 그대가 이별을 통보할 때

정 베인 아내 냉랭히 거절의 손 내저으면

두 생명 인연의 끈이 풀어지는 법 없지

 

죽임이 찬란한 이혼식 *

필요 없게 만들고

 

업보일까 첫 만남에 잘못 채운 첫 단추

열쇠 잃은 자물쇠 속 금잔화 상처받고 **

연꽃등 자식만큼은 잘 자라기 바라지

 

구멍 난 가슴 한 구석

가을바람 스치고

 

*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입학식, 졸업식, 결혼식을 치르지만, 이혼하려는 가시버시는 기이하게도 이혼식을 치르지 않고 원수처럼 싸운다.** 금잔화의 꽃말은 비탄, 실망, 비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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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좋은 개살구는 맛이 없다. 사과 한쪽이라도 일단 먹어봐야, 그게 명품 사과인지 알 수 있다. 남녀도 일단 함께 살아 보아야, 파트너의 사람 됨됨이를 깨닫게 된다. 그 전에는 상대방을 잘 모른다. 엄격한 부모님 슬하에서 자란 젊은이들은 거대한 사랑을 꿈꾼다. 이성을 사귄다는 것은 다른 인생이 나에게 다가온다는 말을 뜻한다. 결혼식이란 한국에서는 성행위를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통과 의례의 의미를 지닌다. 상대방을 잘 모르면서 결혼하는 것은 사실 엄청난 모험이다.

 

대부분 결혼 첫날밤에 자신의 사랑이 환상임을 깨닫는다. 물론 실망의 정도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누구든 미리 살아보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빛 좋은 개살구, 못생긴 명품 사과 - 나는 어디에 해당하는가? 85% - 90%에 해당하는 젊은이의 몸과 심리는 착하고 건강하지만, 15%- 10%는 그렇지 않다. 비정상의 파트너와 결혼한 분들은 몸의 오르가슴, 마음의 행복감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

 

서양의 젊은이들은 일단 동거한 다음에 뒤늦게 "결혼할까?" 하고 생각한다. 파트너가 평생 해로할 수 있는 분이라고 판단될 경우에 그들은 비로소 혼인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이 경우 결혼이란 자식을 출산하기 위한 통과 의례의 의미가 강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지 않지만, 그들이 치르는 결혼식은 무미 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상대방을 속속들이 아는 탓에 결혼식 때 신부가 (혹은 신랑이) 신비롭게 보이지 않는다..

 

인간 동물에게는 사랑의 연습이 필요하다. 사회에는 사랑의 학교가 없으며, 금욕을 강조하는 관습 도덕 그리고 법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주위의 도움 없이 맨 몸으로 사랑을 터득해야 한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연애해 보아야 (갈 때까지 가보아야) 만나는 여성들을 (혹은 남성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는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성관계를 허용하지 않는다. 혼전동거는 (한국 사회가 많이 자유롭게 되었다고 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게 딜레마이다.

 

흔히 "성격이 맞지 않아서 헤어졌다."고 말한다. 여기서 성격은 성(Sex)의 격식(格式)이다. 성격은 감정의 통풍구로서 사랑과 성을 주고 받는 교환 관계로 설명될 수 있다. 기성세대는 "배우자를 선택하여 결혼식을 올렸으면,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지."하고 말한다. 이혼은 마뜩찮은 짓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파트너를 잘 모르면서, 어떻게 결혼을 선택할 수 있을까? 문제는 이성을 잘 모르면서 함부로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는 사실에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혼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한 부부가 피터지게 싸우는 일은 이혼 전의 통과의례이다. 이혼한 두 사람이 친구로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60대의 여성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내 자식은 절대로 이혼 부부의 자식과 결혼시키지 않을 거야.” 이러한 말은 이혼에 대한 두려움 내지는 방종한 삶에 대한 질투심과 증오심을 담고 있는데, 이혼한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다시 한 번 상처를 받게 된다. 이는 사회가 불행한 영혼들에 가하는 이차 가해나 다름이 없다.

 

문제는 한국의 혼인법에 있다. 한국에서 이혼할 때 가정 법원은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를 따진다.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이다. 가령 남편 (혹은 아내)이 바람을 피웠을 때 아내 (혹은 남편)가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 이혼은 성사되지만, 바람 피운 아내 (혹은 남편)가 이혼을 요구할 때 남편 (혹은 아내)이 거절하면, 이혼은 법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이러한 유책주의 대신에 파탄주의를 준수한다. 누가 잘못을 저질렀든 간에 혼인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깨지면, 서양에서 이혼은 조건 없이 성사될 수 있다. 

 

처음부터 이혼을 생각하는 가시버시는 없다. 누군들 사랑하는 임과 오순도순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서로 헤어지는 것이다. 행복은 실현되어야 하고, 자식들 삶으로 유예되어, 그들의 삶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한 번의 실패는 커다란 교훈을 안겨준다. 그러니 한 번의 이혼이 결격 사유는 아니다. 인간은 누구든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다만 실수를 반복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헤어지는 그들에게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주어질 수 있고 주어져야 한다. The Best is yet to come. 부디 힘내라, 이별로 상처받은 영혼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