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홍준 6

(명시 소개) 전홍준의 "좀" - 저항의 시정신

좀 전홍준 수평선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철벅거리며 살아서 어느덧, 불혹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교활한 좀이 되어 세상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살아가는 지금도 어떤 꿈이 있을까 돌아보면 개기름 자르르한 허리와 황금으로 걸신들린 해골박 불어터진 국수가락처럼 질척거리는 인생이 피래미새끼 한 마리 살지못하는 탁한 연못으로 누워있다 남에겐 날을 세우고 내 허물엔 관대하여 동무 하나 없는 적막한 처소에서 석쇠에 나를 굽고 있는가. 凸: 오늘은 전홍준 시인의 "좀"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나는 노새처럼 늙어간다"에 실려 있습니다. 凹: 왜 하필이면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요? 凸: 여러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전홍준의 디스토피아의 역설적 시정신과 관련됩니다. 凹: 어쩌면 작품 "좀"은 시대와 ..

19 한국 문학 2023.04.23

(명시 소개) 전홍준의 시, "금정산"

"난바다를 헤쳐 온 늙은 고래 한 마리 심해에서 건져 올린 지혜를 잘게 부숴 등뼈에다 풀과 나무를 기르고 내 친구 동식이 한숨도 품어주고 막노동 김씨의 술자리에서 말씀으로 훈제한 안주가 되어주기도 하는 언제나 그대가 던져주는 아삭아삭한 꼴 때문에 사하촌의 뭇 생명들 시퍼런 작두날 같은 세상에 베이고도 아직도 미간을 펴고 사는 것이다." (전홍준: 흔적, 전망 2020, 59쪽.) 나: 금정산이 고래로 비유되고 있군요. 그것도 “난바다를 헤쳐 온 늙은 고래”라고 말입니다. 이로써 시인의 섬망 속에는 바다와 땅이 뒤집힌 채 투영되는 것일까요? 너: 산이 고래라면, 인간은 거대한 생명체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작은 난쟁이 릴리푸트와 같을까요? 바다가 늙은 고래에게 험난한 장소였다면, 땅은 우리에게 “시퍼런 작두..

19 한국 문학 2023.03.02

(명시 소개) 풍요 속 인간관계 복원을 고민하다. 전홍준의 시 "아요"

나: 전홍준 시인은 2020년 말에 시선집 『흔적』을 간행했습니다. 너: 그는 “간결하고 투박한 문체로 작품을 창조하는 고향 시인”입니다. 시편들은 홍준 시인의 활달한 성격과 정교한 투시력이 결합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홍준 시인은 언어로 조작하는 수많은 시인들의 경우와는 달리 압축을 선호하고 단어 하나하나가 정확하게 핵심을 찌르고 있습니다. 나: 그렇지만 시적 주제가 독자에게 수월하게 전달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너: 홍준 시인은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시적 유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심하게 정독해야 합니다. 나: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유형의 시 대신에 수사와 수식으로 수놓은 작위적인 시를 선호합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전홍준의 시적 가치가 지금까지 제대로 수용..

19 한국 문학 2022.12.27

(명시 소개) 전홍준의 시, 「영락 공원에서」(3)

(앞에서 이어집니다.) 나: 노장 사상 역시 죽음을 재탄생을 위한 사멸이라고 이해하지만, 그것을 커다란 고통으로 간주하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장자(荘子)는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인간은 조물주라는 대장장이가 만들어낸 칼 한 자루에 불과하거늘, 대장장이에게 “막야(鏌鎁)와 같은 명검으로 만들어 달라.”, “다음 세상에도 인간으로 살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荘子』 「内篇」, 6 太宗師, 제 3장 참고) 이승은 작은 세계이며, 저승은 큰 세계이므로, 어디서 살든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게 장자의 지론이었습니다. 너: 마지막으로 전 시인의 명시,「영락 공원에서」를 다루어볼까요? 산비탈 양지 녁에 저승이 펼쳐져 있다 포실한 삶이었든 땟국물 흐르는 삶이었든 한 줄 생몰연대로 비문에..

19 한국 문학 2021.07.01

(명시 소개) 전홍준의 시 「영락 공원에서」 (2)

(앞에서 이어집니다.) 4. 나: 그럽시다. 일단 작품에서 강조되는 죽음이라는 테마를 논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너: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관해서 논하고, 문학적으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몽테뉴는 철학 행위가 죽음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했지요. 죽음에 관한 책만 해도 엄청난 양이기 때문에, 이를 요약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 같군요, 나: 그래도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요약해주시면 안 될까요? 너: 일단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의 죽음에 대한 견해 차이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특이한 것은 서양인들에게 윤회의 사고가 거의 드물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메소포타미아 문명 속에 “재탄생Karma”이라는 관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윤회는..

19 한국 문학 2021.07.01

(명시 소개) 전홍준의 시,「영락 공원에서」(1)

1. 나: 오늘은 전홍준 시인의 시 「영락공원에서」를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시인은 죽음에 관해서 처절하고도 집요하게 사유하면서, 이를 시작품 속에 영글어놓고 있어요. 가령 우리는 그의 시선집 『흔적』에 실린 시편 가운데에서 「영락공원에서」, 「영락공원에서 1」,「선택」, 「상가에서」등의 작품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 죽음에 대한 놀라운 사유는 「영락공원에서 1」에서 잘 나타납니다. 심장마비로 오십 대에 숟가락을 놓은 날벼락 앞에서도 상주들은 별리 입은 옷 같은 슬픔에 젖어 있다 품앗이문상객들은 조화로 치장한 슬픔에게 절하고 국밥을 먹는다 소주를 마신다 그리고 내일 돌아올 수표를 걱정한다 영정 속의 망자만이 선명한 비탄에 빠져있다 사자 입으로 들어가는 새끼를 쳐다보며 천연스레 풀을 뜯는 초..

19 한국 문학 2021.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