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다.
수중에는 돈 한 푼 없다. 아무 것도 없으니, 파리 역시 작은 공간으로 보일 뿐이다. 오래된 식당으로 가보았다. 술과 음식이 형편없는데도, 가격이 무조건 저렴하지는 않다.
식당에는 허름한 차림의 노동자 한 사람이 흔히 말하듯 정당하고도 당당하게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건너편에 앉아있는 사내는 손가락으로 가재 한 마리를 거머쥔 채, 아귀아귀 뜯어먹고 있었다. 가재의 붉은 껍질을 퉤하고 내뱉자, 껍질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바로 이 순간 노동자는 난생 처음으로 소중한 무엇을 얻었다는 듯이, 가재의 부드러운 살에다 알아듣기 쉬운 말로 속삭였다.
참으로 드문 케이스였다. 적어도 여기서는 하나의 상품이 부자들에 의해 능욕 당하지 않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만큼은 돈 없는 자의 땀도 없었고, 자본의 수치스러운 고정 수입도 개입되지 않고 있었다. 부자들이 이렇게 맛있는 가재를 함께 맛보려고 덤비지 않다니, 참으로 기이하지 않는가? 그것도 대부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이 연금 생활자임을 자랑스럽게 공언하는 파리에서 말이다.
가재를 먹는 노동자를 바라보니, 나의 뇌리에는 어떤 기묘한 상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과거에 도래한 바 있는 어떤 거대한 개벽이었다. 어떤 미래의 시대가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았다. 돈이 더 이상 재물을 차지하려고 마치 개처럼 컹컹 짖거나 꼬리치지 않는 시대 말이다. 이러한 시대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아마도 더 이상 순수한 지조 그리고 거룩한 식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28 Bloch 흔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로흐: 고결한 상 (0) | 2022.04.19 |
---|---|
블로흐: 아빠와 딸 (0) | 2022.01.05 |
블로흐: 흑인 남자 (0) | 2021.11.07 |
블로흐: 올리브 먹는 법 (0) | 2021.07.29 |
블로흐: 터무니없는, 혹은 더 나은 기담 (0) | 2021.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