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4. 물질에 관한 이론적 구상
물질은 존재이자 에너지입니다. 물론 물질은 ”다양체“(그레엄 하먼) 내지는 ”하이브리드“(라투르)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어쩌면 내부 작용을 통해서, 이를테면 양자역학의 방식으로 유동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물질에 하나의 틀 내지는 윤곽이 있다는 가설은 인간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기준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점, 선, 면 등으로 구성되는 삼차원의 공간은 인간이 상상해낸 편견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물질의 내부를 관통하고 횡단하는 기이한 특성입니다. 물질의 모든 운동은 무엇보다도 우연에 의해서 우발적으로 진행됩니다. 토머스 네일은 물질의 유동성을 ”방행적pedatic“이고, ”우연에 의존하는stochastic“ 무엇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방행적이라는 말은 어원상 발(足)과 관련됩니다. 그럼에도 물질의 상호 연관된 부분들은 ”역동적 그물망“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지금까지 지적 능력을 동원하여 자연의 법칙을 밝히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활용된 것은 인간의 언어 그리고 지적 능력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어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물질을 하층의 존재로 치부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바라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것은 물질이다.“. 이로써 물질은 ”지금까지 인간이 자신을 작동해주기를 마냥 기다리는 수동적 소재“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물질은 다른 개념과 달리 스스로의 내부적 움직임에 의해 진화해나가는 역사성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물질 그리고 물질성은 ”역동적인 상호 행위의 변화“ 내지는 ”변모하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인트라 액션“은 물질이 유동성을 명징하게 표현하기 위한 조어입니다. 그것은 정확히 ”상호 작용inter-action“이 아니라, ”내부 작용intra-action“로 편현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상호 작용은 두 개의 이질적 개체를 전제로 하므로, 물질에 적용될 수 없습니다. ”내부 작용“은 서로를 향해서 내부적으로 작동되는 행위자, 이를테면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NT“에서의 ”번역되는 연결망“ 개념은 해러웨이가 지적한 바 있는 ”상황적 지식의 개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에 따르면 물질은 독립된 실체로서 세상에 존재하며 행동하는 무엇입니다. 인트라 액션의 개념은 이런 식으로 물질의 심층적 이전(移轉)과 변모의 특징을 밝히는 데 활용되고 있습니다. 물질의 인트라 액션은 물질 내부에 마구 뒤섞인 채 행동하는 능력 내지는 ”행위자“가 존재한다는 말인데, 내부에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영향을 끼칩니다.
물질은 이러한 내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자력으로 유동해나갑니다. 이때 물질의 이러한 능력은 다른 존재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인 힘에 의존합니다. 물질의 이러한 인트라 액션, 바꾸어 말해서 물질적 행위의 과정은 어떠한 인간의 인위적 개입과는 무관하게 진척됩니다. 여기서 ”인트라 액션“은 인간을 포함(包含)하는 특수한 인과적 물질 법칙을 만드는 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상호 행위“와는 대조적으로 어떤 행위에 참여하는 것들은 –현상의 내부에서 활성화되기 전에는- 아직 독자적이고 서로 고립된 일원적인 무엇들로서 아직은 서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행동의 틀 내부에서만 서로를 구성합니다. 행동하는 물질은 이질적 특성이 서로 충돌하는 바로 그곳에서 자신의 일시적 면모를 밖으로 드러냅니다. 말하자면 물질은 역동적인 충돌과 밀침 내지는 결합과 배척의 과정을 거쳐서 현상적 움직임으로 표출됩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명사적으로 고착된 상일 뿐 아니라, 일시적으로는 동사적으로 유동하는 운동으로 이해됩니다.
새로운 물질 이론에서 물질은 ”행위자“를 지닙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행위자는 인간의 의향이나 주관적 특징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 물질의 고유한 논리를 따릅니다. 물질의 행위자라는 개념은 행동하는 인간의 힘과는 전혀 무관한데, 이러한 특징은 비-인간의 물질 혹은 인간이 사라진 이후 행위자의 기능에 의해서 엿보일 뿐입니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이원론은 이러한 변화를 통해서 나중에 분명히 해체됩니다. 왜냐면 물질의 행위자는 ”문화적, 혹은 사회적 행위 담당자 사이의 계층 구도“라는 현격한 방식으로 대조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물질의 행위자는 종속적이고 부수적인 특징을 지닌 게 아니라, ”역동적 상호 행위로써 어떤 내부적 특징을 부분적 실천으로 변화“시키는 존재입니다. 이로써 물질은 스스로를 생산해내는 역동적 순환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인 베넷은 ”비-인간“에 해당하는 사물에다 존재의 커다란 에너지라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사물은 베넷에 의하면 외부 영역에 완강한 자세[로 대항할 뿐 아니라, 어떤 능동적이고 활발한 긍정적인 에너지 내지는 행위자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제반 사물들은 어떤 일을 발생시키거나, 이를 방조하며, 때로는 그 효과를 산출하고, 스스로 유동하며,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것들은 생동하는 일원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베넷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조형예술에서 사용한 ”아상블라주“라는 전문용어를 다시금 활용합니다. 여기서 ”아상블라주Assemblage“는 개념상 ”이질적인 물질 그리고 모든 종류의 물질의 생기 넘치는 집합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라투르에 의하면 지구는 ”인간과 비-인간이 일시적으로 묶여 있는 기괴한 아상블라주“라고 합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기운으로 탱천한 역동적인 물질이 면모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물질은 자신의 추동 에너지를 통해서 행위를 촉발하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베넷은 이러한 요소들을 ”능동적인 몸conative bodies“이라고 지칭합니다. 아상블라주의 구상은 행위자로서 역동적으로 분화된 자연을 더욱 정밀하게 해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면 ”사물-에너지thing-power“는 하나의 안정된 존재를 집약과 분산의 과정을 이어나가도록 추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아상블라주의 행위자“에 관해서 당당하게 언급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물질의 실체는 이러한 매개체에 의해서보다 더 심층적이고 포괄적으로 추적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근거로 물질 이론은 우리의 발상을 혁명적으로 전환하게 하여 인본주의의 사고를 ”생태학적 토본주의“로 거듭나게 하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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