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외국시

서로박: 캄파넬라의 옥중 시선 (8)

필자 (匹子) 2015. 11. 11. 10:38

 

캄파넬라는 일곱 번에 걸쳐 고문을 당했습니다마지막 고문은 40 시간 지속되었고, 살갗이 찢어지고, 피는 감방의 빗물 통을 가득 채웠다고 합니다. 고문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감방에 불을 지르기도 하였습니다. 차라리 모진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게 나을 성 싶었습니다. 그러자 이탈리아 당국은 그를 정신이상자로 분류하여 종신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캄파넬라는 그때부터 틈만 나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 속에 자신의 사상과 느낌을 담는 것 - 바로 이러한 행위는 치유의 과정이자 위안의 과정이었습니다. 160031세의 나이로 감옥에 들어가서 162657세의 나이로 석방되었으니, 무려 27년 동안 감옥에서 세월을 보낸 셈입니다. 그러나 캄파넬라에게 감옥은 자신의 집필실이었습니다.

 

캄파넬라는 종신형의 선고를 받았으므로, 언제 자유의 몸이 될지 몰랐습니다. 그를 지탱시켜준 것은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순결한 믿음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글쓰기,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래 글쓰기는 그에게 하나의 치유의 행위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캄파넬라의 시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지상에는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인간이라고는 한명도 없었습니다.

 

묶여 있든 풀려 있든, 함께 있든 혼자 있든/ 외치든 침묵하든, 나는 자만하는 자들을 당황케 하리라:/ 내 모습 속된 인간의 눈에는 광인으로 보일 테지만,/ 북극 위의 신의 정신에게는 현자로 비치리라.

 

지금까지 캄파넬라는 오로지 그리스도를 따르며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왔습니다. 비록 텔레시오의 광학에 관한 이론이 주의 영혼을 불신하도록 자극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믿음의 공간마저 모조리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게 캄파넬라의 지론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자만하는 자를 경고하고, 잘못된 생각을 지닌 자를 계도하는 데 한 번도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지상의 인간들의 찬양과 박수를 기대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신으로부터 현자라는 칭송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