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프란츠 퓌만의 시, "불복종의 찬양"

필자 (匹子) 2022. 1. 13. 09:34

프란츠 퓌만 (1922 - 1985)은 얼핏 보면 돈키호테를 연상하게 한다. 삶의 오류가 그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었다. 시인, 소설가 그리고 에세이스트로서 탁월한 작품을 남겼다. 퓌만은 현재 체코 지역인 로흐리츠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나다. 1932년에 오스트리아의 빈 근교에 있는 칼스버그 학교에 다니다. 퓌만은 처음에는 나치의 사상에 경도하여 1936년 주데텐 파시스트 체조 단체에 가입하였으며, 나치 돌격대에 가담하다. 1939년 아비투어를 취득한 직후에 자청하여 군대에 지원하다. 전쟁이 끝날 무렵 퓌만은 소련 포로수용소에 수감되다.

 

1946년 그는 노긴스크에 있는 반파시즘 학교에 다니면서. 마르크스 사상을 세밀히 배워나가다. 1949년 그는 동독을 스스로 선택하였고, 1958년부터 자유 작가로 일하기 시작하다. 초기 작품에는 파시즘에 대한 잘못된 열광 그리고 이에 대한 후회 등이 진솔하게 묘사되어 있다. 1970년대에 퓌만은 주로 신화, 판타지, 꿈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했다. 80년대에 그는 게오르크 트라클의 문학의 가치를 설파한 에세이집,『천사의 몰락 (Der Sturz des Engels)』을 책으로 간행하였다. 죽기 직전까지 퓌만은 마르크 브란덴부르크 지역의 부흐홀츠에 은거하며, 창작에 전념하다.

 

불복종의 찬양

프란츠 퓌만

 

그들은 일곱 노루새끼,

어디든 들여다보아도 좋았지,

다만 시계 상자는 안 된다고

그럼 시계를 망가뜨린다고

어미 노루가 말했었지.

 

얌전한 여섯 노루새끼,

어디든지 들여다보려 하였지,

시계 상자는 들여다보지 않았지,

그럼 시계를 망가뜨린다고

어미 노루가 말했었지.

 

말 안 듣는 한 마리 노루새끼,

어디든지 들여다보려 하였지,

시계 상자도 들여다보려 했지,

이때 그는 시계를 망가뜨렸어,

어미 노루가 말한 그대로.

 

그 후에 사악한 늑대가 왔지.

 

얌전한 여섯 노루새끼,

늑대가 왔을 때 숨었지,

테이블, 침대, 의자 아래에

아무도 시계 속에 숨지 않았지.

늑대는 그들 모두 물어뜯었어.

 

버릇없는 한 마리 노루새끼,

시계상자 속으로 뛰어들었지,

상자 속이 비어 있다는 걸 알았지,

늑대는 그를 발견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는 살아남았지.

 

그때 어미노루는 놀랍게도 기뻐했지.

 

Lob des Ungehorsams von Franz Fühmann:

Sie waren sieben Geißlein/ und durften überall reinschaun,/ nur nicht in den Uhrenkasten,/ das könnte die Uhr verderben,/ hatte die Mutter gesagt.

 

Es waren sechs artige Geißlein,/ die wollten überall reinschaun,/ nur nicht in den Uhrenkasten,/ das könnte die Uhr verderben,/ hatte die Mutter gesagt.

 

Es war ein unfolgsames Geißlein,/ das wollte überall reinschaun,/ auch in den Uhrenkasten,/ da hat es die Uhr verdorben,/ wie es die Mutter gesagt.

 

Dann kam der böse Wolf.

 

Es waren sechs artige Geißlein,/ die versteckten sich, als der Wolf kam,/ unterm Tisch, unterm Bett, unterm Sessel,/ und keines im Uhrenkasten,/ sie alle fraß der Wolf.

 

Es war ein unartiges Geißlein,/ das sprang in den Uhrenkasten,/ es wußte, daß er hohl war,/ dort hat’s der Wolf nicht gefunden,/ so ist es am Leben geblieben.

Da war Mutter Geiß aber froh.

 

(시어 설명 및 힌트)

그림 동화에 나오는 늑대와 일곱 노루새끼: 어느 날 늑대가 찾아와서 여섯 노루새끼를 한꺼번에 다 삼켜버렸다. 어미 노루가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이때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일곱 번째 새끼는 “엄마, 나는 시계 상자 속에 숨어 있어요.”하고 말하며, 자초지종을 들려준다. 근처에 늑대가 죽은 채 발견된다. 늑대의 배를 가르니, 그 속에서 여섯 노루새끼들이 죽지 않은 채 숨을 헐떡이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에 모두 외친다. “늑대가 죽었어요! 늑대가 죽었다고요!

 

(질문)

1. 제목이 뜻하는 바는? 복종을 요구하는 부모의 가르침은 과연 올바른가요?

2. 시인은 그림 동화의 끝 부분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시적 주제 그리고 그림 동화의 교훈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3. 창세기 제 2장 16 - 17절에는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정원의 나무에 열린 모든 열매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 된다.” 인식의 나무는 시에서 어떤 대상으로 대치되어 있는가요?

4. “말 안 듣는” 노루새끼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해설)

동화 속에는 인간의 원초적 갈망의 상이 가장 진솔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를 강조한 철학자로서 우리는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를 들 수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동화, 전설 그리고 신화 등의 모든 가상적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애타는 갈망의 상 내지 경고의 상 등이 각양각색으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프란츠 퓌만은 1962년의 시집, 『동화의 방향 (Die Richtung der Märchen)』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서 주로 동화 속에 담긴 가장 순수한 갈망의 상들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블로흐의 희망의 철학을 문학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형상화시킨 작가는 프란츠 퓌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의 제목 “불복종의 찬양”은 브레히트의 시편들을 연상시킵니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동화들 속에는 부분적으로 “권선징악” 내지는 “부모의 가르침에 대한 복종”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지만 퓌만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오히려 찬양합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째서 “버릇 없”으며 “말 안 듣는” 노루 새끼를 찬양할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그는 알지 못하는 무엇, 즉 시계 상자의 내부를 인식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호기심입니다.

 

헤르더 (Herder)는 아이들의 호기심이야 말로 “인간 존재의 가장 기초적인 표현”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무엇에 대한 호기심은 성서에도 나타납니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맛봅니다. 신을 인식하려는 태초의 인간은 벌을 받습니다. 신의 입장에서 고찰하자면 이는 중범죄입니다. 감히 신의 비밀을 들여다보려고 한 인간의 죄를 어찌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인간의 시각에서 고찰하자면, 알려고 하는 인식 행위입니다. 이는 의문 없는 유효성에 대한 이의 제기이며, 나아가 거부 내지는 반역의 태도를 불러일으킵니다. 제우스에 대한 프로메테우스의 도전 역시 이 경우 적합한 신화일 것입니다.

 

시계 상자를 들여다보지 말라.”는 어미의 가르침은 의심을 유발합니다. 주어진 강령에 대해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말고 그대로 따르라는 어미의 요구는 한 마리의 노루새끼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알려고 하는 순수한 욕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유에 대한 모험 정신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자유에 대한 모험 정신이 있었으므로 노루새끼는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퓌만은 과거 파시즘에 대해 추후에 의심했듯이, 구동독에 도사린 주어진 당위적 계율에 대해 의심하기를 자신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은근히 요구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사족)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서해안에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단원고 학생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듣고 배가 서서히 기우는데도 불구하고, 배 안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순간의 절망조차 느끼지 못하며 바다 아래에서 수장 (水葬)되었습니다. 아, 바로 그 순간 나는 학교의 늦봄관 강의실에 있었습니다. 이로써 죽은 사람들은 모두 264명이었습니다. 남은 가족들, 친구들의 슬픔을 어찌 달랠 수 있을까요? 피도 눈물도 없는 모이라 여신은 앞길이 창창한 청소년소녀들을 구천으로 데리고 갔던 것입니다. 그해 겨울 팽목 항을 찾아 노란 리본을 걸어두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