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 배 Das Narrenschiff'

필자 (匹子) 2024. 9. 2. 11:00

친애하는 J, 풍자는 두 가지 특징으로 나누어집니다. 그 하나는 날카로운 기지와 촌철살인을 담은 착상의 방식이라면, 다른 하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미소 짓게 하면서, 은근히 무언가를 비난하는 방식입니다. 가령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의 경구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기원 후 2세기에 간행된 루키아노스Lukian의 『참된 이야기Verae Historiae』라든가,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 배』에 실린 이야기들은 후자에 해당합니다. 전자가 “쓰라린 냉소Galgenhumor”를 불러일으킨다면, 후자는 영국인의 간접적이고 은은한 비아냥을 담고 있습니다. 언젠가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은 자신의 편지에서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의 온탕과 이성의 냉탕"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바보 배』의 이야기가 감정의 온탕이라면, 라로슈푸코의 경구는 이성의 냉탕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작품, 『바보 배』는 1494년에 처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운문 형식으로 이루어진 풍자의 글로 이해됩니다만, 이후의 시대에 소설로 발간되었습니다. 작품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이들 각자의 성격 그리고 하자를 드러내는 행동과 사고 등을 은근히 풍자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중세 후기 시대의 변화 없는 상황을 고찰하면서, 계층 차이에서 비롯한 기이한 관습을 은근히 비판합니다. 작가는 법학을 전공한 지식인인데, 당시에 무너진 사회 질서, 파괴된 도덕을 예리하게 지적하려고 했습니다. 작품은 112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중에 두 개의 장이 첨부되었습니다. 모든 단락에는 3행으로 이루어진 표제가 실려 있으며, 이는 일종의 잠언 역할을 담당합니다. 뒤이어 목판화가 실려 있는데, 이는 작품에 대한 짤막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바스티안 브란트는 1457년에 슈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나, 1475년부터 스위스의 바젤 대학에서 의학과 법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500년까지 동 대학에서 법학 교수로 일하다가, 이듬해 슈트라스부르로 돌아왔습니다. 1502년부터 죽을 때까지 그는 슈트라스부르 관할 변호사로 그리고 시장으로 봉직하였습니다. 브란트는 인문학 연구에서 대단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라틴어 종교시를 써서 발표했으며,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학 그리고 이탈리아 휴머니스트들의 작품을 연속적으로 간행하였습니다. 작품 『바보 배』는 브란트의 생존 시기에 16판이나 간행되었으며, 1497년에는 라틴어판도 별도로 출판되었습니다.

 

 

“바보 배의 서언vorred in das narren schyff”에서 작가는 자신이 어째서 이 책을 쓰게 되었는가를 서술합니다. 작가는 어리석은 자들의 행동 양상을 언급함으로써, 지혜로움과 이성 그리고 올바른 도덕을 역으로 심화시키려고 의도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집필 의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브란트는 삽화까지 활용했습니다. 브란트는 평범한 사람들의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수집하여, 이를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드러나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상의 취약점, 작은 범행 그리고 악덕입니다. 말하자면 바보의 거울에 비친 인간군의 어리석은 행동이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거울 속에서는 모두가 바보로 비치는데, 독자는 이를 바라보면서 엉겁결에 자신의 감추어진 면모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랄 수 있습니다.

 

바보의 전형적 특징은 브란트에 의하면 한마디로 일곱 가지의 악덕, 다시 말해서 칠거지악(七去之惡)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만, 탐욕, 폭음과 폭식, 질투, 나태함, 인색함 그리고 노여움을 가리킵니다. 교만과 오만은 다른 사람과 세상을 깔보게 합니다. 탐욕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타인에게 해로움을 끼칠 수 있습니다. 폭음과 폭식은 절약과 절제의 삶을 방해합니다. 질투는 사랑의 뒷모습으로서 너무나 강하면, 원래의 고결한 사랑을 망치게 합니다. 게으름은 가족과 이웃을 가난하게 만듭니다. 인색함은 주위에서 고통받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행위이며, 분노 조절이 어려우면 폭력 사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곱 가지의 태도야말로 인간을 어리석은 존재로 만드는 대표적인 성향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모세가 강조한 십계명을 어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론적 세계관을 지닌 브란트가 모든 도덕과 윤리를 오로지 기독교의 차원에 국한하지는 않습니다. 브란트의 도덕성은 기독교의 윤리를 넘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인간관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브란트에 의하면 바보 같은 행위가 바로 죄악이며, 죄악이 바로 바보 같은 행위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항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바보에게서 엿보이는 가장 끔찍한 잘못은 브란트에 의하면 피치 못할 범법적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바보인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단호함이라고 합니다. 콘크리트 머리통을 지닌 사람이 가장 끔찍한 바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바보 같은 짓거리임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자는 바보가 아닙니다. 스스로 바보임을 모른 채 자신의 태도가 올바르고 관습, 도덕 그리고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확신하는 외골수의 처신이 가장 문제라고 브란트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바보가 치유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인식이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하자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더 이상 몽니를 부리지 않습니다.

 

 

 

브란트는 이러한 자기 인식을 위해서 하자를 지닌 모든 행동들을 하나씩 선별하여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상식과 지혜를 지닌 지혜로운 인간은 구약성서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이는 합리적 현재 세계에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행복과 구원을 동시에 강조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종교적 구원보다는 현세에서의 실질적 행복을 더욱 절실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브란트는 바보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간간이 죽음의 위협 그리고 계시록의 관점을 은근히 드러냅니다. 이로써 브란트는 르네상스 시대에 나타난 세계의 종말 현상 그리고 이에 대한 우울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말세의 허무주의가 도래하게 된 원인으로서 그는 한 가지를 지적합니다. 그것은 바로 도덕의 파멸인데, 이는 어리석은 인간이 사회적으로 끼치는 악영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브란트가 단순히 종교적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반성하고 구원을 촉구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도덕과 윤리적 자세를 바로잡는 문제라고 합니다. 스토아 사상의 경우 “미덕arete”은 아파타이아απάθεια, 즉 냉정한 마음에서 평정심과 같은 것인데, 저자는 이를 전폭적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올바르게 정립되려면, 브란트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인간의 행동 양상이 일차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브란트는 집필 과정에서 자신이 저자가 아니라, 이야기의 편찬자라고 간주했습니다. 솔로몬의 설교, 솔로몬의 발언 등과 같은 구약성서의 내용뿐 아니라, 신약성서의 이야기도 어느 정도 작품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작품에는 오비디우스Ovid와 베르길리우스 Vergil 그리고 유베날리스 Juvenal로 이어지는 고대 로마의 문학, 로마법에 등도 상당 부분 참조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목판화입니다. 작품에 실린 목판화의 삼 분의 이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뒤러의 작품은 작품의 주제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독자에게 생생한 유머를 전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렇기에 목판화는 작품에 실린 도덕적 논의를 생생한 그림으로 알려주는 “역사적 증명 사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 배는 한국에서도 노성두 교수님의 노력으로 2016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제바스티안 브란트: 바보 배, 노성두 역, dleek, 2016). 번역이 매끄러워 가독성에서 훌륭한 책이니 일독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