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J, 오늘은 테오도르 폰타네 (Th. Fontane, 1819 - 1898)의 『에피 브리스트』에 관하여 언급할까 합니다. 작가는 1890년에 소설 집필을 착수하여, 1894년 그리고 1895년에 완성하였습니다. 작품은 80년대 프로이센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여, 결혼의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1886년 프로이센 장교, 아르만트 폰 아르데네 (A. v. Ardenne)는 뒤셀도르프의 판사, 에밀 하르트비히와 백주 대낮에 결투를 벌였습니다. 왜냐하면 에밀은 자신의 아내, 엘리자베트 폰 플로토 (E. v. Polotho)와 비밀리에 정을 통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작가들은 이것을 소재로 소설을 집필한 바 있습니다. 가령 카를 로베르트 레싱 Carl R. Lessing은 "에피, 이리 와ㅋ"를 썼고, 프리드리히 슈필하겐 Fr. Spielhagen은 ?시간 때우기 위해서? (1896)를 발표한 바 있는데, 폰타네는 이 두 작품을 창작에 원용하였습니다. 두 작품은 세인의 뇌리에서 망각되었고, 그저 폰타네의 작품만이 문학사에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결투의 심리학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럽의 시민 사회에서 결투를 벌인 사람들은 주로 귀족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사소한 문제에도 상처입지 않으려 했고, 걸핏하면 장갑을 상대방에게 던지곤 하였습니다. 특히 여자 앞에서 자존심 상하는 것을 남자들은 못내 싫어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와 만나서 통정하게 되면, 이는 결투의 필연적 요건으로 작용하였습니다. 귀족들은 결투를 통해서 얼굴에 상처 입는 것을 하나의 영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얼굴의 칼자국을 “Mensur” 혹은 “Kaiserschmiss”라고 명명하기도 하였지요. 문제는 결투를 통해서 상대방이 목숨을 잃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도 프로이센 제국의 법은 결투 행위에 대해 관대했습니다. 결투를 통해서 상대방을 죽인 자는 기껏해야 몇 달 옥살이를 하다가 풀려나곤 했으니까요. 결투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폐지되었습니다.
이제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남자주인공 인슈테텐은 호엔-크레멘 지역의 귀족입니다. 그는 브리스트 기사 협의회의 집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여자 친구인 브리스트 부인의 딸에게 청혼합니다. 인슈테텐은 힌터 폼메른의 케신 지역의 고위 관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인슈테텐의 직장은 안정된 것이었고, 출세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좋은 성품과 선한 도덕”을 지닌 남자가 행하는 직업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말하면 국가의 녹을 먹는 군수 내지 현감이라고나 할까요? 17세의 어린 소녀 에피는 자신보다 20년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합니다. 말하자면 에피의 부모가 무언가를 잘못 판단하여, 어린 소녀를 37세의 나이든 노총각과 결혼시킨 것입니다. 에피에게는 결혼에 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미는 예식에 길들여 있었습니다. 신랑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지만, 그에 대해 어떤 사랑의 감정도 솟구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두 사람이 서로 죽도록 사랑한다면, 20세라는 나이 차이가 뭐 그리 문제일까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나이 차이가 아니라, 여주인공이 사랑과 결혼에 대해 아무런 준비 없이, 부모가 시키는 대로 결혼식을 부랴부랴 올렸다는 데 있습니다. 에피는 새로운 환경에 대해 처음에는 놀라워합니다. 무료한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습니다. 케신은 호엔-크레멘에 비해 아담했으나, 하루 종일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는 작은 지역이었습니다. 결혼 생활의 지루함은 17세의 신부를 서서히 고통 속으로 몰아갑니다. 인슈테텐 역시 예절 바른 남자였으나, 사랑스러운 애인은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서로 구애하고 상대방을 자극하기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 어색했습니다. “인슈테텐은 착하고 사랑스럽게 행동했으나, 그미의 애인은 아니었다.” 여주인공은 불과 17세의 소녀였습니다. 혼자 있으면, 기이한 유령의 소리 그리고 유령의 상을 대하고 소스라치게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어린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며, 직장 일에만 몰두할 뿐입니다. 나중에 두 사람 사이에서 딸이 태어납니다. 출산 뒤에야 비로소 에피는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이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미는 내적인 고독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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