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분에게,
오늘은 12월 24일입니다.
블로흐의 책을 읽으려고 도서관으로 향하다가, 참새 한 마리를 목격했습니다.
수십 년 전 부산에서 대학을 다닐 때 보았던 바로 그 작은 날짐승, 바로 그 새였습니다.
마치 자신이 참다운 새라고 자랑하는 듯이 꽁지에 묻은 눈을 털고,
헐벗은 나무 줄기에 부리를 비비다가, 어디론가 흔적 없이 날아갔습니다.
아마도 전에 부산에서 살았던 새의 후손이이었을까요?
빠르게 흐르는 시간의 화살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곤 합니다.
읽어야 할 책이 여전히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볼품없이 흰머리만 늘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하신 말씀, "아들아, 마음은 절대로 늙지 않는단다."
그래, 시간이 흐르면 인간의 가죽부대만 쭈글쭈글해질 뿐,
마음만은 동산에서 뛰놀던 천진난만한 아이의 변치 않은 심성을 간직하고 있지요...
학문이 "항문 Arschloch"으로 취급당하는 시대,
돈이 모든 가치를 장악한 아시아의 변방에서 나 역시 꽁지의 눈을 털고 어디론가 훌훌 날아갈 테지요.
그래도 혹시 아나요, 다시 참새 한마리로 태어난 내가 길가에서 우연히 당신과 다시 마주칠지?
이 세상에 살면서 아름다운 분과 재회하는 것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요?
당신에게 성탄 그리고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혹시 길가에서 참다운 새 한마리 바라보면, 나라고 생각하고 꼭 인사를 건네주세요.
시력이 별로라, 내가 먼저 말 거는 경우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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