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학문, 교육, 영어중심주의

필자 (匹子) 2020. 10. 1. 10:24

1.

철학을 전공하는 어느 동료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영어 하나만 마스터하면 충분해. 모든 책들이 순식간에 영어로 번역되는 세상이니까.” 그의 말속에는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각종 언어로 기술된 책들은 오늘날 순식간에 영어로 번역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만 마스터하면, 모든 정보를 다 입수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속에는 엄청난 잘못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번역의 질적 측면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게 그 잘못입니다.

 

2.

서양의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니, 영어로 번역된 책들을 자주 구해 읽곤 합니다. 과문한지 몰라도, 나는 영어로 번역된 책들 가운데 탄복할만한 것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루터의 성서만큼 훌륭한 영어 판 성서를 나는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판에는 수많은 오역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나는 최근에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 영역판이 바로 그것입니다. 몇 문장이 생략된 경우도 있었고, 라틴어 문장을 엉터리로 번역된 경우가 상당히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기독교 속의 무신론" 영역판의 오류는 그야말로 도를 지나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사항은 그 자체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다음의 사항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즉 학문의 수준과 질을 고려할 때, 영어 제일주의는 학문 발전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것 같습니다.

 

3.

생각해 보세요. 남한에서는 그럴듯한 라틴어 사전 하나 제대로 간행되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약 20년 전에 라틴어 사전 한 권이 간행된 바 있지요. 그리스어 사전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서점에 가면 온통 영어 사전밖에 없습니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영어 사전의 수는 아마 100 종이 넘을 것입니다. “영어만을 중시하자.”는 말은 외국 문명을 단 하나의 코드로 수용하자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의 코드는 일방적이고 위험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다양한 문화, 서로 다른 언어와 풍습 등의 비교를 통해서 우리는 더 원숙한 한국 문화를 가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한 사람들은 오로지 영어 배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유치원 학생에서 대학원 학생에 이르기까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4.

유럽의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통상적으로 서너 개의 외국어를 동시에 배웁니다. 특히 인문계 고등학생들은 3, 4개의 외국어 공부는 거의 필수적입니다. 이에 비하면 남한은 국어와 영어에 너무나 커다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남한의 교육 인적 자원부는 그나마 제 2 외국어 과목을 폐기 처분하려고 안달입니다. 그들 역시 “영어 하나만 잘하면 만사 OK이다.”하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어 제일주의의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남한 사람들이 외국어 하나 마스터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마치 만국 공통어로 활용되는 영어 하나를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합니다. 이는 부분적으로 옳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도를 넘어서서 심지어는 학문의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데 있습니다.

 

5.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2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어권의 문화를 고려하려면 우리는 우선 영국을 떠올릴 수 있지요. 유럽의 인문 사회 과학의 전통을 고려할 때 영국의 영향은 참으로 미약합니다. 기껏해야 영국의 경험주의는 대륙의 합리주의의 위세에 밀려 약간 명맥을 유지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라틴어 사용 국가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의 문화적 영향력은 역사적으로 막강했습니다.

 

따라서 서양의 학문을 제대로 천착하려면, 우리는 독어 불어는 물론이요, 라틴어 아니면 그리스어를 마스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학문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6.

상기한 내용과 관련하여 필자는 다음의 사항을 간곡히 말하고자 합니다. 남한에서 학문은 일천할 아니라, 불균형적으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서양의 인문 사회과학을 염두에 둘 때 더욱 그러합니다. 순수 기초과학은 응용과학의 위세에 눌려 아사 직전에 있습니다. 이른바 문학, 역사, 철학은 이른바 “쓸모없다.”는 이유로 매도당하고,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이 유용한 학문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학문들은 응용과학으로서의 사회과학입니다. 주어진 현실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유용성을 인정받습니다만, 근본적으로 인문과학으로부터 자양을 공급 받습니다. 그렇기에 응용과학으로서의 사회과학이 쓸모 있고, 인문과학은 쓸모없다는 주장은 그 자체 천박한 실용주의에서 비롯한 발상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문학 내의 여러 분야를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도토리 키 재기의 성격이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한 가지 사항을 말하고자 합니다. 즉 다양한 외국어 습득은 학문 연마에 그리고 다른 나라의 문화 이해에 그리고 한국 문화를 성숙하게 하는 데에 밑거름이 된다는 게 바로 그 사항입니다.

 

6.

한 가지 비근한 예를 들겠습니다. 한국연구재단은 몇 년 전부터 연구자의 실적을 평가하기 위하여 학술지에다 점수를 매기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필자는 논문 한 편을 학회지에 기고했다가, 61점이라는 논문 점수를 받았습니다. 학회의 어느 총무는 논문을 점수로 환산해야 등재 후보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학술지 등재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데 대한 하나의 예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물량주의, 눈으로 드러나는 실적 등으로 판단하는 것은 그 자체 위험합니다. 통계를 중시하는 자는 기초 인문 사회과학 기초 자연과학이 얼마나 인간 삶에 간접적으로 작용하는지를 추호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7.

이를테면 영문학의 학술지는 무려 29개, 국문학의 등재 학술지는 무려 33개나 되는데, 독문학, 불문학의 학술지는 불과 두어 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게 공평하다고 생각합니까? 하기야 남한의 모든 문화계를 주름잡는 사람들이 국문학 그리고 영문학을 전공한 분들인 것을 고려한다면, 이 사실이 무어 그리 새로울까요?

 

하지만 고등학교의 제 2외국어 교사들 그리고 예체능 교사들을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그들은 떠나야 하지만, 국어, 영어, 수학 교사들은 남습니다. 실력은 여기서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플라톤 (Platon)도 말하지 않았는가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과목은 음악 그리고 체육이라고? 여기에 나는 미술 외에도 두 과목을 첨가하고 싶습니다. 동양 제 2외국어, 서양 제 2외국어가 바로 그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