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회심리론

박설호: (1) 지배 이데올로기, 혹은 해방으로서의 성(性)

필자 (匹子) 2025. 4. 18. 08:57

1. 몇 가지 제한점과 문제점

 

필자가 본고에서 의도하는 바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시민사회의 성 윤리에 대한 라이히의 비판을 분석함으로써, 라이히가 집중적으로 추구한 성의 바람직한 실천 및 성의 해방에 관한 제반 문제점을 추적하려는 것이다. 시민 사회의 성 윤리 및 가정 체제는 -라이히의 견해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볼 때 주어진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파생한 상대적 개념이라고 한다. (예컨대 오늘날의 일부일처제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경제적 사회적 측면을 바탕으로 하여-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도가 그자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의 사고는 마르크스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 또한 그의 성 경제학은 일차적으로 프로이트의 초기 이론을 초지일관 발전시키고 보완시킨 것이다. (각주: “성 경제학”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학문적 영역으로 해석될 게 아니라,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경제 효과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성 경제학적 입장이란 강제적 성 윤리의 태도에서 자발적인 자기 조절의 태도로 변화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로써 라이히의 이론은 프로이트 마르크스주의라는 범주에 포함될 수 있겠다. (프로이트 이론과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접합 가능성 여부는 맨 마지막 장에서 약술하기로 한다.)

 

그렇지만 필자는 정신 분석학적 차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규명하고 있는 제반 학자들의 견해를 개괄적으로 열거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각주: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음의 논문을 참고하라. 강내희: 욕망이란 문제 설정?, 문화 과학 3호, 93년 봄, 11 - 48쪽; 오세철: 빌헬름 라이히의 사회사상과 정신 의학의 비판 이론,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과 대중 심리 (오세철 강명구 역), 서울 1987 (제 2판), 418 - 421쪽.). 본고는 오히려 오직 라이히의 성 경제학적인 입장만을 집중적으로 천착함으로써, 소위 인간의 복된 삶을 보장해준다고 하는 성의 혁명에 관한 라이히 이론의 타당성 여부를 밝히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라이히가 30년대 유럽에서 집필한 세 권의 대표작, “강제적 성 윤리의 출현” (1931), “파시즘의 대중 심리” (1933), “성의 혁명” (1935)을 토대로 상기한 문제점들을 거론하기로 한다.

 

라이히가 5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 착수한 연구는 본고의 주제와 거리감이 있을 뿐 아니라, 사회 심리학적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서 학문적으로 검증하기가 무척 어렵다. 이를테면 우리는 그의 오르곤 연구에 관한 문헌 및 “그리스도의 살인”을 들 수 있다. 특히 후자의 책은 -비록 라이히가 자신의 저서들 가운데에서 가장 탁월한 것으로 스스로 평가한 바 있으나- 라이히 자신이 대인 기피증, 결벽증에 시달린 시기에 집필된 것이며, 내용상으로도 자신이 집요하게 추적한 역사적 사실 규명과는 거리감을 지니고 있다. (각주: 필자의 관심사는 정신 병리학적인 세부 사항들이 아니라, 라이히의 이론이 지니고 있는 사회 심리학적 방향과 그러한 긍정적 내지는 부정적 영향이다. 따라서 우리는 빌헬름 라이히의 의료적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연구서 “성격 분석” (1933), “오르가즘의 기능” (1934) 등을 다만 부분적으로 원용하려고 한다.).

 

필자는 본고에서 하나씩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라이히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시민 사회의 성 윤리를 어떻게,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 비판하고 있는가? 라이히는 인간의 충동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으며, 그가 일컫는 부차적 충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다 바람직한 성의 실천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이를 위한 라이히의 대안은 무엇인가? 라이히의 성 경제학적 입장은 어떠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가? 등의 물음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러한 물음들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프로이트와 라이히의 이론적 입장, 특히 두 학자의 문화적 진보에 대한 입장 차이점들을 살펴보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2. 프로이트의 충동의 포기와 타협주의

 

지금까지 알려지고 있는 프로이트의 문화 이론은 (초기 시절에 그가 추구했던) 성 억압으로 인한 개개인의 병리 현상에 관한 리비도 이론과는 부분적으로 대립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내면적 충동의 억압, 다시 말해 충동의 포기에 의해서 문화가 탄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류가 실제로 불이 어떻게 발견되었는가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그러한 견해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의 기본적 사고에 의하면 인류의 문화적 성과는 한 마디로 말해서 승화된 성 에너지의 결과라고 한다. (각주: Sigmund Freud: Civilisation, society and religion, New York 1985, P. 286.). 이로써 성에 대한 외부적 억압과 내부적 망각은 인류의 문명 및 문화를 형성시키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이다. 라이히는 프로이트의 이론 가운데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부분적으로 정당하다고 평가한다. 즉 성의 억압은 전체로서의 문화 및 문화 형성의 토대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문화적 형태 속에 나타나는 어떤 특정한 부권주의의 문화라는 대중 심리학적인 토대를 형성시킨다는 점 말이다.

 

그러나 라이히는 로하임, 피스터, 뮐러-브라운슈바이크, 콜나이, 라 포르그 등의 정신 분석학자들이 추종한 “승화 Sublimieren”와 “비판적 판단 Verurteilung”에 관한 이론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라이히의 견해에 의하면 무의식의 발견과 무의식의 해방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이 해방되려면 인간의 성생활은 어떤 반사회적인 억압을 탈피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압을 탈피하려는 인간의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게 정신 분석학자들의 지론이었다. 이는 라이히에 의하면 분명히 이율배반적이다.

 

특히 라이히가 취약점으로서 파악한 것은 정신 분석학자들이 대안으로 찾아낸 승화와 비판적 판단에 관한 이론이었다. 승화는 인간의 충동이 예술 혹은 고상한 취미 생활 등에 대한 관심으로 이전 (移転)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신의 충동을 도저히 승화시킬 수 없는 환자들은 -정신 분석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오직 판단력의 도움으로 충동을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충동을 의식적으로 뇌리에서 씻어버리려면, 환자들은 자아의 의지와 비판력에 근거하는, 이른바 판단을 원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개인은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충동의 포기에 의해서” 주어진 문화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그 문화의 담지자가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추론해내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즉 사회의 문화는 충동의 포기를 전제로 하며, 충동의 포기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정신 분석학자들의 이러한 입장은 프로이트 문화 이론의 핵심 개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나온 것이었다.

 

문제는 라이히가 정신 분석학자들의 상기한 입장 및 프로이트의 후기 이론을 결연히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라이히의 견해에 의하면 한결같이 프로이트 초기 이론을 부분적으로 파기시키면서, 죽음 및 자아 충동과 결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히는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이 부분적으로 수정되고, 승화 및 비판적 판단의 개념으로 대치된 이유를 무엇보다도 리비도 이론에 대한 유럽 부르주아의 불만 내지는 비난에서 예리하게 찾아내고 있다.

 

프로이트는 초기에 “성의 억압은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노동력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동시에 문화의 창조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이른바 어떤 혁명적인 가설을 발견한 바 있다. 당시에 무의식에 관한 독창적 이론을 발표하라고 프로이트를 격려한 사람은 베를린에서 이비인후과를 개설한 의사이자 친구인 빌헬름 플리스 (Wilhelm Fliess, 1858 – 1928)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가 초기에 발견한 것은 부르주아들에게 엄청난 불안감 내지는 위기의식을 심화시켰다. 만약 프로이트가 제반 충동의 억압으로써 개인에게 그리고 사회에 나타나는 병리 현상을 설명하게 되면, 이는 지금까지 존속한 국가적인, 종교적인 그리고 가정 체계와 같은 모든 위계질서를 허물어뜨리는 셈이었다. (각주: W. Reich: Die sexuelle Revolution, Frankfurt a. M. 1977, S. 35f.). 바로 이러한 까닭에 유럽 부르주아들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미풍양속 및 윤리를 위협하며 이 세상을 종말로 치닫게 한다고 주장하며, 거의 신들린 듯이 프로이트에게 신랄한 비난을 가했다. 이를테면 프로이트는 삶의 에너지를 노동이 아니라 성생활로 소모시킬 것을 설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각주: 이는 한마디로 편견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먹고 사는 데에 지장이 없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만을 고려했을 뿐이며, 굶주림으로부터 해방되려는 프롤레타리아의 “자아 보존 충동”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른바 프로이트의 충동 이론에 담겨 있다고 하는 반 윤리주의는 유행하는 슬로건처럼 퍼져 나갔다.

 

이때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충동의 억압을 승화 및 판단의 개념으로 대치시키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들을 불안하게 하였던 “어떤 위험한 유령”이 사라져 버렸다고 안심할지 모른다. 그러한 고심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자아 내지 죽음의 충동에 관한 이론이었다. 이 이론이 발표되었을 때, 프로이트에 대한 부르주아의 비난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각주: 맨 처음에 프로이트는 ‘스스로 문화를 찬양하고, 자신의 학문적인 발견이 문화를 전혀 해롭게 만들지 않으리라’고 거의 맹세하다시피 하였다. 이를 위해서 집필한 논문이 바로 프로이트의 “범 (汎)섹스주의 Pansexualismus”에 관한 연설문이다.). 프로이트의 수정된 이론이 발표되자, 지금까지의 정신 분석학에 대한 부르주아의 적대감은 묘하게도 부분적인 수용으로 변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르주아들은 수정된 프로이트의 이론을 하나의 진보라고 기록할 정도였다. 왜냐하면 프로이트가 환자들로 하여금 죄악의 무의식적인 억압으로부터 충동의 만족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형태의 윤리는 사람들이 성을 탐하지 않고, 오히려 성적인 유혹을 견디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성 윤리가 지금까지 언제나 성의 억압을 강조한 까닭은 무엇보다도 더욱 커다란 노동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기득권자들의 갈망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프로이트의 수정된 이론은 기득권층의 관심사에 전혀 위배되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라이히는 프로이트 이론의 방향 전환을 한마디로 부르주아 문화에 순응한 반혁명적인 타협이라고 단정을 내리고 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