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서로박: 브링크만의 '오렌지주스 기계는'

필자 (匹子) 2021. 10. 11. 10:58

 

 

 

 롤프 디터 브링크만의 책들의 표지

 

 

 

 

오렌지 주스 기계는

 

롤프 디터 브링크만

 

돌고 있다 & 그 바텐더가 처음에

차가운 차 한 컵 마시는 어느 처녀의

벗겨진 살결을 힐끔 쳐다보는 건

 

좋은 일이다. “여기 아주

무덥지요?” 하고 묻는다, 그건 공간을

약간 치장하는 질문이지,

 

아니면 뭘까? 처녀는 억센 육체를

지녔다, 그미는 자신의 팔을

뻗어서, 컵을 유리 판 위에

 

다시 얹어놓는 순간

땀나는 겨드랑이에서 까만 털의

얼룩이 보인다, 그건 공간을

 

순간적으로 변화시키지만, 생각을

바꾸게 하진 않는다. 그리고 모두

바라본다, 그미가 이러한 방식으로

 

율동을 즐기는 양을, 그러면 바텐더는

어느 오랜 휴식 다음에 박자를

두드린다, 오로지 언제나

 

그러하듯이,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었던 시간, 아니면 대체로 지금

이 낮 시간 동안에.

 

 

Die Orangensaftmaschine von Rolf Dieter Brinkmann: dreht sich & Es ist gut, daß Barmann/ zuerst auf die nackten Stellen eines/ Mädchens schaut, das ein Glas kalten// Tees trinkt. ”Ist hier sehr heiß,/ nicht?“ sagt er, eine Frage, die/ den Raum etwas dekoriert,// was sonst? Sie hat einen kräftigen/ Körper, und als sie den Arm/ ausstreckt, das Glas auf// die Glasplatte zurückstellt,/ einen schwitzenden, haarigen/ Fleck unterm Arm, was den Raum// einen Moment lang verändert, die/ Gedanken nicht. Und jeder sieht, daß/ ihr’s Spaß macht, sich zu bewegen// auf diese Art, was den Barmann/ auf Trab bringt nach einer langen/ Pause, in der nur der Ventilator// zu hören gewesen ist wie/ immer, oder meistens, um/ diese Tageszeit.

 

 

(질문)

1. 시적 배경이 로마임을 암시해주는 시어는?

2. 무료함과 짜릿함은 브링크만 문학의 특징입니다. 두 요소를 상기한 시에서 찾으세요.

 

 

 롤프 디터 브링크만 아마도 1972년의 사진인 것 같음

 

 

  

(해설)

브링크만은 1973년 후반 로마 체류 시에 이 시를 집필하여, 이듬해 미국 텍사스에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습니다. 시의 행과 연은 형식적인 면에서 문장의 구분 없이 차단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시인은 어떤 긴장의 순간을 무엇보다 강조하려 했는지 모릅니다. 맨 처음 기계 (오렌지 주스)는 맨 끝의 기계 (선풍기)로 이어집니다. 두 개의 기계는 시에서 어떤 틀처럼 작용하지만, 그 자체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기계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될 수는 없습니다. 기계들은 일상 속에서 그냥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상 삶이 무료하게 이어지듯이, 기계 역시 아무 뜻 없이 움직입니다. 말하자면 “오렌지 주스 기계는” 그냥 “돌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 마치 선풍기처럼 돌아가듯이, 주스 기계 역시 회전하고 있습니다. 오렌지 주스 기계는 최소한 시적 현실이 어딘지를 독자에게 전해줍니다. 우리는 이로써 주어진 “공간”이 가정집, 레스토랑이 아니라, 선술집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바텐더”에 해당하는 단어로서 “Barkeeper” 대신에 “Barmann”을 사용합니다. 문맥을 고려할 때 바텐더는 바에서 술만 파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을 틀어주는 등 적극적으로 고객을 즐겁게 해줍니다. 이러한 경우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자주 나타나곤 합니다.더운 여름 대낮의 선술집은 무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텐더가 “어느 처녀의/ 벗겨진 살결을 힐끔 쳐다보는” 것은 그 자체 “좋은 일”이라고 묘사됩니다. 차가운 차를 마시는 처녀는 거의 반나체 차림입니다. 팔을 뻗어 컵을 제 자리에 놓을 때 “땀나는 겨드랑이에는 까만 털의/ 얼룩이” 보입니다. 이는 주위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미의 까만 털은 “얼룩 (Fleck)”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얼룩은 일견 더러움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러움이 아니라, 인간에게 수치스러움을 솟아오르게 하는 하나의 점이며, 성욕을 순간적으로 끓어오르게 하는 하나의 점입니다.

 

시인은 로마의 여름 어느 한가로운 선술집 내부에서 어떤 자극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자극은 차 마시는 어느 처녀의 “벗겨진 살결” 그리고 “땀나는 겨드랑이”에서 나타납니다. (시인은 시에서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고객들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제 5연 “모두”라는 시어가 이를 반증하지 않는가요?) 처녀의 이러한 성적 자극은 순간적 상으로 시인의 눈에 투영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술집의 “공간을 순간적으로 변화시키지만”, 사람들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녀의 겨드랑이에서 발견되는 “까만 털의 얼룩”은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도록 작용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즉 시인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도표피성의 미학”입니다. 실제로 상기한 시는 등장인물의 어떠한 마음가짐도, 생각도 전해주지 않습니다. 이 경우 서정시는 항상 표피적인 시학을 추종하는지 모릅니다. 이로써 시인은 어떤 개별적 감정 속에서 세계의 감정을 발설할 수 있습니다. 시 쓰는 작업이란 브링크만에 의하면 궁극적으로 모든 질서 잡힌 사물들을 표현하는 대신에, 자신의 가장 내밀한 감수성을 미적으로 드러내는 일이라고 합니다.

 

 

 

 브레멘의 예술 아카데미. 여기에는 브링크만의 시와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