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고대 문헌

서로박: (2) 테렌티우스의 '환관'

필자 (匹子) 2024. 2. 10. 06:21

(앞에서 계속됩니다.)

 

7. 권력과 금력보다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사랑이 더욱 중요하다: 친애하는 K, 지금까지의 내용이 작품 환관의 줄거리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몇 가지 사항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트라소는 무척 용맹한 장교였는데, 전쟁에 참여하기 전에 기생, 타이스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미를 차지하고 싶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구매한 아리따운 노예 처녀를 타이스에게 선물로 바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타이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미는 트라소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자신에게 끝없이 사랑을 호소하는 젊은이, 페드리아가 더 정이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이스는 거칠고 돈 많은 트라소 대신에, 비록 가진 게 없고, 권력도 없지만 열정적이고 순수한 페드리아와 사랑의 열정을 불태우기로 결심합니다. 공교롭게도 페드리아는 주인공 케레아의 형이었습니다. 군인, 트라소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자신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여 타이스에게 위협을 가하기도 하고, 무릎 꿇고 청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타이스는 애타게 자신을 사랑하다가 거의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젊은이, 케레아의 형 페드리아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트라소는 닭 쫓는 개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8. 작품 속에 교차하는 두 가지 사랑의 유형: 우리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애정 관계가 극작품의 줄거리를 관통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 하나는 타이스에 대한 페드리아의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팜필라에 대한 주인공 케레아의 사랑입니다. 페드리아의 사랑은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를 방불케 합니다. 그는 순수하고도 수동적인 애정으로 타이스에게 접근합니다.

 

페드리아의 이러한 태도는 헬레니즘 시대의 도덕적 풍습에서 벗어나지 않는 온건하고도 소극적인 구애행위에 불과합니다. 이에 반해 주인공 케레아는 사회적 인습을 뛰어넘는 거친 태도로 팜필라에게 다가가 사랑을 고백한 뒤에 살을 섞습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주인공이 외치는 두 마디로 요약됩니다. “죽도록 꽂히고 말았다. occidi” 그리고 “사랑한다 amo”가 바로 사랑으로 미칠 것 같은 주인공의 단말마의 외침이었습니다.

 

9. 거친 사랑을 추구하는 행위 역시 인간성의 승리일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음의 사항입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 극작가는 페드리아의 수동적 사랑 대신에, 주인공의 거칠고 탈-인습적인 사랑의 실천에다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말하자면 극작가는 작품의 우스꽝스러운 내용을 전달하면서, 당시의 허례허식적인 사랑의 방식을 은근히 비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사랑을 실천하는 자의 존엄성을 묘사함으로써, 스키피오 서클이 추구한 인간존재의 위대성을 표현하려고 애썼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스키피오 서클”이란 약간의 설명을 요합니다. 로마의 장수, 정치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에밀라누스 (BC. 185 - 129)는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로서 당대의 철학자 지식인들과 엘리트 모임을 결성하였습니다. 가령 역사가 폴리비오스, 철학자 파나이토스, 시인 가이우스 루킬리우스 그리고 테렌티우스 등은 자주 모여서 시대와 역사 그리고 철학을 논하곤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스토아 사상은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지요. 주인공, 케레아는 한 여인을 사랑하고, 그미를 위해서 행동하며, 사회적 반대를 무릅쓰고 그미와 결혼식을 거행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성 humanitas”의 이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10. 주어진 관습은 반드시 철칙이 아니다, 고결한 인간적 지조는 수단으로서의 술수와 계략을 용인할 수 있다: 게다가 기생 타이스가 불행에 처한 처녀를 헌신적으로 돕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는 대단한 인간애의 발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타이스는 심지어 환관으로 변신하여 사람들을 속인 주인공의 의도가 모두 그 처녀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묵인해줍니다. 사실 주어진 계율에 무조건 복종하고, 어떠한 융통성도 용인하지 않는 인간은 테렌티우스에 의하면 하나의 숙명 속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나아가 극작가는 다음과 같은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즉 인간적 지조는 궁극적으로 모든 비극적인 술수라든가 계책 등을 극복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스토아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자세이지요. 주인공의 행동 그리고 창녀 타이스의 행동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애정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이들에 비하면 군인 트라소는 사랑을 이와는 전혀 달리 이해하고 있습니다. 단검을 철렁거리면서 스스로 애국자임을 자처하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가식적 허풍선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트라소는 극이 끝날 무렵 다른 사람들이 모두 행복감에 젖어 있을 때, 혼자 방구석에 앉아 있습니다.

 

11. 냉정하고 고상한 언어적 표현: 작품 「환관」은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조야하고 외설적인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극작품은 하나의 사건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건이 무대 위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며, 부분적으로 배우의 독백으로 대치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테렌티우스는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냉정하고 고급스럽게 발언하게 조처했습니다. 메난드로스가 자신의 극작품에서 감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합창, 은어 그리고 구어체를 사용한 경우와는 정반대인 셈이지요.

 

우리는 테렌티우스가 사용한 고급 언어의 순수성 속에서 “인간성”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테렌티우스의 극작품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극작품은 하루에 두 번 공연되었으며, 입장료가 8000 세스테르츠 (로마 은화)에 달했다고 하니, 몹시 비싼 편이었습니다. 작품은 끝없이 공연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중세를 거쳐서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을 연극의 레퍼토리로 활용할 정도였으니까요.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테렌티우스의 작품을 격찬하였다고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