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3. 텍스트의 제 1부
“보이체크는 아직도 대대장에게 면도해주고, 정해진 처방대로 완
두 콩만 먹는데, 자신의 사랑이 둔감하게 되었으므로 ‘그’는 애인
마리를 괴롭히며,”
실존 인물 보이체크는 19세기 초에 비참하게 살다가, 1821년 질투심 때문에 (?) 자신의 애인, 46세의 과부를 칼로 찔러 죽였다. 재판 당시에 정신과 의사들이 그의 심리적 상태를 진단했으나, 결국 보이체크는 1824년 8월 27일에 라이프치히에서 공개적으로 처형당했다. (각주: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 (1813 - 1837)는 1834년부터 극작품 「보이체크」를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우리는 「보이체크」의 살인이 하나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사건의 과정 속에서 묘사되고 있음을 중시해야 한다. 뷔히너의 「보이체크」는 다음의 책에 실려 있다. 뷔히너 문학 전집. 당통의 죽음, 임호일 역, 한마당 1987, 203 - 237쪽.). 보이체크는 온갖 직업 (가발 만드는 사람, 시종, 군인, 실험 인간)을 전전하였다. 거의 노숙 (露宿)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던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마디로 보이체크의 적은 개별적 인간들, 즉 자신을 속였던 애인 마리도, 짐승 취급을 하는 박사도 아니었다. 이 세상 전체가 보이체크의 적이었고, 그는 제반 삶의 환경으로부터 소외되었던 것이다. 인용문에서 눈에 띄는 표현은 “아직도”라는 단어이다. 뮐러의 표현에 의하면 보이체크는 역사적 인물로 국한될 수 없다. 그는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소외되어 살아가는 부랑자, 소위 양심범으로서 감옥 생활을 하는 소수를 대변할 수도 있다.
“‘그’의 주민들은 국가로 변모했고, 유령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가령 사냥꾼 룽게는 ‘그’의 피비린내 나는 형제이며, 로
자 룩셈부르크를 암살한 자들의 무산 계급적인 도구에 불과하
다.”
“유령들에 둘러싸여 있다”라는 표현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첫 구절을 연상시킨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인하여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국가의 주체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고유하게 누려야할 자유는 “유령들에 둘러싸여 있”을 정도로 여전히 박탈당해 있다. 예컨대 국가는 자유와 혁명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를 살해한 룽게와 같은 자들은 무산 계급의 안녕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그들을 감시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룽게는 여성 사회주의 운동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암살범일 수도 있고, 스타지의 “사냥”개로 일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
“‘그’의 감옥은 스탈린그라드라고 일컫는데, 그곳에서는 살해당한
여자가 크림힐트의 마스크를 쓴 채 ‘그’에게 다가선다.”
오늘날 보이체크는 “스탈린”이 만든 감옥 속에서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곳에서 그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만난다. 독일 혁명은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암살로써 종말을 고했다는 뮐러의 발언을 생각해 보라. (각주: 이에 관해서는 다음의 문헌을 참고하라. Heiner Müller: Jenseits der Nation, Köln 1991, S. 9; 실제로 로자 룩셈부르크 (1871 - 1919)는 1915년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스파르타쿠스 연맹을 창설하였고, 1918년 감옥 생활 후에 독일 공산당 프로그램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1919년 로자 룩셈부르크는 베를린 폭동에 가담하였는데,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친정부 의용단 (Freikorp) 군인에 의해서 암살되었다.). 인용문에서 “살해당한 여자”를 크림힐트와 비유된 것은 뮐러의 기발한 착상이다. 크림힐트는 독일 니벨룽겐 전설에 나오는 부르군트 왕의 여동생인데, 자신의 실수에 의해서 남편 지크프리트를 잃게 된다. 그 후 그미는 지크프리트의 살해에 가담한 자들에게 끔찍한 복수극을 저지른다. 이로써 뮐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과거의 끔찍한 죄는 아직도 정당한 심판 없이 다음 세대로 계속 연기되며, 그렇기에 (혹은?) 야만적 역사는 반복되어 현재에도 그대로 발생하고 있다. (각주: 이에 관한 비유는 뮐러의 게르마니아 3에서 반복되고 있다. H. Müller: Germania 3. Gespenster am toten Mann, Köln 1996, S. 24 - 28, (한국어 번역) 게르마니아 3. 죽은 남자의 유령, 이상복 역, 작가 제 6호, 1997년 3/ 4월호, 247 - 287, 257쪽.).
“그미의 기념비는 마마이 언덕위에 서 있고, 그미의 독일적 기념
물은 베를린 장벽, 정책 속으로 혼입된 혁명의 탱크 행렬이다.”
인용문에서 ‘그미’는 크림힐트의 마스크를 쓴 로자 룩셈부르크를 지칭한다. 호르스트 돔다이의 견해에 의하면 스탈린그라드의 마마이 언덕에는 높이 70미터의 장검을 쳐든 여성상이 있는데, 이는 승리를 구가하는 러시아를 상징한다고 한다. (각주: Horst Domdey: ’Historisches Subjekt‘ bei Heiner Müller. Müllers Büchner-Preisrede ”Die Wunde Woyzeck“, in: Jahrbuch zur Literatur in der DDR, Bd. 7, Bonn 1989, S. 93 - 114, Hier S. 94.). 그런데 마마이는 브록하우스 백과사전에 의하면 흑해의 루마니아 항구 도시에 있는 휴양지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마이 언덕은 (길이 6 킬로, 폭 250 미터의) 백사장을 지칭한다. 만약 문맥을 중시한다면, 우리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논리적으로 합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각주: “스탈린그라드”라는 지명 자체는 뮐러의 텍스트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뮐러는 스탈린주의를 은근히 암시하려고 소련의 도시를 예로 든 것 같다.). 왜냐하면 소련 사회주의의 승리는 뮐러에 의하면 지금까지 루마니아 등의 위성 국가의 억압에 의해서 작위적으로 정당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독일의 경우 베를린 장벽 및 1953년 동베를린 노동자 폭동 당시에 탱크 행렬이 바로 소련 국가의 간섭 내지는 중재 활동이었다. 그렇기에 혁명의 탱크 행렬은 동구 국가에 대한 소련 정책을 상징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를 끌고 가는 보호자의 어깨에 입을 짓누
르며, 카프카는 ‘그’가 형제를 살해한 후에 간신히 마지막 역겨
움을 집어 삼킨 채 무대로부터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사냥꾼 룽게가 보이체크를 괴롭히고, 로자 룩셈부르크가 암살당하며, 소련의 탱크가 동구 국가들의 민주화 운동에 무력 진압을 자행하는 것은 뮐러의 발언에 의하면 “형제 살인”이나 다름이 없다. 보다 나은 삶과 이웃을 위해 살아가며 저항하는 자에게 총칼을 겨누는 자는 적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적에게 매수된 이웃들이다. (각주: 뮐러는 브레히트의 「파처 단장 (斷章)」에 나타난 주제 의식을 높이 평가하고 자주 이에 관해서 언급한 바 있다. 혁명을 담지하는 자들이 공동으로 힘을 합해서 적과 싸우는 대신에, 자기끼리 집안싸움을 벌린다는 구도를 생각해 보라. H. Müller: Krieg ohne Schlacht. Leben in zwei Diktaturen, Köln 1992, S. 309 - 314.). 이와 관련하여 뮐러는 카프카의 단편 「형제 살인 Der Brudermord」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한다. 카프카의 작품에서 쉬마르는 밝은 달빛 아래에서 아우인 베제를 살해하는데, 전편에 걸쳐 뚜렷한 살인 동기가 드러나지 않는다. (각주: 마치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눈부신 햇빛 때문에 살인 행각을 저지르듯이, 쉬마 역시 달빛 때문에 아우를 살인한다. 카프카의 작품에서 “보호자”는 살인을 지켜보던 팔라스라는 제 3의 인물을 지칭한다. F. Kafka: Sämtliche Erzählungen, Frankfurt a. M. 1980, S. 144f.).하이너 뮐러에게 중요한 것은 카프카 작품의 주제인 살인의 존재론적인 물음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이러한 형제 살인의 비유가 나아가서 무산 계급 끼리의 살육으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혹은 의사에 의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의 역할을 담당하는지
도. 마치 탄광과 같은, 환자의 열린 상처에서 벌레들이 날름날
름 혀를 내밀고 있다.”
형제를 살해하는 자는 환자로서 다만 ‘의사’의 조처에 의해서 움직이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이 비유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이중적으로 암시한다. 그 하나는 보이체크의 마리에 대한 살인이요, 다른 하나는 사냥꾼 룽게의 형제 살인이다. 이들은 권력자와 이데올로기에 의해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는 자들로서,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들의 상처는 전혀 치유되지 못했으므로, 벌레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환자’의 상처는 주어진 시대에 아물지 못한 채,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되어 출현하는지 모른다.
“맨 처음 드러난 현상은 고야의 거인이다. 거인은 산위에 앉아,
몇 시간동안 세상을 지배한다. 게릴라들의 아버지.”
위에서 언급한 가해자이자 피해자들은 다시 “고야의 거인”이라는 모습으로 작가의 의식 속에 투영된다. (각주: 뤼시엔테스 고야 (1746 - 1828)은 에스파냐의 화가로서 1795년부터 과감한 시대 비판의 그림을 즐겨 그렸다. 특히 귀족 부인 ‘마야’의 나체를 그렸다는 이유로 물의를 일으킨 화가이다. 고야는 1815년부터 끔찍한 유령의 세계를 소재로 채택하였다.). 인용문에서 “고야의 거인”이란 고야의 그림 가운데 「크로노스 신이 아기를 집어먹는 장면」과 관련되는 것 같아 보인다. 비록 주피터의 아버지, 크로노스로 묘사되어 있지만, 화가는 인간이 인간에 의해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가? 를 참혹하게 형상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로써 하이너 뮐러는 혁명적 사건의 짤막한 순간을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지속되는 순종의 역사와 대비하려고 한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크로노스는 한편으로는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강한 의지의 혁명가를,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 이념을 주어진 현실에 정착시킨 권력자를 상징한다. 바로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게릴라들의 아버지”라는 표현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겠다. 고야의 그림, 「게릴라에 대한 총살형」을 예로 들어보자. 고야는 나폴레옹의 억압에 항의하다 총살당하는 게릴라들에 관해 그림을 남겼는데, 이러한 유형의 화풍은 나중에 피카소에 의해 「게르니카」, 「한국동란」으로 전승된 바 있다. 그러니까 게릴라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시기가 바로 고야의 시대임을 고려해 보라. (각주: Siehe Lion Feuchtwanger: Goja oder Der arge Weg der Erkenntnis, Berlin/ Weimar 1991. Nachwort von Fritz Rudolf Fries.).
“파르마에 있는 수도원 방의 벽에 그려진 어느 그림에서 나는
‘그’의 부러진 다리를 바라보았다. 고대의 배경 속에서 거대하
게.”
이 대목 역시 고야의 거인의 상징성과 관련되는 것 같다. (두 번째 단락에서 “유령”이 암시하는 바와 비교해 보라.) 음흉한 크로노스의 커다란 입속에는 난장이처럼 보이는 몇몇 인간들의 하체만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뮐러의 눈에는 끔찍한 전쟁 및 파멸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의 다리가 마치 보이체크의 뜯겨나간 다리로 비치고 있다. 보이체크의 적 (敵)은 크로노스와 같은 거대한 사회 전체가 아니었던가?
“어쩌면 이 세상 어디선가에 ‘그’의 몸은 사람들의 손아귀에 의
해 아마도 웃음 속에 흔들리며, 공중에 빙빙 돌다가 어떤 미지의
미래 속으로 던져진다.”
본문을 세심하게 읽으면, 우리는 세 개의 문장으로 나눌 수 있다. 마지막 문장은 다음 대목과의 연결을 꾀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다지 커다란 설명을 요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손아귀에 의해 웃음 속에 흔들”리는 “‘그’의 몸”이란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 것일까? 돔다이는 물구나무 서서 웃고 있는 주체를 보이체크 자신으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행동을 (니체가 차라투스트라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어떤 변모를 꾀하려는 초인의 욕구”로 해명한다. (각주:Horst Domdey: Historisches Subjekt bei Heiner Müller, a. a. O., S. 94. ) 그러나 우리는 동일한 표현만으로써 사고 내지는 입장의 공통성을 추출하려는 돔다이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유추된 상 (像)들의 관련성 및 텍스트 전편에 흐르는 문맥을 더욱 예의 주시해야 한다. 그렇기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니체의 사상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투쟁 내지는 갈등이다. 즉 피해당하는, 소수의 하층 계급에 속하는 보이체크 그리고 보이체크에게 위협을 가하고 비웃는, 다수의 중간 계급 사이의 대립이 바로 그것이다.
.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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