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림 (명저)

(명저 소개) 이재학 시집 "소사천"

필자 (匹子) 2023. 1. 9. 09:59

 

시집 『소사천』 (미디어 저널 2019) 그리고 수상록 『엄마가 치매야』 (저널 2019, 이것은 수상록이라기보다는 시로 쓴 단상 모음집이다.)을 읽었을 때 두 가지 상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하나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였고, 다른 하나는 이재학 시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었습니다. 필자가 1989년 가을에 한신대학교 강의실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이재학 시인은 26세의 젊은 학생이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현철호, 오동식 (현 한신대 교수님), 강승희 그리고 윤교희 (현 분당 한신교회 목사님)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시에 수록된 작품들은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인상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부천의 작은 동네의 모습, 유년의 경험 그리고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진무구함이 떠올랐습니다. 이재학 시인은 세상의 아니꼽고 더러우며 메스껍고 치사한 파도를 피해서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밝고 순결한 빛으로 세상을 고찰하는 것 같습니다. 시와 동시의 차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깊이 있는단시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쉽게 읽히는 시가 평이한 단순성을 뛰어넘는다는 점은 보이지 않는 놀라운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시편들은 시와 동시의 구분을 흐리게 할 정도로 쉬운 언어 단순한 시적 정서를 꾸밈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두 편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꽃이 핀다/ 일생에 한 번은 화려하고 싶어서// 늙은 엄마의 눈은/ 낡은 앨범 속 사진에 멈추어 있다// 꽃이 핀다/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 (「꽃」의 전문, 31쪽) 여기서 꽃은 시인의 어머니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한번은 자신을 속이지 않고 아름다움을 드러내다가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꽃에 대한 서글픔이 어머니의 사진 속에 남아 있습니다.

 

도드라진다/ 자꾸 꽃이/ 도드라진다// 해가 비치면/ 해를 따라 자라서/ 해가 되고// 달이 비치면/ 달을 따라서/ 달이 된다// 큰 꽃에/ 사람들은 놀라서 웃고/ 개들은 무서워 짖는다// 도드라진다/ 자꾸 꽃이/ 도드라진다” (「수국」의 전문, 104쪽) 수국은 햇빛과 달빛을 머금고 솟아오르는 생명체인데, 시인은 그것을 “큰 꽃”이라고 표현하고 꽃의 만개를 “도드라진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수국은 작은 꽃으로 모여 있는 꽃숭어리이지요. 봄날이 사라질 무렵 수국은 불현듯 우리의 눈에 띕니다. 수국의 갑작스러운 만개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을 놀라게 만듭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것, 아니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 같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 거기에는 좋은 면도 있지만 나쁜 면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거친 세파에도 때 묻지 않고 순수하고 고결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우울의 정서에 근거한 과거 지향적 의향이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지요. 특히 후자의 경우 어머니의 뱃속으로 되돌아가려는 퇴행Regression의 욕구를 부추길 수도 있습니다. 이재학 시인이 순수한 마음으로 고향, 어머니, 유년을 추적하면서 창작에 임하는 것도 좋지만, 이러한 과거 지향적 시각이 자칫 잘못하면 앞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차단하는 방어기제가 될 수 있음을 유념했으면 좋겠습니다. 히틀러 도당이 하얀 피부의 어머니 그리고 “피와 토양sang et sol”을 강조한 것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이는 기우에서 드리는 말씀이니 크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재학 시인의 건필을 기원하면서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