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뮐러의 "아이아스" (초록)

필자 (匹子) 2022. 1. 20. 11:59

1. 뮐러가 장시 몸젠의 블록 그리고 이를테면 아이아스를 집필하게 된 게기

 

하이너 뮐러는 통일된 독일에서 한 편의 극작품도 집필하지 않았습니다. 집필하고 싶은 욕구는 있었지만, 주위의 여건이 참담했습니다. 독일이 통일된 다음부터 서독의 문화계는 동독 작가들에게 부정적 시선을 보냈습니다. 서독의 문화계 사람들은 오히려 구동독을 떠나지 않은 작가, 이를테면 크리스타 볼프, 하이너 뮐러, 그리고 폴커 브라운 등으로 향해서 비판의 화살을 지속적으로 발사했습니다. 이를테면 볼프, 뮐러 그리고 브라운 등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독서 국가 der künstlich gemachte Lesestaat”인 동독에서 특권을 누리면서 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동독 문학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동서독이 통일되기 전에 서독으로 건너온 작가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독재 체제를 떠나 도주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고, 구동독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에게 동독 문화의 패망에 대한 책임을 물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슈타지 연루 설이 끊임없이 나돌았습니다. 볼프, 뮐러, 브라운 그리고 크리스토프 하인 등은 슈타지에 이른바 “비공식 협조요원 (informelle Mitarbeiter: IM)”으로 활동했다는 것입니다. 구동독 작가에 대한 통일된 독일 문화계의 집중 포화는 하이너 뮐러로 하여금 더 이상 작품 집필의 욕구를 깡그리 앗아가게 하였습니다.

 

2.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

 

뮐러는 신화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려고 하였습니다. 원래 「아이아스」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입니다. 아이아스는 오디세우스와 함께 죽은 아킬레스의 유물을 나누어가지려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승리자는 오디세우스였습니다. 아이아스는 이에 대한 격분을 참지 못하고, 관기에 사로잡힌 채 그날 밤에 전사들의 숙소에 들어가서 그리스 장수들을 도륙하였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그가 도륙한 대상은 그리스 장수들이 아니라, 소떼 (양떼)들이었습니다. 아이아스를 광기에 사로잡히게 한 자는 오디세우스를 비호하는 여신 아테네였습니다.

 

아테네는 아이아스가 착란을 일으켜 동물들을 도살하도록 조처했던 것입니다. 이는 동료, 부하 그리고 그리스 군인 전체의 조롱꺼리가 됩니다. 주위로부터의 모욕을 감내할 수 없었던 아이아스는 자신의 첩과 아들 그리고 그의 아들을 부하들에게 부탁한 다음에 해안에서 헥토르가 선물한 장검을 거꾸로 꽂아놓고, 그 위에 뛰어들어 자결합니다. 나중에 오디세우스는 다른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체를 수습하여 장례식을 치르게 합니다. 이로써 그리스 군대는 단결하게 되고, 나중에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됩니다.

 

3. 뮐러의 아이아스 (제 1행 – 15행)

 

시인은 90년대 초에 베를린 번화가에 앉아 있습니다. 서점에는 베스트셀러 문학 작품들이 문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백치들)을 위하여 즐비하게 꽂혀 있고,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흥행만을 고려하며 살아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통일된 독일에서는 출판 여부는 판매 부수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습니다. 뮐러와 같은 비판적인 작가의 작품들은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그들의 작품들은 언제나 그렇게 취급당했습니다.

 

격동의 시기에는 권력층으로부터 핍박당하고, 평화기에는 일반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았던가요? 플라톤이 『국가』에서 시인과 작가들은 언제나 체제파괴적인 “방해분자 Störenfriede”들이기 때문에 추방 받아야 마땅하다고 규정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작가는 원래 체제파괴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 그룹이지요. 그래도 90년대 초에 통일된 독일의 언론이 뮐러와 같은 구동독 출신의 작가들에게 집중 포화를 가한 것은 너무 심한 행동이었습니다. 작가로서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사람은 뮐러 뿐이 아니었습니다.

 

4. 뮐러의 아이아스 (15행 – 50행)

 

사람들은 더 이상 거대한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인류의 발전 과정을 정비례로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의 걸음걸이는 오히려 지그재그 식으로 탱고 춤을 추고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뮐러는 황소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언젠가 제우스 신은 황소 차림으로 변장하여 수많은 미녀들과 정을 통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아름다운 유부녀 알크메네에게 눈독을 들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알크메네의 남편인 암피트리온이 출타한 틈을 타서, 알크메네의 성 (性)을 유린합니다. 아니, 우리는 이들의 합궁을 화간이라고 명명하는 게 바람직할지 모릅니다. “알크메네의 아아”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그미 역시 오르가슴을 만끽한 게 분명합니다.

 

나중에 암피트리온이 귀가하여 그미와 다시 정을 통합니다. 이로써 그미는 열 달 후에 두 아들을 출산합니다. 그 하나는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이며, 다른 하나는 암피트리온의 아들 페리클레스였습니다. 하이너 뮐러는 90년대 초에 발생한 광우병 사건을 떠올리며, 인간의 무한대의 이윤 욕구를 질타합니다. 인간은 풀을 뜯는 소떼에게 동물 사료를 먹여서 결국 광우병에 걸리게 했던 것입니다. 뒤이어 시인은 실패한 독일 혁명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언급합니다. 독일에서의 혁명은 1525년 토마스 뮌처에 의해서 유일하게 발발하였으며, 그 후에 수백 년 동안 한 번도 출현하지 않았습니다. 브레히트의 말대로 혁명의 송곳니는 종교개혁을 위해서 뽑히고 말았습니다.

 

5. 뮐러의 아이아스 (50행 – 95행)

 

세상은 역사의식을 상실하고, 부의 추구만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돈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고향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자유와 평등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행복의 장소이어야 하는데, 오로지 영수증이 도착하는 곳으로 전락해 있습니다. 뮐러는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를 읽으면서, 자신을 비련의 아이아스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중적으로 속아 넘어간 희생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중적으로 기만당한 까닭은 권력층이 그를 철저히 이용했기 때문이며, 일반 시민들 역시 그를 철저하게 오해하고 어용작가라고 매도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소련과 동독의 혁명의 역사를 차례로 언급합니다.

 

뮐러는 작품을 통해서 삶의 궁극적 의미를 독자에게 전하고 독자에게 어떤 비판적 전언을 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뮐러의 이러한 모든 예술적 정치적 노력은 그야말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도모하다가, 사회주의의 혁명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구소련과 구동독이 비민주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이를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예외적 필요악으로 단언했습니다.

 

6. 뮐러의 아이아스 (75행 – 90행)

 

뮐러는 이중적으로 속아 넘어간 희생자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태도는 에베르트 프란츠라는 가상적 인물의 삶에서 반영됩니다. 아니, 이중적으로 기만당한 사람은 카울리히라는 실존 인물이었습니다. 카울리히는 신념에 가득 찬 공산주의자로서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수용소에 체포되었습니다. 1945년 그는 소련 국적을 취득하여 공산주의자로서 독일인과의 전투에 가담합니다. 전쟁 직후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아내가 어느 적군 단원에 의해서 겁탈 당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는 적군 단원을 살해합니다. 동료 살해 혐의로 카울리히는 소련군에 의해서 스탈린 강제 수용소에 갇힙니다.

 

마찬가지로 하이너 뮐러 역시 처음에는 계급투쟁과 노동 해방을 실천하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의 문학과 극작품 창작 역시 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현실 속에는 자신의 이상에 위배되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러한 모순을 지엽적이고 하찮은 사항이라고 여겼으며, 큰 문제가 해결되면, 언젠가는 극복될 수 있는 작은 문제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련과 구동독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끔찍한 죄를 저지른 권력자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체제비판적인 작가를 공개적으로 처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중의 몰이해와 공개적 비난에 대해서 일개 사회주의 극작가로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7. 뮐러의 아이아스 (96행 – 124행)

 

오늘날 사람들은 과거의 필연적인 역사를 생각하지 않고, 기껏해야 천박한 기사만을 보도하는 빌트 신문만을 읽고 있습니다. 역사와 유토피아의 상실의 시대에 뮐러는 30년대 독일과 소련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비판적으로 고찰합니다. 독일은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내정에 몰입합니다. 레닌이 죽고 난 다음에 스탈린은 무산계급의 국제적 승리를 도모하고 노동 해방을 성공리에 이끄는 대신에, 러시아 민족의 단합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로써 비판적 세력은 숙청당하고, 반유대주의의 분위기는 소련에서도 극에 달했으며, 정적인 트로츠키는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 의해 아르헨티나에서 도끼에 맞아 암살당하고 맙니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악은 선을 물리친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잘못된 역사를 통찰하기는커녕, 아예 역사 자체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역사는 그야말로 박물관의 전시물에 불과합니다. 히틀러와 부하린은 시인에 의하면 묘지 인부와 시체 인도자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많은 동시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갔기 때문입니다. 뒤이어 발생한 제 2차 세계대전은 그야말로 10년 동안 이어지는 트로이 전쟁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회주의의 역사는 인간이 바라던 바대로 진척되지 않았음을 뮐러는 토로하고 있습니다,

 

8. 뮐러의 아이아스 (125행 – 끝)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겠지만, 뮐러는 다시 한 번 자신의 견해를 은근히 드러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무시하는 동시대인의 맹목성입니다. 자고로 자유는 피의 대가로 성취되는 법입니다. 삼천년이 지나 민주주의가 피 묻은 채 탄생되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과거의 전쟁 그리고 투쟁의 역사를 자신과 무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과거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투쟁했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껏해야 편안하게 영화관의 좌석에 앉아서 감상하는 관객들로 변해 있을 뿐입니다.

 

관객은 “상품과 상품의 원 그리는 교류 속에서” 과거 사람들의 진지한 고뇌를 망각하고, 그저 한 편의 영화로 고찰할 뿐입니다. 이러한 사람들 앞에서 사회주의의 지조를 지녔던 비판적 작가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작가는 오늘날 아무런 기능을 담당할 수 없는 “비인간 Nobody”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뮐러의 눈에는 브레히트의 기념비는 한 그루의 자두나무로 비칠 뿐입니다. 그렇기에 뮐러와 같은 작가가 오늘날 할 수 있는 일은 절필, 아니면 자살밖에 없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