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일 4

서로박: (5) 보브롭스키의 '레빈의 방앗간'에 등장하는 다섯 개의 유령상에 관하여

(앞에서 이어집니다.) 9. 나오는 말 󰡔레빈의 방앗간󰡕에 나타난 유령의 상의 특성을 결론적으로 정리해 보자. 이는 작품의 주제와 직결되는데, 다음의 세 가지 사항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마지막을 제외한) 네 개의 유령의 상은 “인간의 기억 속에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단순한 보복 행위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누가 어떤 이유에서 잘못을 저질렀는가? 하는 법적 정당성 및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상황 등을 망각하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당했다’는 심리적 피해 의식만이 앞설 뿐이다. 이렇듯 피해는 또 다른 보복을 낳는다. “첫 번째 상 - 피해, 두 번째 상 - 복수, 세 번째 상 - 피해, 네 번째 상 - 잔인한 보복”이라는 구도를 생각해 보라. 문제는 누구든 간..

45 동독문학 2024.12.23

서로박: 동독 문학 연구의 필요성과 한계 (2)

5.대신에 한국 문화 시장을 주름잡게 된 것들은 이른바 프랑스 구조주의를 바탕으로 한 일련의 이론들, 명사적 요소론에 입각한 정태주의의 사고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아름답게 포장한 자본주의의 껍질 문화 등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은 학문과 문화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우량 문화가 자생할 힘을 잃게 된 까닭은 한마디로 부실기업 식의 거짓된 문화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상기한 사상과 문화에서 부분적으로 긍정적 요소를 찾아내어, 이를 강조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입장들 역시 주어진 현실과 관련하여 조금씩 정당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미국식 자본주의의 껍질 문화는 근본적으로 소비 지향적 특성을 은폐시키지는 못한다.)  거짓된 껍질 문화들은 이번에도 동시 다발적으로 동양의..

45 동독문학 2022.06.09

서로박: 슈테판 하임의 "아하스베어"

슈테판 하임 (Stefan Heym, 1913 - 2001)의 장편 소설 "아하스베어"는 1981년에 간행되었다. 어째서 유대인들은 영원히 방랑하는 숙명을 지니는 것일까? 하임 역시 스스로 유대인이자 사회주의자로서 일찍이 나치 독일을 떠나야 했다. 그는 30년대에 체코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1947년에 미국에서 메카시 선풍으로 인한 반공산주의적 분위기에 혐오감을 느끼며, 구 동독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구 동독은 하임으로 하여금 수많은 갈등을 빚게 만든 고향이 되었다. 예컨대 1976년 비어만 추방령을 철회해 달라는 공개적 서한문에 서명하였다. 하임은 소설 "아하스베어"에서 창세기 이전의 신비로운 이야기를 추적하고 있다. 아하스베어는 원래 루치퍼와 함께 천사였다. 그는 불과 정령을 관장하는 존재이다..

45 동독문학 2021.10.17

크리스토프 하인

소설 쓰기는 그야말로 희열과 고통이라는 양극을 오가는 작업이지요. 자신의 예술적 창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희열 그리고 매일 끈덕지게 글을 써야 한다는 손가락의 아픔 (도스토예프스키는 펜으로 글을 썼습니다.)을 생각해 보세요. 희열과 아픔 - 작가의 이러한 복잡한 감정은 제 자식을 잉태하는 여자의 기쁨과 괴로움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창조의 작업은 -마치 출산이 그러하듯이- 그 과정에서 고통을 안겨주지요. 크리스토프 하인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호세 오르데카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는 아침에 일어나면 즉시 화장실로 향한다고 한다.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는 게 아니다. 책상으로 가기가 너무너무 싫어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책상에 앉으면 소설..

9 문학 이야기 2018.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