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5가 신동엽 밤 열한시 반 종로 5가 네 거리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통금(通禁)에 쫓기면서 대폿잔에 하루의 노동을 위로한 잡담 속 가시오 판 옆 화사한 네온 아래 무거운 멜빵 새끼줄로 얽어맨 소년(少年)이, 나를 붙들고 길을 물었다. 충청남도 공주 동혈산(銅穴山) 아니면 전라남도 해남땅 어촌 말씨였을까,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소년(少年)의 눈동자가 내 콧등 아래서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들고 바삐바삐 지나가는 안파에 밀리면서 동대문(東大門) 을 물었다, 등에 짊어진 푸대자루 속에선 먼길 여행한 고구마가 고구마끼리 얼굴을 맞부비며 비에 젖고, 노동으로 지친 내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