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판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비판이 있다. 그러나 양약(良薬)은 고어구(苦於口)라고, 바른말은 입에 쓰고,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가한다. 그러나 바른말은 세상을 더 낫게 바꾸게 한다. “너는 무지하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발언은 우리를 일시적 자극으로 고통스럽게 하지만,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게 한다. 필자 역시 체질상 잔소리 듣기를 매우 싫어한다. 그렇지만 비판을 당하면 필자는 일단 불뚝성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무엇이 잘못인지 파악하려고 한다. 몹시 마음이 상하지만, 그게 올바르거나 대의를 위한 일이라면, 비판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때로는 투덜거리거나 짜증을 내기도 한다. 변명 같지만, 인간이니 어쩔 수 없다.
2. 비판은 인간과 사회를 바르게 인도한다. 윤 대통령은 유독 비판을 싫어하는 것 같다. 비판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는 거의 일 년 반이 지나도록 야당 대표와 만나지 않고, 김정은과 시진핑과의 면담을 아예 처음부터 거부하고 있다. 조선일보와의 면담을 환영하고, MBC 기자를 아예 전용기에 탑승하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오로지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만사를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대통령이라면 주어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껄끄러운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갈등이 주어져 있으면 일단 회피하고 본다. 어째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그들을 적으로 규정하는가? 어떤 이유에서 농민들과 만나서 추곡 수매를 둘러싼 문제점 그리고 시골 사람들의 애환을 경청하지 않는가? 왜 그는 간호사들을 만나서 “간호사 법”에 관해서 서로 다른 견해를 주고받지 않는가? 과연 무슨 이득이 도사리기에 한국의 대통령은 일본 기시다 총리에게 오염수 방류를 따지지 않는가?
3. 우리에게는 두 개의 귀가 있고, 한 개의 입이 있다. 윤 대통령에게는 마치 귀가 없고, 입만 있는 것 같다. 한 시간 회의를 이끌 때, 거의 59분을 혼자 말씀한다고 한다.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할 정도로 당당하고 자신만만하다. 그런데 조물주가 인간에게 귀를 두 개 선사하고, 입을 한 개 선사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눈은 눈앞의 것만 쳐다보니, 멀리서 일어나는 사건에 관해서 많이 들으라는 것이다. “말 많이 하지 말고, 두배 이상으로 듣도록 하라.”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 밖에 조물주는 무엇보다도 밥 먹으라고 입을 만들어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든 간에 하고 싶은 말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입(口)은 화를 불러일으키는 문, 즉 화문 (禍門)이라고 했다. 말이란 함부로 뱉을 수는 있어도 뱉은 말을 입안으로 도로 넣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밖에 인간은 눈앞의 사실을 직접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모조리 두 눈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귀를 필요로 한다. 먼 곳의 소식을 접하기 위해서 언론이 필요하고, 방송이 소중한 것이다.
4. 인간은 아집과 허영심의 덩어리이다. 인간은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원숭이”다. 이 말을 처음 꺼낸 분은 독일 작가, 폴커 브라운Volker Braun이었다. 필자는 나이 들수록 외부로부터 수용하는 의향은 줄어들고, 비판의 힘이 배가되는 것을 느낀다. 낯선 것은 배척하고 익숙한 것이 마음 편하게 다가온다. 이런 식으로 나는 자신도 몰래 보수적으로 변하는지 모른다 나이 든 나의 친구는 대체로 자신의 견해를 절대로 굽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반성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자주 타자의 관점에서 자신을 돌이켜보며, 행여나 나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아집과 명예욕으로 똘똘 뭉치게 될지 모른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처럼 행여나 바른 자식과 사악한 자식조차 구별하지 못하면, 이 무슨 낭패일까?
5. 비판은 논쟁을 불러일으키지만, 우리 사회를 더 낫게 만든다. 흔히 권력자는 바른말에 반감을 품는다. 왜냐면 공영방송의 보도는 그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 다시 말해서 “특정한 뉴스가 진짜인가, 아니면 가짜인가?”의 여부는 하나의 주어진 객관적 기준과 척도에 의해 정해지고, 또 그래야 한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이러한 사항을 무시한다는 데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뉴스를 진짜 뉴스고,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무조건 가짜뉴스라고 단정한다. 어째서 그가 자신에게 향하는 비판에 대해서 처음부터 등을 돌리며, 이를 회피하고 모른 체하는가? 그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다. 자신은 모든 지엽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알고 있으므로 만기친람(万機親覧)하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에게 향하는 근본적인 비판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는 자라면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비판으로부터 등을 돌릴 게 아니라, 비판하는 자를 만나 이성적으로 논쟁해야 하지 않겠는가?
6 언론에서 비판이 사라지면 사회 정의도 망가진다. 윤 대통령은 KBS, MBC 등 지상파 방송을 멀리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그가 조선일보와 극우 유튜브 방송을 시청한다고 조심스레 추론하곤 한다. 왜냐면 그의 발언에는 극우 유튜브 방송의 내용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원래 언론은 특정 정치가의 좋은 점을 감추고, 나쁜 점을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특정 정치가가 미워서가 아니라, 그의 정책이 나라를 위해서 좋은 방향으로 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권고하는 것이다. 게다가 좋은 점은 세상에 시시콜콜 알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언론이야말로 “제2의 충신”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만약 언론이 “제2의 간신모리배”가 되면, 나라는 어떤 식으로 변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언론에서 비판이 사라지면 사회 정의도 망가진다. 이는 어떤 정당이 권력을 잡더라도, 변함없는 진리다. 그러니 신문사와 방송사는 자신의 고유한 비판의 기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7. 시청료 분리 징수에는 공영방송을 죽이려는 은밀한 의도가 숨어 있다. 누가 KBS 수신료 분리 징수의 문제를 끄집어내었을까? 일반 사람들은 단순하게 수신료 분리 징수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왜냐면 TV를 시청하지 않는 사람이 시청료를 내야 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현 정부는 분리 징수를 통해서 KBS의 재정을 흔들어놓으려고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 방송통신 위원회는 TV 수신료 분리 징수를 통과시킨 다음에, 공영방송의 보조금에 관해서 침묵으로 일관하는가? 이러한 일련의 진행 과정에는 이른바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흔들려고 하는 사악한 의도가 숨어 있다. 과연 방송통신 위원회에서 한상혁 위원장을 제명한 뒤 공영방송에 재갈을 물리려는 저의는 무엇일까? 그것은 언론을 장악하여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 힘이 승리를 구가하기 위함이다.
8. (사족의 말씀) 인간 동물은 눈앞의 이득에 혈안이 되어 있으므로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총선에서 특정 정당의 승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누가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국회의원들이 서로 피 터지게 싸우도록 부추기는가? 무엇이 평화를 밀어내고 공공연하게 투쟁을 조장하는가? 누가 자본가와 노동자를 서로 이간질하는가? 무엇이 전라도와 경상도를, 남자와 여자를 서로 대립하게 만드는가? 누가 사회 전반에 불신과 미움을 조장하며, 정치적 반대파에게 적대적 이빨을 들이대도록 자극하는가?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얻으려는 게 권력욕. 그것일까? 필자의 눈에는 해수면 상승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세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밤과 도토리를 많이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다람쥐가 그저 안쓰럽게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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