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박설호: (6) 희망의 원리, 제 2차 강의

필자 (匹子) 2024. 2. 29. 12:56

1. 거울 속에 비친 갈망의 상: 일반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갈구하는 내용들은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착색되어 있습니다. 가령 일확천금을 차지하는 꿈, 우유를 나르는 처녀의 공상 등은 여기에 해당합니다. 소시민의 갈망은 이를테면 베스트셀러에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되곤 합니다. 건강, 일확천금을 얻는 이야기, 행복한 사랑의 성취 그리고 달콤한 섹스는 많이 팔리는 소설에서 묘사되는 소재들입니다. 그렇기에 잘 팔리는 책은 블로흐에 의하면 “소시민에게 갈망의 빛을 환하게 비추어주는 등대”라고 합니다. 소시민의 갈망의 상은 여행의 자극, 이국적 장소로 떠나고 싶은 욕구는 바로크 정원의 모습 그리고 식민지의 골동품 수집 등에서 은밀하고도 휘황찬란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밖에 블로흐는 대목장, 서커스 그리고 광고의 불빛 등을 언급합니다. 대목장과 서커스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이나마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유희입니다. 놀라운 광경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반복되는 삶을 일순간 벗어나게 해줍니다. 찬란한 광고는 소시민들의 사적인 욕구를 부추기는 대상입니다. 특히 동화 속에는 마치 산화가 그러하듯이 인간이 갈구하는 모든 유형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동화의 세계는 젊은이와 어른들을 설렘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아름답게 치장한 이국적인 여행 장소는 새로운 인상을 심어줍니다. 그밖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은 팬터마임과 춤을 통해서 표현될 수 있습니다.

 

2. 연극과 영화: 영화는 그 자체 “꿈의 공장”이라고 합니다. 영화 속에는 인간이 갈구하고 회피하려는 모든 심리적 상태가 용해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연극은 삶의 어떤 본보기로 이해됩니다. 블로흐는 영화와 연극을 다양한 인간 삶이 거울 속에 비추어진 갈망의 상으로 이해합니다. 주인공의 격정과 표효하는 말씀을 생각해 보세요. 프리드리히 실러는 연극을 “선을 베푸는 환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나중에 실러는 “미학 편지”로 소개된 바 있는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하여 Über die ästhetische Erziehung des Menschen」(1795)에서 연극의 자율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문학작품에 숨어 있는 진리와 도덕의 외적인 코드를 일탈시키려고 시도했지만, 연극작품의 격정과 갈등은 궁극적으로 선의 실천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연극의 기본 정서는 고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바 있는 “동정심(ελεος)”과 “공포(φόβος)”였으며, 근대의 시민 비극에서는 주로 “연민Mitleid”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여기서 연민이란 함께 괴로워한다. 고통을 나눈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근대에 이르러 신의 역할은 인간 삶의 모든 부분에 개입하여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공포의 기능은 근대에 이르러 거의 약화되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연극작품에 반영되는 정서는 블로흐에 의하면 동정심과 공포가 아니라, “거역과 희망”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브레히트의 “생소화 효과Verfremdungseffekt”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연출가는 극작가의 의도를 저버릴 게 아니라, 관객을 위해서 극작품을 과감하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거역은 인간의 저항 정신을 강렬하게 드러낼 수 있으며, 희망은 인간이 궁국적으로 바라는 자유와 평등의 실현에 대한 욕구를 반영합니다. 인간의 두 가지 아비투스에 해당하는 거역과 희망은 다시 한번 연극의 기본적 정서로 확정되고 있습니다. 주어진 틀과 질서를 거부하는 영웅은 주위의 몰이해와 인습적인 반발로 비극을 맞이합니다. 영웅이 주어진 틀과 질서를 거역하는 까닭은 자신의 갈망이 주어진 사회의 계율 그리고 틀 내에서는 성취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제 4장) 의학 유토피아: 제4장의 맨 처음에는 의학 유토피아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의학이 추구하는 것은 질병을 고치고 병자를 건강하게 만드는 의술의 개발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죽음을 극복하려는 마음을 품습니다. 그렇기에 궁극적으로 영생을 추구하려는 마음가짐이 바로 의학 유토피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 존재지만, 영원한 삶에 관한 꿈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졌습니다. 물론 영원한 삶은 의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요원합니다. 그렇지만 죽음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열망은 실제로 인간의 질병 치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통을 줄이기 위한 마취 기술을 고려해 보세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훌륭한 의사들은 환자의 병을 치료한 뒤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이는 신의 도움이 존재하든 않든 간에 환자의 마음속에 반드시 건강하게 되리라는 갈망을 불어넣기 위해서였습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질병 역시 끊임없이 속출하곤 합니다. 건강과 질병은 인간 목숨이 영위되는 한 끝없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그러한 한 영생을 갈구하는 꿈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와 병행하여 의학 연구는 이어져 왔습니다. 고통 없이 장수하는 삶 그리고 오랜 목숨을 지탱하지 못해서 죽음을 택하는 일은 여전히 연구 단계에 처해 있습니다.

 

(,2,3,4,5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