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인간 희극의 압권으로서의 『창녀의 영광과 몰락』: 발자크의 『창녀의 영광과 몰락』은 “인간 희극” 91편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만큼 당시 프랑스 상류층의 패륜과 부정 그리고 더러운 돈을 갈취하는 상류층 투기꾼의 사악한 술수를 상세하고도 정밀하게 기술한 작품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작품만큼 행복이 순식간에 끔찍한 불행으로 전복되는 과정을 예리하게 서술한 작품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나아가 발자크의 작품, 『창녀의 영광과 몰락』은 인간의 사랑의 열정이 어떻게 하나의 놀라운 사건을 불러일으키고 비화시키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발언은 오늘날에서 의미하는 바 큽니다. “급작스럽게 쌓은 재산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면, 합법적 절도의 결과이다.” 발자크와 동시대에 파리에 살았던 무정부주의자, 피에르 조셉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 역시 『재산이란 무엇인가?Qu’est ce que la propriété?』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소유는 절도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유재산은 특권층에 의해 축적된 재화이기 때문입니다.
13. 문제는 사회적 질서에 있다. 실정법은 가진 자, 힘 있는 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발자크는 풍족한 부를 누리는 시민들이 오히려 범죄자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어진 질서 속에서 기득권을 누리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실정법의 규정들 자체가 오로지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착취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법부는 부패해 있습니다.
발자크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핍박당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가난한 사람들과 창녀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자들에게 인간적 따뜻함을 부여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열정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지 않는 이타주의의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발자크의 위대함은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발자크는 초기 자본주의의 시대에 영향을 끼치던 사회적 질서 내지 이를 지지하는 법적 질서가 권력과 금력을 지닌 사람을 옹호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핍박을 가하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지적한 작가입니다.
13. 에스터 그리고 자크 콜린의 인간형: 그렇다면 우리는 작품에 등장하는 세 인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뤼시앙은 마음씨 착하지만, 의지력이 약하고, 허영심으로 가득 찬 사내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아무런 결과를 낳지 못하게 되자, 번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점에서 불쌍하지만 어리석은 인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소설의 주인공은 에스터와 콜린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에스터는 가난으로 인하여 몸을 팔며 살아왔지만, 인정 많고 희생적으로 타인을 위하는 인물입니다. 그미는 독자로 하여금 연민을 느끼게 하는,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지닌 영혼이지요. 그미의 자살은 무엇보다도 뤼시앙에 대한 사랑을 지킬 수 없는 안타까운 정황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미에 비하면 자크 콜린은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독자에게 더욱더 명징하게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사악한 악마의 모습을 드러내던 탈옥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놀라운 재능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 사회의 사악한 에너지를 품고 있으나, 작품 속에 나타난 그의 행위는 놀랍게도 사악함과는 전혀 다릅니다. 자크 콜린은 실정법에 의하면 죄인으로 낙인 찍혀 있으며, 동성연애자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사실 뤼시앙에 대한 애호의 감정은 동성을 사랑하는 그의 내면적 집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비밀스러운 재능은 처음에는 썩어빠진 사회에 대항하는 수단이었지만, 나중에 이르러 사회의 부정하고 사악한 인간들을 척결하는 무기로 활용됩니다.
14. 열정적인 예언자: 발자크는 자크 콜린이라는 놀라운 인물을 묘사할 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을 떠올렸습니다. 사실 자크 콜린이 나폴레옹과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음은 소설 속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변신의 귀재, 감옥에서 습득한 지식, 놀라운 착상을 찾아내는 능력 그리고 교묘한 계략 등은 자크 콜린에게서 발견되는 특성입니다. 예컨대 하나의 술수 내지 계략은 여러 가지 변수를 낳게 됩니다.
그런데 각 변수 속에는 여러 가지 새로운 개연성이 숨어 있습니다. 마치 장기 내지 체스를 둘 때 나타날 수 있는 제 1차, 제 2차 경우의 수를 따지듯이, 자크 콜린은 모든 가능성을 예리하게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대응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크 콜린 자신이 자신을 “예술가”로 그리고 “행동하는 시인”으로 소개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크 콜린/ 카를로스 에레라/ 보트랭/ 프롬페 라 모”에게서 (보들레르와 로트레아몽이 결합된) 어떤 열정적인 예언자의 면모를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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