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림 (명저)

(명저 소개) 김종갑: 혐오. 감정의 정치학

필자 (匹子) 2023. 1. 6. 11:12

 

뒤늦게나마 김종갑 교수의 책, "혐오, 감정의 심리학" (은행나무 2017)을 소개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몇 구절을 인용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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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혐오스러운 사람은 없다.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상품처럼 제작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혐오와 '원래부터'는 모순 형용이다." (13쪽)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은 자기가 정치인보다 도덕적으로 훨씬 낫다는 생각을, 여성 혐오자는 자기가 본질적으로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17쪽) 무엇을 혹은 누구를 혐오하는 자는 무엇 그리고 누구로부터 거리감을 취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헬레니즘과 기독교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부정하는 문화였다. (...) 플라톤에 의하면 바람직한 인간이란 자신의 동물적 자아, 즉 육체적 욕망을 경멸하고 혐오하는 자다." (27쪽) 어쩌면 유럽 문화 전체의 의향이 금욕을 미화하거나 은폐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하였다.

 

"'비잔티움의 항해' (예이츠의 시작품)가 말해주듯이 인간은 이중적 존재다. 한편으로는 죽지 않는 존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죽어야 하는 비루한 존재다. 이 양자가 갈등하는 틈새에서 혐오가 생겨난다." (41쪽)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자기 파괴의 충동도 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충동이 없다면자살하거나 자해하는 사람이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자기 파괴가 본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살자는 자기가 원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자신을 파괴하는 자다." (102쪽) 이는 김종갑 교수의 예리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 작가 장 아메리는 자신의 삶의 비극과 무관하게 자살을 예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기 혐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흠을 발견하려는 사람이라면, 타자 혐오는 남에게서 찾아낸 흠을 가지고 자신의 결점을 숨기는 사람들이다." (103쪽)

 

"간혹 혼용되지만 혐오와 증오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미운 감정의 정도가 강해지면 증오감으로 발전하고, 싫은 감정이 격화되면 혐오가 된다." (138쪽)

 

 

 

히잡과 부르카는 여성 비하의 증거물이다. 

 

"오에노 치즈코는 남성이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여성 혐오로 규정하였다." (155쪽)

 

"(마사) 너스바움은 여성 혐오는 곧 여성의 대상화라고 본다. (...) 그리고 저널리스트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인 로빈 모건은 포르노는 이론이고, 강간은 실천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157쪽 이하)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규정하고 여러 여성들이 한 남자를 녹초로 만드는 그러한 포르노는 거의 드물다.

 

"혐오는 약자의 감정이 아니라, 강자의 감정이다. 그것은 열등감과 패배감의 표출이 아니라, 우월감과 자만심의 표출이다. 약자는 불의하지만 힘이 센 권력자에 대해서 혐오가 아니라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가진다." (167쪽)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남자들이 과거의 기득권과 특혜를 상실하고 있다는 박탈감의 발로가 여성 혐오로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68쪽)

 

"(...) 여성 혐오는 이솝 우화 속 여우의 신포도처럼 남성의 자기 합리화와 자기 방어의 기제," (182쪽) 일부 남성들은 여성을 혐오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점점 잃어가는 자존감을 끝까지 지탱하려고 한다. 다른 한편 오랫동안 역사적으로 핍박당했던 여성의 권익은 바로 정립되어야 하는 게 타당하다. 그러나 일부 여성들은 남성 전체를 매도함으로써 이성적 비판의 선을 넘어서려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Bildergebnis für misogynie

 

여성 혐오의 현상을 예리하게 풍자한 캐리커쳐. 조나탄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한 장면에서 뽑아온 것 같다. 왜소한 존재로 변한 남자 한 사람이 장대한 존재로 변한 여자 한 사람을 포획하여 치졸한 승리를 구가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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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있다는 말은 사회적으로 불쾌한 무엇이 있고, 특정인들이 이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 아우르면서 살아가는 한 싫든 좋든 혐오의 감정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여성 혐오는 시대 변화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다. 성 평등의 과정에서 나타난 일시적인 경향이라고 할까? "나누어라 그리고 지배하라. Divide et impera!" 이는 정치가의 공식이었다. 특정 인간을 구분하고 나누는 행위는 특정 인간을 지배하려는 의향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구분이 없으면 억압도 없다. 아마도 멀지 않아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시시콜콜 가리는 문화는 사라지는 게 마땅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