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서로박: (3) 검정고시

필자 (匹子) 2024. 3. 13. 09:50

(앞에서 계속됩니다.)

 

참으로 기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니라 암행 감사였습니다. 대통령의 밀명으로 비밀리에 전국을 순회하면서 비리를 척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비역 대령이었는데, 항상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은밀히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암행 감사를 우연히 만나서, 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때 암행 감사는 다음과 같이 대꾸했습니다. 그래요? 물론 재학생이 검정고시에 응시하는 것은 물론 위법이오. 그렇지만 이미 자퇴 처리가 되어 있고, 당신 아들은 이미 예비고사까지 합격하지 않았나요? 검정고시의 규정은 엄정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옳지만, 이 제도는 어려운 학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니, 당신의 아들은 이번 기회에 구제되어야 하오. 아버지는 이때 가만히 그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조만간 교육청을 찾아가서 담당 장학사의 목을 잘라버리겠소. 이 순간 아버지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고, 검정고시 합격증을 받게만 도와주세요.

 

1982년 따뜻한 봄날 마산시 교육청에 암행 감사가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그는 가죽으로 만든 암행 감사 명찰을 장학관에게 내밀면서 일갈했습니다. 1981년 마산시 교육청에서 관장한 고졸 자격 검정고시의 합격자 명단 그리고 이와 관련된 해당 서류와 담당 장학사를 불러오세요. 장학관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그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뒤이어 암행 감사는 서류를 뒤져본 다음에 담당 장학사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합니다. 서로박은 전 과목 합격했네. 그런데 왜 합격증을 발급하지 않았지요? 당시 서슬 푸른 독재 국가에서 암행 감사의 권한은 너무나 막강한 것이었습니다. 잘못 대답하면 목이 날아갈 것 같은 살벌한 형국이라는 것을 장학관 그리고 장학사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당 장학사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학생이 받으러 오지 않아서 발급되지 못했습니다. 예기치 않은 대답이었습니다. 장학사는 이렇게 답함으로써 모든 잘못을 학생인 나 자신에게 떠넘겼던 것입니다. 암행 감사는 이 말을 들은 다음에 다음과 같이 지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당 학생이 찾아오면 합격증을 발급하고 이 결과를 반드시 상부에 보고하세요. 암행 감사는 그 외의 다른 여러 가지 문제로 교육청을 벌컥 뒤집어놓은 다음에 두 명의 조수와 함께 그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1982년 5월 따뜻한 봄날에 나는 마산시 교육청을 방문하였습니다. L 장학사는 나를 표독스럽게 노려보면서 소리쳤습니다, 왜 너는 합격증을 받으러 오지 않았어? 합격증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니, 그렇게 애원했는데도 발급을 거절한 사람이 누군데 거짓말을 뇌까리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내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네 놈 때문에 나의 목이 달랑 끊길 뻔했잖아. 이로써 나는 본의 아니게 독재자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소식이 있습니다. 1981년에 전국에서 고졸 검정고시를 응시한 고등학교 재학생은 모두 50명이었는데, 그 해에만 예외적으로 모두 검정고시 합격증을 수령하였다고 합니다. 대신에 교육청은 다음과 같은 시행령을 하달했습니다. 그것은 시험 감독이 고졸 검정고시를 치르는 수험생들에게 고등학교 재학생은 절대로 시험에 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전에 통보하는 조처였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