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고대 문헌

서로박: (3) 이암불로스의 태양섬과 헬레니즘 유토피아

필자 (匹子) 2023. 10. 13. 10:55

(앞에서 계속됩니다.)

 

13. 고대의 유토피아의 특징들 (3): 넷째로 고대의 유토피아 사람들은 처음부터 어떤 우생학적 조처를 취하여, 오로지 건강하고 영리한 아이들만 돌보고 교육시킵니다. 가령 신체적으로 불구 아이가 태어나면, 공동체 사람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는 데 동의할 경우 해당 아이를 우물에 빠뜨려 죽이거나, 목숨이 끊어지도록 방치합니다. 나아가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Colpe 43).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는 경우 주위 사람들은 안락사εθανασία의 시술을 빈번하게 활용하였습니다. 이는 고대인의 내세관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병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나으며, 자살이 오히려 인간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정설은 없습니다. 제논은 자살이 때로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여겼지만, 테오도로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짓을 나쁘다고 논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즉 죽음 이후에 인간이 유황불 타오르는 지옥에서 끔찍한 고문의 형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믿음은 먼 훗날 기독교, 특히 루터의 사상에 의해 전파되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고대 사회의 죽음의 세계는 암담하고 습기 찬 어두운 공간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면, 우리는 고대인들의 낙천적인 삶과 음습한 지하 명부의 내세관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4. 고대 유토피아의 특징들 (4): 다섯째로 고대의 유토피아는 온화하고 따뜻한 기후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고대인들이 노동 없는 축제의 삶을 갈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고대인들이 생산력의 증가에 관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생필품을 마련하기 위해서 노예들을 혹사시켜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어떠한 다른 기발한 착상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특히 폭정과 강제노동이 없는 삶을 가상적으로 떠올린 사람들은 이름 없이 죽어간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니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노예는 말을 알아듣는 도구instrumentum vocale로서, ‘말을 반쯤 알아듣는 도구instrumentum semivocale인 짐승과 말을 못 알아듣는 도구instrumentum mutuum인 무생물 기구와 구분될뿐이었습니다. (Marx: 210f).

 

바로 이러한 까닭에 노예경제 시대의 사람들은 비옥한 땅, 많은 유실수가 자리하는 따뜻한 남방세계를 갈망하곤 하였습니다. 여섯째 고대 유토피아의 사회적 구조는 혈연에 의한 부족의 체제를 이루고 있으며, 지방자치의 특성을 지닙니다. 국가를 다스리는 자의 권한은 무척 약화되어 있으며, 씨족 공동체의 범위는 대체로 400명 이내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고대에서도 국가 중심의 체제 뿐 아니라, 국가의 시스템과 무관한 반국가주의의 공동체의 체제가 존재했습니다. 그렇지만 국가든 공동체든 간에, 규모가 도시Polis”의 범위를 넘어서지는 않았습니다. 도시 국가의 규모에 관한 예는 기원전 5세기에 피타고라스가 남부 이탈리아에 축조한 도시 국가 공동체에서 발견됩니다.

 

15. 고대의 유토피아의 특징들 (5): 일곱째로 고대의 유토피아 공동체에는 학문, 특히 점성술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경우 태양과 별에 대한 관측을 관개농업의 필수 조건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밖에 인간의 운명과 우주의 질서는 혹성과 항성의 움직임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고대인들은 굳게 믿었습니다. 따라서 고대인들의 숙명론적 세계관은 점성술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죽음의 신, 모이라에 의해서 정해지며, 설령 제우스신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Heyer: 83).

 

여덟째로 고대의 유토피아 공동체에는 결혼의 관습이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는 고대 사회의 다소 유연한 사랑의 삶의 패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부일처제의 가정이 하나의 법칙으로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여성들은 그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무리를 지어서 살아가고,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보살핍니다. 사람들은 서로 결혼하여 살아가지만, 혼외정사를 금기시하지 않고, 이를 단죄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 첫째로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소유입니다. 둘째로 건강한 아이들을 낳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남자들은 여자들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일이야 말로 도시국가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중차대한 과업이기 때문에 국가 구성원 전체가 이를 위해서 서로 노력하고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6. 고대 사회의 자유분방한 사랑의 삶: 가족은 고대 유토피아의 경우 국가의 가장 작은 규모의 체제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부부의 결속력은 어느 정도 필요하며, 이로 인해서 일부일처제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플라톤은 그 외의 다른 논리를 전개합니다. 일부일처제는 국가의 존립 자체에 커다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부일처제의 가정에서는 근원적으로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자식의 소유 문제를 놓고, 여자들끼리 그리고 남자들 사이에 끝없는 다툼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Platon 1984: 465a).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플라톤은 지배자 그리고 파수꾼 (군인계급)의 경우에 한해서 일부다처제를 용인하고 있습니다. 고대의 자유로운 가족 체제는 기독교의 전파 이후에는 본연의 유연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고대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성스러운 결혼식의 풍습이 존재했습니다. 남녀의 성행위는 점성술에 의해서 해와 달의 만남, 즉 삭망으로 비유되고 있는데, 고대인들은 그것을 사랑의 삶에 대한 거룩한 상징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이 정착된 이후로 인간이 갈구해야 하는 대상은 성스러운 짝짓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corpus Christi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일부일처제의 금욕적 생활이 하나의 관습으로 정착되었습니다.

 

17 고대 유토피아의 특징들 (6): 아홉째로 고대의 유토피아에서는 막강한 권력으로 폭정을 행사하는 왕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공동체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족장이 되는데, 족장은 공동체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시행하는 권한만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인민을 억압하는 참주들은 대부분의 경우 백성의 원성을 들어야 했으며, 단기간에 또 다른 참주에 의해 독살되거나 처형당하곤 했습니다. 이로써 독재와 폭정은 장기적으로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됩니다. 고대의 유토피아에서 권력자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세인들에게 직접 의식되지 않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열 번째로 인간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살아가고, 사치와 허영은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며 돌아가면서 조금씩 일합니다. 고대의 유토피아 사람들에게는 탐욕도, 불안도, 폭동을 일으키려는 열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재화는 그들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고 문헌

 

- 니어링, 스콧 (2000): 스콧 니어링 자서전, 김라합 역, 실천문학.

- 블로흐, 에른스트 (2004): 희망의 원리, 5, 박설호 역, 열린책들.

- 임성철 (2011): 이암불로스의 태양의 섬에 나타난 유토피아 사상의 철학적 진실성과 그 현대적 의미, 실린 곳: 철학 연구, 43, 고려대 철학 연구소, 117 156.

- Braunert, Horst (1980): Theorie, Ideologie und Utopie im griechisch-hellenistischen Denken, in: ders., Politik, Recht und Gesellschaft in der griechisch-römischen Antike, Gesammelte Aufsätze und Reden, Stuttgart, S. 49 65.

- Colpe, Carsten (1995): Utopie und Atheismus in der Euhemeros-Tradition. In: Manfred Wacht (Hrsg.): Panchaia. Münster, S. 3244.

- Diogenes Laertios (2015): Leben und Meinungen berühmter Philosophen, Hamburg.

- Heyer, Andreas (2009): Sozial Utopien der Neuzeit. Bibliographisches Handbuch, Bd. 2, Bibliographie der Quellen des utopischen Diskurses von der Antike bis zur Gegenwart, Münster.

- Hofmann-Loebl, Iris (1992): Der Sonnenstaat des Iambulos, Hellenistische Romanutopie, oder Sozialreformisches Programm?, in: Geschichte Lernen 5, Velber bei Hannover, S. 20 23.

- Jones, Howard (1989): The Epicurean Tradition, Routledge/ London.

- Lukrez (1960): De rerum natura, übers. von Klaus Binder, Frankfurt. a. M.

- Marx, Karl (1962): Das Kapital, in: MEW., Bd. 23. Diez/ Berlin.

- Platon (1984): Politeia, in: Sämtliche Werke, Reinbek bei Hamburg.

- Swoboda (1975): Swoboda, Helmut (hrsg.), Der Traum vom besten Staat. Texte aus Utopien von Platon bis Morris, Münc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