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서로박: (2) 검정고시

필자 (匹子) 2024. 3. 13. 09:49

(앞에서 계속됩니다.)

 

그래 12월은 얼마나 추웠던지요? 지금에야 편안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당시의 시간은 나에게는 마치 지옥에서의 삶인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한복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내 아래에는 두 명의 동생이 중학교 그리고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출소하여 다시 무슨 일이든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그는 다시 상경하였습니다. 일본에서 전자 기기를 수입하여 대학에 납품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아버지는 우연히 C 대학교 의과대학의 교무처장을 알게 되었는데, 담소를 나누다가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교무과장은 사실 확인을 위하여 그해의 예비고사 합격자를 기술한 두툼한 책자를 뒤졌습니다. 합격자 명단에는 내 이름도 있었습니다. 교무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 2년 세월을 허송하게 해서야 되겠소? 중등 교육위원회는 법적으로 대학에 관여할 수 없어요. 당신의 아들을 우리 대학에 응시하게 하세요. 합격하면 최연소자로 나중에 캐나다 유학도 보내주겠소. 그날 밤 아버지는 마산에 머물던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니, 의대에 진학하라니? 지금까지 문과 공부를 해온 나에게는 뜬금없는 제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영화 「닥터 지바고」가 떠올랐습니다. 그래, 의사이자 시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런데 본고사까지 겨우 한 달 정도 남아 있었습니다. 문제는 내가 수학 II, 물리 II, 화학 II 그리고 생물 II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3주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까짓거 한 번 해보자. 캐나다 유학까지 보내준다고 하지 않는가? 도저히 자신이 없었지만, 다른 뾰족한 방도도 없었습니다. 입학 원서를 제출했더니, C 대학교 의과대학은 고맙게도 나에게 특별히 수험번호 99번을 부여했습니다.

 

시험 결과는 낯 뜨거울 정도로 참담했습니다. 합격선에서 무려 40점이나 차이가 났으니까요. 생물에서 50점 만점에 겨우 26점을 취득했습니다. 난생처음 대하는 문제, 난해한 킬러 문항이 즐비했던 것입니다. 고등학교도 끝까지 다니지 못한 인문계 학생이 의과대학에 응시하여 합격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이었습니다. 풀이 죽은 채 마산으로 낙향했습니다. 다시 2년 후에 검정고시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서울에서 벌인 사업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고, 마산에 내려와서 다른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우연한 기회에 통관 업무를 기획하다가, 어떤 기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